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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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권위에 맞서 연극인들 ‘막’ 내려

문화부는 뒷짐지고 방관
 李御寧 문화부장관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을 ‘문화발전 열고개’로 바꾸어 불렀다. 고개를 열 개 넘으면 광활한 문화의 초원이 펼쳐진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한 이 신조어에 대한 문화계 인사들의 반응도 열고개만큼이나 다양했다. 미사여구 나열에 불과한 말장난이라는 부정적 혹평이 있었는가 하면, 한국학회 허웅이사장은 “권위의식을 탈피하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고, 유네스코 白承吉문화부장은 “催秉烈전장관이 틀을 마련한 10개년 계획을 현실적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라는 등의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그런데 그 첫 번째 고개앞에서 최근 뜻하지 않게 나타난 걸림돌에 문화부가 뒷짐을 진 채 수수방관, 문화계 인사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연극인들이 서울시의 행정우월주의에 반기를 들고 지난 19일을 ‘연극 안하는 날’로 결정하고 서울에 있는 38개 연극공연장의 막을 내려버린 ‘돌발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지방자치제에 대비, 서울시가 작년말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시의회 의사당 전용 공간으로 결정한 것에 반발한 이 사태는 ‘용산 미 8군자리에 의사당을 건립한 후 별관을 환원한다’는 등의 서울시 제의에 연극인들이 신축성을 보이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문화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문화부에 있는 게 아닐까. 그동안 문화예술인을 압박해온 것은 문화예술행정의 시행착오나 오류가 아니라 문화에 대한 ‘행정우월주의’가 아니었던가.

 이번 서울시와 연극인과의 맞대결도 바로 행정우월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문화부가 해결해야 할 ‘첫째 고개’는 바로 문화를 경시하는 관료들의 행정권위주의를 뜯어고치는 것이라는 게 문화계 인사들의 반응이다. 더구나 2000년을 앞두고 90년대의 민의를 전화로 수렴하겠다는 취지에서 대민전화 ‘까치소리(735-1990)’도 만들어 놓은 새 문화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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