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겉모양만 ‘동양최대’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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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부실운영 대수술 요구 높아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며 과천 청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시내 한복판인 시청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오가는 데에만도 서너시간은 족히 걸린다. 덕수궁에서 이전할 초기부터 현대미술의 ‘유배’가 아니냐는 등 비난의 대상이 되어온 국립현대미술관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운용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문화부 발족을 앞두고 李慶成관장이 바뀔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다가 유임되자 그동안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미술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존공무원 텃세로 업무분담 어려워

 경복궁, 덕수궁 등 고궁의 일부를 빌려 명맥을 유지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은 86년 8월의 일이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동양최대의 규모로 과천 서울대공원안에 대지 2만2백92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1만2백92평이라는 거대한 규모로 지어졌다. 원형전시실, 회랑 등 실내전시장만 9개(총 전시면적 4천7백90평) 인 대형미술관이다. 이러한 외형적인 조건이 미래를 위해 필요한 기본시설로 인정된다고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이 그 외형에 비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데 많은 미술인들은 공감을 표시한다. 전문미술행정부재, 예산의 부족, 소장작품의 빈곤, 일관성 잃은 작품구입과 시대를 역행하는 전시기획 등은 이른바 문화의 ‘백년대계’를 내다보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결과제는 ‘직제상의 문제’로 모아진다. 덕수궁미술관 시절의 직제를 바탕으로 개편된 현재 직제로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서의 전문성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실질적 총책임자인 관장이 직제개편에 적극성을 띠지 못하는 것도 현대미술관의 변신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직제는 국립현대미술관장 밑에 사무국장과 학예연구실장이 있다. 사무국장이 관리과, 전시과, 섭외교육과를 총괄하고 학예연구실장은 학예연구사들을 총괄하도록 되어 있다. 학예연구직은 미술관의 교육을 비롯하여 전시기획, 연구 등 미술관의 업무를 주관하는 전문적이고도 실질적인 직책이다. 지난해 학예연구사로서 미국에 미술관 연수를 다녀온 이화익씨는 “외국의 경우 당연히 학예연구실이 중심이고, 관리직은 행정지원을 하는 수준이었다”면서 “직제가 그대로 있는 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학예연구직은 미술관 직원 1백여명 중에 겨우 14명에 불과하다. 20대, 30대 초반이 대부분인 젊은 이론가들이다. 반면 덕수궁시절부터 학예직원 없이 전시를 조직해왔던 전시과 등 기존공무원들은 실전에서 길러온 안목을 바탕으로 ‘텃세’를 부리고 있어 실질적인 업무분담이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관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한 채 實勢가 없는 소수의 전문가에 의한 미술행정이 예산부족과 맞물리면서 미술관의 운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다.

 미술관은 올해 예산은 33억원이고 이중 기획전시예산은 2억8천5백만원, 작품구입관리비는 6억5천8백만원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수입된 해외미술품의 최고가가 5억원인 점만 보아도 ‘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의 구입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게다가 연륜이 짧아 작품구입에 계획성이 부족, 일부 경향에만 편중해 있다는 비난이 크다. 소장품의 빈약성을 보완하는 기획전 역시 적은 예산으로 인해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져 올해 기획도 ‘수준 높은 국제전시회’에는 못미친다는 평이다. 올해의 가장 큰 기획 중의 하나로 곱히는 ‘제1회 환태평양미술전’은 참가규모가 일본 교토근대미술관, 호주 뉴 사우스 웨일스미술관, 캐나다 밴쿠버미술관,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 등 4개 미술관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기초작업과 성격부각을 위해서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울인 노력과 성과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는 게 미술계의 또다른 목소리이다. 그 중에서도 ‘독일바우하우스전’(89년 5월3일~6월4일)과 ‘독일현대회화전’은 국제성을 보여준 전시회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이관장이 무리를 해서까지 구입한 어느 독일작가의 작품은 최근 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 미술관의 경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예외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미술관행사는 안일하게 조직되어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는 적극적인 기획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다.


대중 위한 미술관으로 거듭나야

 88올림픽미술축전 때 현대미술관 전문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미술평론가 徐成?씨(안동대학)는 “당시 ‘한국현대미술전’은 ‘성격없는 전시회’라는 국제적인 오명을 남겼다”고 회고하면서 일관성 잃은 평소의 전시기획을 그대로 드러낸 예라고 설명한다. 이 전시회는 작가선정을 둘러싸고 유파별, 장르별, 심지어는 학연별로 시비의 소리가 높아 애당초 1백50명이던 초대작가가 6백명으로 둔갑되었었다.

 또한 오늘날 미술관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미술의 여러 경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면서 미술계의 물줄기를 대중에게 알리는 중계역할을 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현대미술관은 ‘낙제점’이라고 미술계는 진단한다. 민중미술과 서구 모더니즘계열 미술로 양분된 한국 미술계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해외미술가나 일부 상류층을 위한 전시회만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미술관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소장품을 전시하는 ‘움직이는 미술관’ 역시 “올해의 중점사업”이라는 의욕과는 달리 큰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미술평론가 崔泰晩씨는 “개방적인 문화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술감상의 매개자로서 기능할 것이 아니라, ‘재생산’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제 갈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새 집’을 옮긴 지도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만큼,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제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미술관으로 거듭 태어날 것을 미술계 인사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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