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貨 ‘과대평가’ 조정될 것인가
  • 조윤증 기자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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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평균 환율제 도입 앞두고 재계 관심 고조…절하 기대심리로 외환거래는 급락

 지난해 12월 21일 미국의 파나마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 미달러화는 런던시장에서 큰 폭으로 올랐고 이어 개장된 뉴욕시장에서는 약세로 돌아섰다. 이응평씨가 미그 19기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사건이나 중국 민항기가 국내에 불시착한 사건이 일어났던 날도 미달러화는 아시아 지역 외환시장에서 폭등했다.

 예견치 못했던 굵직한 정치, 군사 관련 뉴스는 국제 증시는 물론 외환시장, 또는 곡물시장 등을 뒤흔들어놓곤 한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의 사임설로 세계증시가 일대 혼란을 겪었던 것도 얼마전의 일이다.

 이처럼 세계 주요 금융시장은 경제외적 돌발변수에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국내 주요 은행의 외환거래실에서 일하는 10명 안팎의 젊은 ‘딜러’들은 도쿄 외환시장이 개장되면서 더욱 긴장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물론 도쿄시장이 열리기 전에 시드니, 웰링톤, 뉴욕, 런던 등 국제시장에서 형성된 달러, 엔, 마르크 등 주요 국제통화 시세의 움직임과 함께 국내외 주요 뉴스를 빠짐없이 추적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시행돼온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하에서는 중앙 은행인 한국은행이 달러의 수요 공급의 측면외에 정책적인 변수를 가미시켜 당일 아침 주요 통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를 고시, 이같은 국제 시세 흐름으로부터 한발짝 비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환율조작국’이란 인상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예정대로 올해 상반기부터 시장평균 환율제가 시행되면 이들 딜러들은 더욱 바쁜 하루를 맞게 될 것이다.

 평균 환율제의 도입을 앞두고 재무부와 한국은행은 최종 마무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李揆成 재무장관은 지난주 텔레비전 회견에서 시장 평균 환율제를 이번 상반기중 빠르면 3월부터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대고객매매율 자유화에 이은 환율제도 개편의 제2단계 조치이다. 재무부는 그 시행 일자와 새로운 제도의 시행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시행에 따른 규칙 등 세부계획 발표가 임박해 있다.

외환시장 자율화로의 점진적 이행
 시장 평균 환율제도는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시행해왔던 현행 복수 바스켓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고 은행들 사이에서 환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외국환은행의 전일자 은행간 환율을 거래량으로 가중 평균해서 금융결제위원회 외환거래실에서 당일의 시장 평균 환율을 산출하게 된다. 그러나 환율 변동이 심할 경우, 또는 실세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한국은행이 개입한다.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렇게 산출된 평균환율을 중심으로 각 외국환은행은 위 아래 1%씩의 범위 안에서 거래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시장 평균환율이 달러당 7백원이 된다면 다음날 은행간 환율은 최고 7백7원과 최저 6백 93원 사이에서 정해지게 된다. 일반 고객에게 사고파는 대고객매매율도 이 환율을 기준으로 위아래 0.4%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은행간 거래는 외국환 은행이 대고객거래결과 발생한 오픈 포지션(환 리스크에 놓여 있는 부분)과 자금과부족을 조정하거나 스스로의 환시세 전망에 따라 환차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거래이다. 수출 업체가 달러로 받은 수출 대전을 원화로 바꾸기 위해 달러를 은행에 팔면 은행은 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또다시 달러를 원화로 바꾸게 된다. 다시 말해 은행은 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수입업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결제하기 위해 원화를 팔아 달라를 사야하는데 이같은 외환의 수요, 공급자들을 위해 은행들은 외환을 팔거나 사게되는 것이다. 외환시장은 일반적으로 시장 참가자를 기준으로 대고객 시장, 은행간 시장, 한국은행 시장 개입으로 구별되는데 그 규모로 보아 은행간 거래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원화의 실제 가치 회복에 관심 몰려
 재무부도 인정하듯이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 아래에서는 원화 환율이 타국의 경제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동되기 때문에 운영의 한계점을 들어내고 있던 실정이었다. 원화의 미달러에 대한 절상폭은 지난 4월부터 주춤한 반면, 엔화나 서독 마르크화는 미달러에 대해 약세를 나타내 결과적으로 이들 통화에 대한 원화의 절상이 이루어졌다. 재무부와 한국은행이 마무리 작업을 벌이고 있는 시장 평균 환율제의 기본내용은, 원화의 환율을 주요 국제 통화에 대한 수요 공급에 의한 시장 가격 기능에 맡겨 원화의 가치를 시장에 의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시장 평균 환율제 도입을 앞둔 경제계의 관심은 이 제도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과연 과대평가되었다는 원화의 가치가 적정수준을 되찾을 수 있을까에 몰려 있다. 그러나 시장 평균 환율제의 도입이 바로 원화의 절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3년간 30% 이상의 급격한 원화 절상의 영향으로 최근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작년 12월부터는 소폭의 원화 절하가 계속되었다. 올들어 1월18일 현재 원화는 달러에 비해 3원20전 이상 절하되었다. 이에따라 원화의 추가 절하 기대감 때문에 달러를 팔려는 사람이 급격히 줄고 있다. 원화 절하가 시작된 지난해 12월부터 은행간 외환거래는 그 규모가 하루 평균 5천만 달러 수준으로 11월 이전의 하루평균 거래액 1억달러를 훨씬 밑돌고 있다.

