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
  • 완수 편집위원 ()
  • 승인 1990.03.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판문점 거쳐 訪北 희망”

그는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는 공산국 북한을 그쪽 정부의 공식초청을 받아 공개리에 방문한 자본주의 국가 남한의 대자본가다.

 일제 때 소학교만 나오고도 박사학위(명예)를 네 개씩이나 가진 사람, 자동차회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침에 아들들과 함께 50분을 걸어서 회사에 출근하는 ‘고집쟁이 노인’이다. 우리나라 최대재벌인 그가 요즘에는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면서 ‘보수주의자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겨냥하기도 한다. 노익장의 건강비결을 묻는 말에 “백살이 되려면 아직 한 25년은 남았는데 뭘…이라는 대답이다.

 鄭周永씨, 공식직함은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가 3월4일 네 번째 소련방문길에 오른다. 이른바 시베리아개발 등 경제협력을 위한 방문이지만, 5~6월경으로 예정된 북한방문을 위한 준비작업과 밀접히 연결돼 있어 주목을 끈다. 서울 종로구 계동의 현대그룹 사옥 명예회장실 에서 그를 만났다.

 ● 올봄에 다시 북한을 방문하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두 번째 방북이 되시죠?

 금년 봄엔 여행 스케줄이 꽉 짜여 있습니다. 3월4일에 소련여행 스케줄이 잡혀 있고 3월말에는 또 한 · 소 경제협력회의가 있어요. 북한방문은 빨라야 5~6월경이 될 것 같습니다.

 ●  작년 1월 방문 때는 도쿄, 北京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는데 이번 방문 때도 그렇게 돌아가게 되는 겁니까?

 이번엔 우리 정부가 허가해주면 판문점으로 해서 평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과는 작년에 한국정부가 허락하면 자기네는 받아주겠다고 얘기가 돼 있습니다.

● 가능성이 높은 편이군요. 초청자는 대성은행 이사장 최수길씨로 되어 있나요?

 가능성이 있지요. 작년에는 許씨 초청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형식이 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작년에는 일행이 단촐했는데 이번에는 방문단 규모가 어떻게 됩니까?

 별로 크지 않을 겁니다. 작년에 중요한 일은 모두 약속을 해놓았습니다. 모두 다섯가지 사업인데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에 있어 한가지만이 북한과만 관계되는 일이고 나머지 네가지는 모두 소련과도 관계가 되는 것들입니다. 사실 금강산개발이란 호텔 등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밖에 元山의 철도차량 공장 시설개선과 수리조선소 확장, 그리고 북한과 ‘현대’가 공동투자하는 시베리아 석탄개발과 역시 시베리아의 개발 등입니다. 철도차량 사업은 ‘현대’의 기술지원으로 원산의 철도차량 공장시설을 개선해 여기서 만드는 제품(철도차량)을 북한이 Tm고 나머지를 소련에 수출한다는 것이고, 원산이 수리조선소 역시 ‘현대’의 투자로 시설을 확장 · 개선해서 소련 선박을 상대로 이익을 보자는 겁니다. 시베리아 석탄개발은 북한과 공동투자를 해서 현지에 콕스공장을 세워 거기서 나오는 제품을 북한이 쓰고 나머지는 중국에 판매한다는 겁니다. 암염개발 역시 1차적으로 북한이 제품을 쓰고 나머지를 중국에 판매하자는 겁니다. 그동안 내가 몇차례 소련을 드나드는 동안 소련측은 이미 모든 약속을 했습니다. 원산에서 생산하는 철도차량을 자기네가 다 사주고 선박의 수리 · 건조도 일거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콕스공장, 암염개발에 있어서도 모든 편의를 지원해주겠다고 했고요. 3월에 모스크바에 가면 그걸 재확인할 겁니다.

● 작년에는 북한의 金日成주석을 못만난 것으로 돼 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정치인은 아닙니다. 내가 그 사람들이 통치하는 영역에 들어갔으니 예의상 기회 있으면 인사나 한다는 취지지요. 나로서는 일에 관계되는 사람들, 즉 許씨나 최수길이사장 등 북한의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만 만나면 됩니다. 최수길씨는 대성은행 이사장명함을 가지고 있으나 농업을 빼고 무역 등 모든 경제를 주관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  鄭회장께서 작년에 북한을 다녀온 후 건설부에서 금강산개발 복안을 만들어보라고 이야기했다는 보도들이 있었는데 구체안을 만드셨습니까?

