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전철’10년 연기해야
  • 임강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 승인 1991.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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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경부고속전철사업은 그 파급효과와 재원규모 그리고 당면한 교통난의 심각성에서 볼 때 그 타당성을 재검토하여 좀더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2000년 이전에 완공을 예상할 때 승객운행의 채산성이 극히 불투명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철도의 운행비용은 최고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운행비는 현재 새마을철도의 6배를 상회할 것이다. 철도의 채산성은 운행의 장거리화, 수송의 대량화에 좌우된다. 현재의 경부축 고속승객의 수요는 앞으로 국민소득의 증가를 감안하더라도 경제규모에 도달하기는 크게 미흡하다. 앞으로 상당 기간 가장 경제적인 고속교통수단은 항공일 수밖에 없다. 기존 철도의 운행적자는 국민 대중교통이라는 차원에서 정부지원이 양해될 수 있으나 경부고속전철의 지원은 타당성을 찾을 수 없다.

 둘째 경부축의 도로교통 체증문제는 자동차 대중화 추세로 볼 때 앞으로 정부가 도로망을 대폭적으로 확장해나가지 않으면 더욱 급격히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도로연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가용 투자재원하에서 정부가 경부고속전철과 도로망 확충이라는 두가지 사업을 동시에, 같은 기간 내에 수행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셋째 경부축 교통에서 가장 중시돼야 할 화물소통에 있어 고속전철의 기여가 극히 미미하다는 점이다. 화물교통체증은 수출경쟁력을 잠식하고 산업활동을 위축하므로 시정이 시급하다. 고속전철과 같은 고에너지 수단은 화물수송에 비경제적이고, 대신에 기존 철도를 화물수송으로 전환한다 해도 그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경부고속전철 건설에 전념한다면 화물수송을 위한 대책은 추진될 수가 없다.

'고속전철건설법' 먼저 제정해야
 넷째 경부간 고속승객을 위한 고속전철의 시간단축 효과는 도시 교통체계와 통합적으로 계획되지 않는 한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서울과 부산에서 역 또는 공항까지의 연결시간과 공항수속 대기시간을 각 1시간으로 가정하면, 출발지의 집 앞에서 종착지 집 앞까지의 총교통  시간은 항공이나 고속전철이 모두 4시간으로 같고 현재의 새마을철도의 6시간보다 2시간 단축하는 데 불과하다.

 이상과 같은 분석결과를 볼 때 현 시점에서 정부가 취해야 할 최선의 대안은 고속전철의 착공시기를 10년 뒤로 연기하고, 그 대신 '고속전철건설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당장에 타당성이 불투명하고 계획수행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대형사업의 경우 착공을 서두르기보다는 사업의 시행을 입법화하여 추진하는 예를 구미 각국에서 볼수 있다.

 입법화된 사업은 정부가 반드시 시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약사업을 이행하는 것과 같다. 또한 대형투자사업을 경제실정에 맞게, 그리고 관련부처들과 협의조정하여 치밀한 계획을 수립토록 근거와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효과를 높인다. 선진국들은 사업실시 10~20년 전에 고속전철 건설법을 제정하여 여러 관련기관들이 공동으로 일관된 계획을 수립토록 했고 특히 지방도시 정부와 통합된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산업계에 대해서는 장래의 확실한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부터 기술개발에 전력투구토록 했다.

기존 도로 · 철도 확장 시급
 한편 경부축의 교통체증 완화와 화물소통을 위해 당장 시급한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추진할 사업으로는 첫째 서울~대전 구간의 도로 및 기존 철도의 확장, 둘째 부산항 기능을 분산시킬 광양 · 인천 ·아산항의 개발과 이들로부터 시작되는 내륙교통망의 확장, 셋째 일반 도로망의 확장이 중요하다.

 현재 경부축의 교통체증은 전구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울~대전 구간에서 가장 심각하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중첩되는 철도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서울~대전간 기존 철도의 복복선화 사업은 투자효과가 가장 높다고 판단된다. 고속도로의 경우 대전 세계박람회(EXPO)계획과 관련하여 8차선 확장이 이미 추진되고 있다.

 화물교통문제에 있어 경부축 화물의 과반은 수도권과 부산항을 잇는 통행이기 때문에 부산항의 기능을 분산시키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다. 동양 최대의 항만여건을 갖춘 광양항은 내륙 교통수단의 제약으로 기능이 저하되고, 인천항 또한 배후연결 교통수단의 부족으로 제 용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아산항의 개발과 배후 교통시설의 확충은 지금부터 착수해도 5년뒤에나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업이다. 현재 경부축 화물교통의 혼잡은 국가 교통체계의 구조면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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