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믿을 만한가
  • 조사분석실 서영순 · 안선자 ()
  • 승인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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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대통령선거 계기로 급증… 일부 왜곡보도로 신뢰도 떨어져

여론조사가 새삼 ‘조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론조사를 과연 믿어도 되는가? 여론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하는 것은 아닌가?

 지난 10년 남짓, 한국언론의 새 여론전달수단으로 각광을 받아왔고, 특히 그 정밀성과 과학적 접근방식 때문에 총애를 받아온 ‘여론조사’가 올들어 갑작스레 신뢰도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월22일 3당통합 직후 국내언론사가 다투어 보도한 여론조사 내용을 비교해 보면 그 한계와 신뢰도에 관해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3당합당에 관한 국민들의 찬성 · 지지율은 <중앙일보>의 경우 60.8%로 나타났다(1월23일자). 같은달 25일자 <한국일보>는 ‘3당합당에 긍정적 반응 45.3%, 부정적 30.6%’라고 보도했다. 2월11일자 《시사저널》의 조사보도내용은 ‘3당통합에 39.1%가 긍정적, 45.4%가 부정적, 15.5%가 모르겠다’였다.

 무려 4개 일간지, 1개 방송사, 1개 시사주간지가 동일한 소재를 놓고 거의 동일한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 내용이 긍정적 답변의 경우 최고21%까지 엄청난 차이를 보여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왜 이같은 결과가 나타나는가? 조사의 부실 때문인가, 아니면 조사기관의 '저의‘ 때문인가?


정책결정의 중요한 수단

 여론조사란 국민의 정치참여 도구이자 정부의 정책방향과 기조를 마련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또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에 통합시켜주는 조정역할과 행정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점에서 그 의의와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우리와 정치 · 경제 · 문화적 배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대만의 경우 국민적인 관심과 권익에 직결된 주요 현안(본토와의 교류, 다당제 도입과 자유선거, 노사관계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정부와 당이 국민들의 요구에 앞서서 정책을 입안, 집행할 수 있도록하고 있다.

 물론 여론조사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가령 대통령선거 여론조사를 서울에 한정하여 나이도 18세 이상의 남녀 5백만명만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한다면 그 조사결과는 실제 투표 결과와 차이가 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조사설계가 부적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투표권자는 만 20세이므로 조사대상자 나이는 만 20세 이상으로, 조사대상자수는 표본오차를 줄이기 위하여 1천5백명 정도로 해야 한다. 또 조사지역도 서울에 국한하지 않고 중소도시 및 농어촌을 포함한 전국으로 확장하고 전화로 물어보기보다는 직접 만나서 질문할 수 있게끔 조사설계를 한다면 그 조사는 훨씬 정확할 수 있는 것이다.

 한예로 지난해 7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소위 마돈나선풍을 몰고온 도이의 사회당이 자민당을 제압했을 때, 이 사실이 한국에서는 이변으로 보도되었으나 일본의 유력 여론조사기관은 자민당지지 25%, 사회당지지 26%로 자민당의 패배로 점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전국의 20세 이상 남녀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조사는 ‘여론조사’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나타내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응답자의 약 30% 정도는 조사대상이 된 경험이 있으며, 60% 정도가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만하다고 대답한 반면 24%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응답했다. 1천5백명의 표본으로 국민 전체의 여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단지 29%만이 가능하다고 했으며. 58%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표본추출 및 통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이지만 이렇게 된데는 조사기관과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정치관계 여론조사 다투어 보도

 여론을 다수 대중의 의식 속에 흐르는 정치 · 사회의식으로 파악한다면, 이 흐름을 노출시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이 곧 여론조사이다. 또 이를 다시 대중 앞에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한국언론이 대중이 정치 · 경제 · 사회적 관심을 통계적 방법으로 조사하는 데 주력하게 된 것은 지난 87년 대통령선거 무렵부터이다. 대통령선거 시기에 있어서의 여론조사는 본격적인 정치여론조사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컸다. 대통령선거 당시 한국갤럽은 개표가 시작된 지 2시간쯤 지나 각 후보의 예상득표율을 발표했는데 이는 실제득표율과 불과 0.3~2.2%의 오차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어서 ‘놀라움’과 ‘의심’을 한꺼번에 사기도 했다 한국갤럽은 6차에 걸쳐 실시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잘 모르겠다’는 응답의 가장 큰 요인이 지역별 특성임을 간파, 이를 토대로 부동표의 향방을 가늠해냈다고 한다.

