정치적 부담 작은 것부터 추진해야
  • 이종석 (동아일보 논설위원)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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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공연교류 먼저 시작

 우리는 북한이 왜 남한에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선정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회담 자체를 깨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라고 관측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가극이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 중의 하나라는 점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북한예술의 주류는 당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제작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들이며 그밖에는 외부에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는 저들의 속사정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북한은 남한예술을 받아들이게 될 경우 상상 이상으로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남한예술의 다양한 소재선택이나 자유로운 표현이 북한관객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란 정치적 계산 때문에 그들은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평양축전 때 외국학생들의 디스코파티에 대해 북한학생들이 심한 거부감을 보였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남북문화교류는 서로에게 정치적 부담이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제한된 장르의 소규모공연예술이나 미술전시 등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해 민중극단이 제안한 <게사니>공연은 북한측에서 볼 때 그 파급영향을 적게 해서 일단 고려해볼 만한 대상일 것이다.

 그들의 경직된 문화수용 태세를 뚫고 남북 문화예술 교류를 이룩하는 방법은 첫째 교류제의를 멈추지 말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레퍼터리의 제의를 펴나가는 것이며, 둘째 제3국의 국제문화행사에 남북이 공동참여하는 방법이다. 지난해 원광대학의 역사학대회와 불교조계종의 연등법회에 그들이 참가를 회피한 것은 그것이 남북 당사자간의 교류라는 부담때문이지만 올 가을 북경아시안게임의 국제문화행사에는 그들도 참가를 회피할 수 없다. 또 올 여름 일본 오사카법정대학의 ‘조선문화국제학술회의’에 북한학자들의 대거 참가가 예상되는 만큼 우리도 사소한 손익계산을 초월하여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밖의 고려대의 유학생교류 제의나 경희대의 고적답사여행 제의는 당장은 저들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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