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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 · 출판평론가)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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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 일 아닌 ‘金宇中’선풍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99쇄 1백만부 판매 기록
 金宇中 대우그룹회장의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가장 전형적인 베스트셀러의 모델로 이제 자리를 굳힌 것 같다. 우리에게서 베스트셀러란 기실 ‘일정기간 동안에 어느 수준을 넘는 부수’라는 기초적 기준조차 없이 그저 누적된 부수를 상대적 비교로 일컬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명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관례화돼 있는 척도가 있다. 우선 판매부수가 그 나라 국민의 1% 이상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이것이 단시간내에 팔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시간은 또 대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쯤으로 본다. 바로 이 기준에서 《세계는…》은 지난 5개월 새 1백만부를 팔았으니까 베스트셀러로서 국제규격품이 된 셈이고 우리 出版社에있어서도 앞으로 결코 지울 수 없는 목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본때 있는 베스트셀러 현상을 보게되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또 모두 이 현상 속에 무슨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인가 하는 호기심의 확대로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하나도 이상해보이는 것이 없다.

 우선 이 책은 富와 연관돼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기업가다. 이만한 인물의 자전적 글이란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서도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첫 번째 요소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사회에서 모든 연령층의 독자를 다같이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점은 부연설명이 좀 필요할지 모른다. 그동안 우리는 막연히 독자라는 말들을 써왔지만 실제로 출판물의 독자란 연령층으로 분리되고 또 제한된 독자였다. 시집의 베스트셀러는 10대의 독자들끼리 만들어온 것이고 문학서나 사회과학서 베스트셀러란 20대끼리만 만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어폐가 없을 만큼 한국의 실질적 독자란 20대 이하에서만 존재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세계는…》의 저자는 모든 연령층에게 거의 비슷한 관심의 인물로 성장해왔고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당대 사회에 아직은 상처와 하자가 가장 적은 인사이다.

 여기에다 《세계는…》에 반론을 제기하는 책까지 간행됐다. 그리고 이 반론을 제기한 저자는 또 그 자신이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현재도 체제와 반체제 논리 사이에서 중심인물로 부상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베스트셀러 현상에서 보면 반론의 제기는 대상도서의 판매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더 잘팔리게 해주는 자극제가 될 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실은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베스트셀러 만들기’의 조건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1백만부쯤 팔린다는 것에 그 이상의 의미를 특별히 찾아내려 할 필요조차 아예 없다고 말해도 좋은 것이다. 오히려 ‘金宇中선풍’이라고 까지 표현하면서 너무 크게 놀라고 있는 현상이 바로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에 대한 반증임을 반성할 필요는 있다. 딴 나라들을 좀 보라. 보통시민이 연간 2백만부나 3백만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수십종씩 만들고 또 수십종씩 읽으면서 산다. 그속에 가끔 재벌의 성공담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인생의 진리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내용의 보다 높은 질적향상에 대해서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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