 그런 일 없습니다. 이북은 호텔 건설에 관한 방대한 계획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방대하게 할 필요없고, 고객들 봐가면서 점차적으로 확대해야 된다고 제안했었지요.

 ● 금강산개발은 남으로 설악산과연결되는 사업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었는데….

 북측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알기에 그 사람들은 가급적 내가 빨리 와서 그 일을 추진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가면 얘기가 빠른 속도로 잘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 다섯가지 사업별로 투자규모 등 구체적 계획이 어느 정도나 세워져 있습니까?

 금강산개발은 우리측에서만 투자할 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 자본을 끌어들이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개발한 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물론 북한도 금강산 개발할 돈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 단독 개발로는 고객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기 쉽다고 설득해 서로 합의했지요. 이번에 가서 그게 구체화되면 세계자본 끌어들이는 데 내가 나설 생각입니다.

 ● 개발사업이 일단 시작되면 장비나 인력 조달은 어떻게 하게 됩니까?

 장비는 우리가 대부분 조달할 수 있고 인력은 북한 인력 가지고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 사람들 열심히 일을 잘하니까요.

 ● 이전의 중동기술자들을 투입할 계획인가요?

 몇몇 특수장비 기술자들은 이쪽에서 갈 수 있으나 대부분은 북한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 조금만 가르치면 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남한사람들과 똑같이 재능이 있으니까요.

 ● 이쪽에서는 ‘현대’가 단독으로 하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기업들과 공동으로 하는 겁니까?

 외국기업들도 끌어들일려고 하는 판인데 국내기업들이 관심 있어서 하자고 한다면 배제할 생각 없습니다.

 ● 다른 대기업 회장들과도 이야기 나눠보셨습니까?

 구체적 얘기 안했습니다. 작년에 내가 갔다온 후 다른 일들로 분위기가 좋지 않아 얘기를 진행할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 작년 방북 때 북한사람들 믿고 함께 일할만하다고 느끼셨습니까?

 내가 만나본 許 당비서겸 정무위원과 최수길이사장, 나는 그 사람들에게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노련한 외교관으로 국제사회의 모든 문제에 아주 밝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경제인들과 손잡고 북한을 개발해서 북한도 뒤떨어지지 않고 번영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들이 믿을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우리 정부는 민간기업의 對北경제교류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견제가 심하지는 않습니까?

 도와줄 생각이지 견제할 생각은 없다고 봅니다. 아직 사업계획이 진행되지 않아 구체적 의논은 안해봤지만 도와줄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의 정부 역할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구체적 진행이 없지만, 현 상태로 보면 정부가 창구역할을 하고 있으나 모든 활동을 정부가 다 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정부가 창구라는 것은 정부의 승인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고 경제는 경제인이, 체육은 체육인이, 그리고 문화는 문화인이 하는 것 아닙니까.

 ● 작년 鄭회장의 방북뉴스를 보도하면서 일부 신문들은 정치가 경제에 끌려간다고 신랄하게 풍자하기도 했었지요.

 그때 국회 외무위에 가서 애기했지요. 여소야대시대 아니었습니까? 야당의원들이 많은 상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어요. “정회장 자격이 무엇이냐”고 따지는 국회의원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나는 세계 어디를 가나 상대가 정부면 정부, 기업이면 기업 가릴 것 없이 무슨 협정이든지 맺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산다고 얘기했습니다. 단 ‘협정은 정부 승인 받으면 효력이 발생한다’는 조건을 달거든요. 정부가, 害가 된다고 하면 승인을 안하거든요. 내가 북한과 맺은 협정에도 물론 그런 조항이 들어 잇지요. 북한측도 최수길이 사장이 정부를 대표하는 게 아니니까 북한정부가 수정할 수 있는 거지요. 무슨 자격이냐 하면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지요.

 ● 경제교류가 활성화되어 협력단계가 되면 북한이 경제적으로 강해져 남쪽에 위협세력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물결이 전쟁에서부터 떠났습니다. 그렇잖은가요? 미 · 소는 원자탄 등 세계를 수십번 죽이고도 남을 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인데 그들이 화해하는 마당입니다. 앞으로 경제협력을 통해 북이 국력을 길러서 전쟁을 할 거라고는 생각 안합니다. 남과 북도 세계의 큰 평화흐름에 따라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북에나 남에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시베리아개발과 관련, 최근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상당히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연해주 산림청과 ‘현대’가 공동투자해서 산림을 벌채해 목재사업을 한다고 돼 있던데요.

