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칼럼] 부럽고, 부끄럽고 분노하지 않도록
  • (본지 칼럼니스트 · 서울대교수) ()
  • 승인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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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일을 생각하면 부럽고, 부끄럽고 부화가 치밀어오릅니다. 남을 부러워하기에 자기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민족의 처지를 독일의 그것과 견주어 볼 때 우선 그들이 부럽습니다. 또 그만큼 우리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정말 東西獨 관계개선은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럽습니다. 동서 베를린장벽을 망치로 깨뜨리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저는 너무나 부러워 넋을 잃을 뻔했습니다. 또 곧 무너질 장벽위로 올라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하는 독일인들을 보고 너무 부러워 내 몸이 쑤셨습니다. 더구나 동서독 총리들이 서로 마주앉아 오순도순 담소하는 사진을 보면서 내 선망은 어느새 부끄러움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서로를 철천지 원수로 대하는 남녘과 북녘의 우리 지도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뼈저릴 만큼 부러운 동서독 통일논의

 이제 독일통일은 몇년 안으로 성취될 것 같습니다. 이미 共通通貨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고, 통일의 절차와 일정에 대해서도 대체로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통일된 뒤 통합군의 규모를 15만 정도로 하자는 제의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제 통일은 소원사항이 아니라 실천사항으로 진전되었습니다. 통일된 강력한 독일 때문에 여러 차례 고통을 겪었던 주변국가들조차도 독일통일의 명분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오타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뱌조약기구의 外相들이 모여 독일통일의 절차와 일정에 합의했고, 나아가 동서독 당사자간의 통일논의와 4대 전승국과의 협의를 거쳐 그 결과를 올해 안에 열릴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에 제출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그 무관심에 견주면 정말 뼈가 저릴 만큼 부럽습니다.

 더욱 놀랍게도, 지난 20일 콜 서독총리가 동독 보수당의 초청을 받아 에르푸르트시에서 서독국가를 흔들며 환호하는 동독인들에게 지원유세연설을 했습니다. 13만명의 동독인들은 “신이여 우리의 총리를 보호하소서”라고 절규했습니다. 정말 꿈같은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남녘의 지도자가 평양에 가서 수십만 군중앞에 선거 지원연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언제 북녘의 지도자가 서울에 와서 평화통일과 민주화를 역설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미칠 것같이 부러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독일통일은 우리의 민족통일에 견주어 그렇게 절박한 민족적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독일분단은 戰犯國이 치러야 할 마땅한 대가일 수 있습니다. 특히 나치의 그 反人類的 범죄를 생각하면 그들의 분단은 동정받을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막강한 통일독일의 존재는 주변국가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에 통일문제가 그렇게 절박한 유럽의 문제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4대 전승국을 위시하여 여러 유럽국가들은 독일통일 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인들에게 민족통일의 문제와 韓民旌에게 통일의 문제는 그 역사적 무게에 있어서나 그 민족정서에 있어서 아주 다릅니다. 독일은 지방분권적 봉건제를 탈피하여 통합된 근대 민족국가를 이록한 것이 1백년 조금 더 넘을 뿐입니다. 헌데 우리는 1천6백년간 통일된 민족으로 同苦同樂해왔습니다. 그러기에 독일분단을, 결혼 1년후에 이혼한 젊은 부부의 설익은 아픔이라 한다면, 한민족의 분단은 50년간 해로해온 老부부가 헤어지는 뼈에 저미는 아픔과 같다 하겠습니다. 어찌 독일통일과 우리의 통일이 그 절박성, 그 심각성, 그 당위성에 있어 같다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독일사람 자신들이 통일을 절박하게 바라지 않았습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도 동서독간의 관계개선을 겨냥했을 뿐 통일을 겨냥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동독인들의 엑서더스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계속되어 이러다가는 동독의 空洞化현상이 생길 것 같기에, 통일문제를 절박한 것으로 보게 된것이지요.


남북지도자들의 한심한 냉전사고가 우리를 분노케 해

 그런데 우리는 戰犯國도 아니요, 나치의 범죄를 저질러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나치같은 日帝에 의해 억울하게 수탈당하고 억압당해왔건만, 우리의 통일은 아직도 멀고 먼 소원사항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억울하고 답답합니다. 한반도안에서나 그 주변에서 우리의 통일을 가장 절박한 민족적 과제로 믿고 그 문제해결을 위해 기득이권을 버리기까지 하면서 헌신하는 민족노력이 없습니다. 통일의 수사는 무성하나 실천은 없기에 더욱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어놓습니다.

 오늘 독일통일의 현실성이 냉전체제의 해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면, 아직도 한반도가 냉전의 핵심부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분노케 합니다. 그렇게 절박하지 않은 독일통일 문제에 대대 그토록 관심쏟는 미 · 소양국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합작품인 분단을 극복하는 데 대해서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말로는 脫冷戰을 크게 외치는 半島의 정치지도자들이 실제로는 냉전통치와 불신을 아직도 강화하고 있으니, 이들의 藿態가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합니다. 남북 체육회담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하는 남과 북의 지도자들의 그 한심한 냉전적 사고와 관행이 우리를 화나게 합니다. 바라건대 반도의 지도자들이여, 우리로 하여금 독일민족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를 더 이상 분노치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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