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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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채에 초연한 연주를”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完奏하는 이경숙씨
 ‘천진난만하고 영롱한 멜로디 속에 인간의 환희와 비애가 실려 있는’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완주함으로써 한국음악사에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게 되는 피아니스트 이경숙. 1월31일 저녁 7시에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D장조, F장조, A장조 연주(예음사 주최)를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로서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고개를 넘게 된 그는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하소연으로 말머리를 꺼냈다.

 “학구적인 목적으로 공부 좀 하려고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기획했는데 자꾸만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빼앗기고 있어요.”

 한 작곡가의 음악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그는 지난 몇해 동안 누구보다도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87년 12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5곡을 원경수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완주했고 88년에는 베토벤 소나타 32곡을 완주했으며 이어 89년 6월부터 6회에 걸쳐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완주에 다시 도전한 것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어 “학교에서는 강의를 마친 뒤에, 집에서는 딸 아이의 시중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연습에 임할 수 있는” 입장이다. 게다가 그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곡과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 18곡을 모두 외어서 연주했다. 거의 다달이 연주가 있었기 때문에 소나타 3곡을 한달안에 분석하여 읽고 손에 익히고 외우자면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심리적 압박감도 적지 않았을거라고 짐작된다.

 그렇게 바쁜 일정속에서도 지난 12월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헝가리 프라하 심포니와의 협연무대에서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을 안정되고 깊이있게 연주하여 청중의 절찬을 받았다. 또 같은 달 29일에는 서울대 음대 이강숙교수가 기획한 ‘피아노 가족을 위한 명곡 독주회’에서 <엘리제를 위하여><은파>등 우리 귀에 친숙한 명곡들을 연주하기도 했다.

 어느 연주가보다 의욕에 찬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스스로를 ‘반연주가’ 또는 ‘교육자’라고 깎아내린다. 생활 가운데 틈틈이 생겨나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연습해야 하고 또 직업적인 연주활동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전문연주가로 자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는 “한평생을 압박감속에 갇혀 지내고 싶지는 않아서 전문연주가의 길 대신 반연주가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한적이 있다. 반연주가라는 말속에는 피아노를 좋아하지만, 피아노만이 삶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그런 만큼 그는 무대위의 화려한 영광이나 환호하는 청중의 갈채에 초연하려고 애쓴다. 그의 연주가 ‘여류’가 갖는 섬세함이나 연약함 대신에 비교적 스케일이 크고 선이 굵으며 화려한 기교파라기 보다 음악성에 충실한 연주로 느껴지는 까닭도 그의 이런 마음가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가 ‘반연주가’라고 우겨 말하고 있지만 그는 한국 정상에 우뚝 선 피아니스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무대에서 연마한 자신의 연주기량에만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높은 ‘고지’에 도전하는 학구적인 개척정신이 그의 오늘을 있게 만든 원동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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