 아직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 ‘현대’로 볼 때는 대단히 큰 사업들은 아니거든요. 마음먹고 달려들면 1주일이면 타당성 조사가 끝납니다. 모든 사업이 서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무릎맞대고 계획 세우면 한 사업에 1주일 넘어갈 게 없습니다. 목재 사업은 투자에 앞서 현재, 장비 등을 서로 뽑아보고 있습니다. 금년 6월부터는 작업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목재를 외국에서 모두 사오는데 연간 수입액이 7억달러 정도됩니다. 그런데 원목 약 1억달러어치를 시베리아에서 가져오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목재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겁니다.

 ● 금강산개발과 시베리아개발 중 어느쪽이 더 빨리 진척되리라고 보십니까?

 소련은 우리를 높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70년간 공산주의를 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관행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겁니다. 그러나 북한은 공산주의를 한 게 40년밖에  안돼 만약 문호를 개방해서 손잡고 일하면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입니다. 중공이나 소련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해서 잘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소련은 일은 빨리 시작되더라도 성과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릴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해도 한 · 소관계의 진전은 한국이 선진대열에 오르기 위해서 기필코 달성해야 할 제2의 경제도약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자원을 시베리아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산항에서 나훗카항까지는 36시간이면 됩니다. 미개발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 북쪽까지 가는 데는 태평양으로 가면 한달, 대서양쪽으로 가면 60일이 걸리는 데 불과 36시간 거리에 무진장한 자원이 있다 이겁니다. 과거에 중동이 한국의 외환위기를 모면시켜줬다면 이제 시베리아는 한국 제2경제도약의 밑받침이 될 수 있는 원자재 공급원이 될 것입니다.

 ● 한 · 소 경제협력에 있어 소련은 적극적인 반면 한국이 소극적이라고 한국을 방문한 소련 인사들이 이야기하는데 鄭회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에도 보수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소련과경 제적으로 협력해서 서로 이익을 보는 걸 위험시합니다. 내가 소련 드나든다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나를 보고 “어쭈, 소련냄새가 나는데…” 어쩌구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자 그대로 수구주의자들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소련은 정말 용기있는 완전한 항복을 한 겁니다. 지금 상태로 미국과 계속 군비경쟁을 할 수도 업고, 경제는 점점 몰락해가고…. 고르바초프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게 된다고 해도 ‘제2의 고르바초프’가 나오지 ‘제2의 스탈린’은 안 나온다고 나는 봅니다.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소련전문가들이나 브루킹스연구소, 해리티지재단의 전문가들 의견이 그렇습니다.

 ● 언제 국제정치학까지 공부하셨나 보지요?

 아니지요. 국내보수파들이 자꾸 공격을 해오니까 나도 이를테면 자신을 이해시킬 수 있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야지요. 그 사람들이 덮어놓고 공격을 하는 겁니다. 북한을 갔다와도 공격을 해대고…. 우리나라 보수파 힘도 대단합니다.

 ● 鄭회장께서는 보수파가 아니라 마치 진보주의자인 것처럼 들리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거는 참고로 해야지 거기 묶여 있을 필요는 없거든요. 미래를 향해 자꾸 나아가야지요. 앞으로 우리의 경우 수입량이 계속 늘어날 것은 에너지입니다. 그것을 가장 가깝게 소련이 가지고 있습니다. 불과 이틀 뱃길입니다. 시간도 그렇고 운임도 몇분의 1입니다. 한 · 소, 한 · 중관계가 잘되면 시간이 5년 걸릴지, 몇 년 걸릴지 모르지만 우리 남북도 평화적으로 통일된다고 내다봐야지요. 그때 두만강 건너에 소련이 있고, 압록강 건너에 중국이 있습니다. 그 대륙이 바로 우리의 자원 공급원이자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 젊은 사람도 장거리 여행을 하면 피곤한데 10여일씩 해외여행, 더구나 시베리아 등지를 다녀오고도 별로 피곤한 기색이 없으시던데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백살 되려면 한 25년도 더 남았는데 이제 뭐 그런 소리를…. 미국에 아놀드 해머란 사람이 있지요? 소련 드나들면서 돈 벌었지요. 지금 무슨 기름회사 하나 하고 있지만, 90넘은 그사람이 자가용 제트기 몰고 고속으로 온 세계를 돌아다니지 않습니까? 욕심 같아서는 한 백살까지는 돌아다니고 싶어요.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