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부터 살리자”에 “부도덕한 자본 용납 못해”
  • 제주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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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문〉사태 70일간 공전 … 도민들은 폐업철회 서명

  “변방에 우짖는 새. ” 제주도의 한 문인은 지난해 11월 부터 70일이 넘도록 공전하고 있는 ‘제주신문 사태’를 이지역 출신 작가가 쓴 소설제목을 빌어 이렇게 비유한다. 지역사회의 가장 전통깊은 신문이 경영주와 사원들간의 대립으로 끝내는 폐업에 이르렀고 온섬이 이 문제로 들끓고 있는데도 중앙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는 답답함을 두고 한 말이다.

 제주신문 사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여느 신문의 분규와는 다른 독특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노사간의 갈등이 아니라 ‘5공 인사복귀 반대’라는 미묘하고 특수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 데다, 그 전개양상을 봐도 언론사상 보기 드물게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논설위원을 비롯한 간부직 사원까지 똘똘 뭉쳐 70여일이 넘게 철야농성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인 제주도민들이 쟁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점도 이 사태의 특수성을 더하고 있다. 제주도내 각계인사 1백2명은 ‘제주신문 정상화를 위한 도민협의회’(도민협)를 결성해 ‘10만도민 폐업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5공인사 복귀에 반발
 제주신문 사태의 시발은 지난해 11월9일부터지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88년8월 당시 金大成사장이 ‘제주도내 대표적인 5공인사’로 지목되어 노동조합측의 끈질긴 사퇴 압력에 받고 사장직에서 물러난 데서부터 비롯된다. 김씨는 5공초기인 80년 ‘10 · 27’법난 당시 국보위 관계자들에게 사무실을 빌려준 것을 계기로 당시 액면가의 30~40배를 웃도는 제주신문 주식을 액면가 대로 사들여 사장으로 취임한 뒤 제주신문을 급성장시킨 인물로 제주사회에선 알려진 인물.

 영향력있는 사장이 물러나면서 자유언론은 확보했지만 경영에서는 다소 어려움을 겪게되자 지난해 9월부터 사내 일부에서는 “10억의 적자를 기록하는 현재의 경영난을 극복하려면 대주주인 김대성 전사장을 경영일선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분분의 사원들은 이러한 적자규모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며, 설사 경영상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까스로 얻어낸 자유언론의 길을 희생하며 지난날 과오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5공언론인을 불과 1년도 안돼서 경영에 참가시켜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던중 지난해 11월 9일 열린 임시이사회가 경영난 극복을 이유로 당시 상무이던 梁主厦씨를 공석중인 사장직무대행으로 임명하면서 제주신문 사태는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노조측은 梁씨가 평소부터 “김대성 사장의 복귀를 주장해온 점”을 들어 “5공언론인 복귀를 위한 사전포석”인 이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철야농성에 들어갔고 논설위원단, 국장단, 부장단 등 간부진들도 잇따라 이에 동조하는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경영주와 사원들이 평행선을 달린 끝에 1월5일자로 사업주측이 폐업신고를 함으로써 일단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제주신문 전 사원들은 폐업 이후 사업주의 요청으로 전화도, 보일러도 끊겨 큰 덩치가 더욱 썰렁하게 느껴지는 제주신문사옥에서 8면짜리 신문을 4면으로 계속 내고 있다. 신문을 만드는 데는 잉크와 종이값 등 하루 50만원쯤 드는데, 이 비용은 모두 제주신문 애독자들이 보내오는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다.

도민주 공모해 재정난 타개할 수도
 洪熏基(40)노조위원장은 “한번은 시장에서 호도과자장사를 하는 할아버지가 돈을 보내와 모두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며 “종이가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들과의 약속은 어기지 않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 하오 3시 ‘도민협’이 개최한 “폐업철회촉구대회”에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2천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제주신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도민협’에 의하면 1월 17일 현재 ‘10만도민 폐업철회 서명운동’에 참여한 숫자는 5만명에 이른다.

 이런 특이한 현상을 ‘도민협’회장 趙文父(55, 제주대)교수는 “제주신문이 그동안 기자들의 노력으로 4 · 3사태, 탑동사건 등 지역사회의 문제를 열심히 대변해온 데 대한 격려”이자 “그런 언론이 다시 비합리적인 권력이나 자본의 횡포에 좌우되어 왜곡된 길을 걸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趙교수는 현재 도민들의 열기를 본다면 도민주를 공모해 재정난을 타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사태의 두 당사자인 경영자측과 사원들에 의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게 현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물론 폐업은 세무서에 신고하는 영업상의 절차일 뿐으로 신문의 생명을 끊는 폐간이나 법인체 해산까지는 아직 시간은 있다. 그러나 경영주측에서는 다시 신문을 하더라도 “대주주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사원들만 받아들이겠다”는 선별적 입장이며, 사원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도덕한 자본을 용납할 수는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제 제주신문 사태는 노사 두 당사자의 갈등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비화한 만큼, 또한 신문은 개인영리기업이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과 생명을 지닌 公器인 만큼 중앙의 정치권에서도 “변방의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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