 또 미달러화의 은행간 거래시세는 한은이 고시하는 집중률보다 4~5원, 은행이 고객에 파는 전신환 매도율보다도 1~2원 높게 비정상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절하의 기대 아래 미달러화에 대한 ‘사자’는 많아도 ‘팔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시평제를 실시할 시점에서 원화의 가치가 적정 수준으로 판단돼 대기했던 달러 매물이 쏟아져 나온다면 원화는 다시 절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시평제 실시를 앞두고 각 경제단체에서 요구하는 1달러당 7백원대의 원화가치 회복이 가능할는지 의문이다.

 한편 시평제가 도입된다하더라도 복수통화 바스켓에 의한 환율운용의 한계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대일 적자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엔화에 대한 원화의 고평가가 조정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 엔화 시장이 차지하는 부분이 작을 뿐만 아니라 국내 외환시장이 국제시장에서 형성되는 엔화와 달러 시세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에, 일각에서 일고 있는 원화의 엔화에 대한 절하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내 외환시장의 일일 평균 거래 규모는 약 1억달러로 급증하고 있는 세계의 외환거래규모인 5천억달러에 비해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제도적 뒷받침 뒤따라야
 “뒤늦은 감이 있지만 도입 자체는 환영한다. 대만은 이미 작년말 자유 환율제로 이행했고,우리는 이제 그 이전 단계인 시장 환율제로의 이행을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이 제도의 성패는 중앙은행이 얼마나 환율 결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느냐에 달려 있다.” 외환시장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L씨는 말한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의 환율 정책은 어떠한 측면에서 보면 피동적이었다. 각 시중은행이 한국은행에 요청하는 데 따라 개입했기 때문이다. 시평제가 도입되면 개입 자체가 상당히 능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제도가 잘 운영되면 미국으로부터 오는 원화절상의 압력을 피할 수 있어 오히려 정부가 보는 적정한 환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외환 시장을 본격적으로 이용, 통화량 관리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趙淳부총리가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대로 올해 한미 경제관계의 가장 큰 현안은 환율문제로 예상되고 있다. 환율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미국의 우선협상 대상국(PFC) 지정 가능성까지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줄곧 요구해오고 있는 즉각적인 자유 변동 환율제 실행의 사전 단계인 시장 평균 환율제 도입에 대한 우리측 입장의 충분한 설득이 부담으로 남아 있다.

 환율의 결정은 두개의 통화가 개입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금융 조직이 외화 따로 원화 따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 아래에서 서로 상호 보완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환율의 가격 기능 미흡, 외환의 양적 규제와 원화의 교환성 불인정, 외환 시장조직의 기반 취약, 외국환 은행의 외화 자금 조달과 운영 규제 등 제약 요소가 산재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되어왔던 시절에 통용되던 외환 수요에 대한 양적 규제를 완화, 외환 시장의 수요 기반을 확충해야하고 이와 함께 외환포지션에 대한 규제도 여건이 허용하는 대로 완화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은행간 단기 외화 자금의 과부족을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는 단기 금융시장의 발전도 시급하다. 이같은 제반제도가 동시에 발전함으로써 앞으로 선물 거래시장을 포함해 우리 외환시장이 보다 선진화된 환율 제도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외환시장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완벽에 가까운 완전경쟁시장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우리 자본시장이 국제무대로 점차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새로운 제도 도입과 함께 그를 위한 여건 조성과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시장 평균 환율제 도입 이후 환율에 대한 논란이 국내외에서 또다시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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