 이 조사의 적중률과 관련,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이후 여론조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87년 10월부터 88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기까지 7개월 동안 우리나라 4대 일간지는 여론조사결과를 52건이나 보도했다. 80년부터 86년까지 6대 중앙지 (경향, 동아, 서울, 조선, 중앙, 한국)에 게재된 여론조사가 1백1건(이중 정치분야에 관한 항목은 34건)이었음에 비한다면 횟수면에서 놀라운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언론이 제구실을 못했던 5공시절에는 언론이 여론조사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발표’에도 신중을 기해야 했다.


언론에 의해 조사내용이 왜곡되기도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여론조사에 임하는 자세와 조사내용을 다루는 방법론이다. 특히 여론조사에 관한 기사는 결코 사설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오직 여론조사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하는 데 그쳐야 한다.

 지난해 12월31일의 전두환전대통령 국회증언과 관련, 각 신문은 여론조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중 한 신문은 한국갤럽과의 공동조사결과를 토대로 “전씨증언 납득하기 어렵다 74.4%” “54.3%는 그래도 5곳 종결해야”라는 제목을 뽑았다. 여기서 ‘그래도’라는 주관적 표현은 전씨 증언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 74.4%의 응답자 중 54.3%가 ‘그래도’ 5공청산을 종결해야 한다고 대답한 것으로 오인하기 쉽게 돼있다. 이러한 예는 다른 신문에서도 나타난다. “전씨 증언 정직하지 못했다 80.7%” “이 정도로 매듭을 52.5%”가 그것이다. 한편 《시사저널》 “10명 중 8명이 불성실 질타“ ”40%는 이쯤에서 마무리“의 경우는 실제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의 비율이 44.1%임에도 40%라고 제목을 닮으로서 사실을 축소보도한 경우에 속한다.

 3당통합 직후 6개 언론기관에서 실시했던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대부분이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전화를 통한 방법으로 실시됐기 때문에 결과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 또한 문제가 많았다. 어떤 신문은 “1노3김 퇴진 67%…내각제반대 65%”로 제목을 달았는데 실제 응답내용은 ‘내각제 반대’가 아닌 ‘현행 대통령중심제가 좋다’였으며, “내각제 개헌 찬반 엇비슷”이라고 제목을 뽑은 신문의 경우 내각제 지지가 42.4%, 반대가 23.4%로 나타나 ‘엇비슷’하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랐다. 또 다른 신문의 경우 “찬성도 소득수준과 비례” “소득 연령이 높을수록 ‘안정’ 점쳐”로 제목을 뽑았지만 본문내용 중 소득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었을?뿐더러 소득별 분포를 조사했는지의 여부도 밝히지 않았다

 이와같이 언론매체가 여론조사내용을 한갖 ‘읽을거리’나 ‘특집용’ 기사감으로만 보려는 보도의식의 미성숙과 그릇된 보도태도 등에서도 여론조사가 의심받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조사결과 보도에 ‘요건’ 갖춰야

 신년초 정치권의 대변혁, 1 · 22 합당선언에 대한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는 과거 어느때보다도 신속했고, 조사대상수, 연려대, 조사방법 그리고 조사기관을 성실하게 밝혀주었다는점에서 발전을 보였으나 조사시간, 지역별 응답자수, 대상지역이 명기되지 않았다. 허용오차를 전혀 밝히지 않은 언론사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설문내용마저 일체 밝히지 않는 경우마저 있었다. 설문내용의 공개는 독자 스스로가 조사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고려대 李載昌교수는 “여론조사도 하나의 측정행위임에 틀림없으므로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측정방법이나 제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전국여론조사공표협의회나 미국여론조사협회는 반드시 조사자, 모집단, 표본수, 오차허용치, 조사방법, 조사기간, 질문지의 정확한 용어, 해석기준 등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8개조항이 낱낱이 공개될 때 여론조사 결과가 굴절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설령 제시된 숫자에 대한 해석이 잘못됐더라도 독자 나름대로 그 결과를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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