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전 잘 피우는 대통령” 비난받는 부시
  • 워싱턴 · 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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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전쟁연습’, ‘상습적 속임수’등에 언론 빈축

 부시행정부는 아직도 소련을 불신하고 있는가. 미국이 언론들은 최근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가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도입하면서 강력한 대통령제로 혁명적 방향전환을 결정한 역사적인 시기에 부시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에 주목하고 있다. 국무장관을 모스크바로 보내 임박한 독일 통일방안 등 새로운 국제질서 개편에 관한 미 · 소 외무장관회담을 벌여놓고 그 자신은 사흘 동안 미국 서부지역을 찾아가 ‘전쟁놀이’를 하면서 새삼 부국강병론을 들고 나왔다고 언론들은 꼬집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뿐 아니라 의회여론도 부시의 그같은 행동을 “국제정세를 외면한 엉뚱한 변칙행위”라고 질타했다.


소련 겨냥한 모의 탱크전쟁 ‘신나게’ 관람

 美 캘리포니아주 사막에서 소련을 가상의 敵으로 한 모의탱크전을 ‘신나게’ 지켜본 부시 대통령은 이어 네브라스카주 전략공군사령부를 방문, 핵전략폭격기에 시승하여 장병들을 격려했다. 또한 전략방위계획(SDI)을 추진중인 한 연구소를 찾아가 이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하기도 했다.

 물론 부시 대통령의 이런 ‘기행’이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일인것만은 틀림없다. 아무리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정이라고는 하지만 앞뒤를 살펴서 뒤로 미룰만한 여유나 유연성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두 갈래에서 조여오는 압력을 의식한 부시대통령이 ‘一石二鳥’를 노린 행동일 것이라는 풀이를 보면 우선 무엇보다도 부국강병론을 앞세움으로써 평소 공화당 우파로부터 ‘진보적 인물’로 불만의 대상이 돼온 부시가 이념적으로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재벌의 자금지원을 활성화시킴으로써 1차적으로는 92년 재선거의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금년 11월 의회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의 진출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국방예산을 깎으려는 민주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공화당의 상표처럼 되어온 부국강병론으로 민주당의 기를 꺾어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장차 폐쇄키로 한 미국내 50여개 군사기지들이 모두 민주당의원 출산지역에만 해당된다는 것과 함께 앞으로 의회에서 큰 싸움이 벌어질 소지가 있는 문제다. 아무튼 "부시는 전쟁놀음을 하는 셈이고 고르바초프는 민주주의를 실습하는 꼴"이 됐으니 모양새가 좋을 리 없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또 하나의 거센 비판은 부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철저한 비밀주의와 ‘상습적 속임수’가 언론과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연두교서에는 군축에 관한 아무런 새 제안이 없다던 백악관 공보비서의 전날 발언과는 달리 미 · 소 양국이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병력수를 19만9천5백명선으로 대폭 줄이자는 제안을 한 일이라든가, 몰타회담을 넉달씩이나 감춰두고 90년 여름까지는 미 · 소 정상회담이 없을 것이라던 부시 대통령의 발언, 몰타회담은 “안건이 하나도 없는 예비회담”이라던 부시의 주장과는 달리 첫날 21가지나 제안을 해서 “정상회담이 만족하게 되었다”고 해 스스로 거짓을 시인한 부시의 태도에서 언론은 그때 그때 속임수에 말려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상사람들의 큰 관심사인 독일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최근 백악관의 한 고위관리가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독일이 통일된 뒤에도 꼭 나토의 회원국이 되라는 법은 없다고 말해 이것이 기사화되자 백악관 대변인은 즉각 이를 부인하고 나섰다. 몇시간뒤 부시 대통령은 독일이 나토 회원국으로 남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 다시 10분뒤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 말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부인했다. 결국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대통령안보담당보좌관이 다시 “통일 독일이 나토 회원국으로 남아있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설명을 해야만 했다. 얼마전 카르타헤나로 마약정상회담차 떠나던 부시 대통령이 전용기안에서 갑자기 동행중이던 기자들을 찾아와 “이제부터 당신들을 전혀 다르게 상대해야만 하겠다”고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앞으로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할 터이니 그리 알라”고 쏘아붙인 일이 있다. 대통령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기자들의 논평에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국민들로부터는 79%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그를 밤낮 상대하는 언론과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 부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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