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보존지구 해제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1.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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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가화동 및 삼청동 일대 한옥 보존 문제는 서울시가 지난 4월 남아 있던 3백70여채를 보존지구에서 해제해 일단락됐으나 주민 불편과 문화보존 논리가 여전히 맞서고 있다.

찬: 우경국 예공건축 대표.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건축대전 초대작가

● 한옥 보존지구 해제에 찬성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이 지역이 중요한 곳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보존방법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합리적인 보존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의 증 ·개축이 엄격히 제한되다보니 주민들이 여러가지 불편을 겪어왔다. 지역개발자체가 제한을 받게 돼 집값이나 땅값이 형편없이 떨어져 재산상의 불이익도 많았다. 정부의 보존대상 설정과정에 일관성이 결여됐던 점도 주민들의 불만 요인이었다. 이 지역내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건물들은 이미 규제가 해제돼 전부 헐려버린 상태고 오히려 옛날 서민들이 살던 지역만 계속 묶어두었다는 점이다. 정부의 보존논리에 따르면 이 지역 안에 있는 현대빌딩 헌법재판소 한국병원 등도 마땅히 지어서는 안되는 건물들이다 .

● 83년 정부가 이 지역을 4종 미관지구로 묶어둔 이래 약 8년 동안 주민들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어려움이라면?
 한마디로 도저히 못살겠다는 것이다. 생활양식은 이미 현대식으로 바뀌어버렸는데 그것을 과거의 주거양식에 맞추다보니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주거설비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현대적 생활감각에 따라 화장실이나 부엌 등을 개량해야 되는데 부엌을 개량한다고 부엌바닥을 평평하게 하면 천장이 너무 낮아진다. 또 장롱 등을 들여놓으려 해도 전통한옥구조에서는 들여놓을 공간이 없다. 정력에서 보존에 가장신경을 썼던 것은 한옥의 지붕양식인데 알다시피 한옥지붕은 진흙 위에 기와를 얹어놓은 것이다. 이것이 오래돼서 장마철에 비가 새기도 한다. 또 기둥이 썩어서 지붕이 내려앉기도 하는데 지난번에는 이로 인해 주민 세 사람이 압사한 일도 있었다.

● 재산권 행사 제한에 따른 피해의식도 상당하다는데‥
 그렇다. 다른 지역은 집값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이 지역은 8년 동안 개발이 제한되다보니 부동산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골목길이 꾸불꾸불하고 건물의 증 ·개축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누가 이곳에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 그동안 주민들의 집단민원이 끊이지 않자 서울시는 지난 89년 말에 가회동 11, 31번지 그리고 삼청동 35번지 내 3백70여가구만 남겨놓고 일차로 15만여평에 대해서 보존지역을 해제했었다. 그리고 지난 4월말에는 이 3백70여채에 대해서도 해제했다. 앞으로 이 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현안일 것 같은데‥
 가장 큰 문제는 이 지역 주민들 중 많은 사람이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건물의 필지가 작아서 단독 개발도 어렵다. 그대로 방치하면 무분별하게 건물이 들어서 슬럼지대로 변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주민끼리 각자가 소유한 토지를 합쳐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법이다. 현재 가회동의 몇몇 지역에는 개발과정에 중견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중 여섯명의 건축가들이 얼마전에 모임을 갖고 각자가 생각하는 지역개발 모델을 놓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공통으로 제기된 의견이 이 지역에 독특하게 남아있는 공동체적 생활공간은 앞으로도 계속 살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회동 지역은 골목길과 마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나라 옛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이 지역 주민들은 아파트단지 둥에서 일반화돼 있는 개체중심의 생활형태가 아닌 공동체적 생활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개발이 된다 해도 이런 장점은 계속 살려가면서 거기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다.

●개별 가옥의 경우는 어떤가? 개량 한옥 형태가 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문제는 주민 각자의 선택에 맡겨질 것이다. 한옥은 조선시대 생활양식에 가장 적합한 주거공간이다. 당시에 가장 흔한 건축재료를 가지고 당시 사람들의 생활 풍습을 가장 잘 반영한 가옥형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습관 등이 바뀐 오늘날에 한옥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옥이 현재의 생활습관과 맞지 않는다 해도 역사적인 문화유산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보존할 필요도 있는 것 아닌가?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역사를 이어받아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또 하나는 역사 자체를 변화하는 것으로 보고 그 변화 자체를 창조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서울시내에 널려 있는 고충건물들도 5백년쯤 후 역사적 유물이 되는 것 아닌가. 전자와 후자의 견해를 포용해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반: 김홍식 명지대 건축광학과 교수. 홍익대 건축학과 졸업. 건축대전 초대작가.

●한옥 보존지구 해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연환경뿐 아니라 인문환경, 특히 역사적인 문화유산은 한번 그 원형을 상실하면 다시 살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토종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과거 한때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마구잡이로 잡아 멸종의 위기까지 갔었다. 요즘 필요성을 다시 느껴 원형을 재생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보존의 필요성을 못 느낄지 모르지만 나중에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필요성이 다시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원형상태를 보존하지 않으면 그때 어떻게 한옥을 재현할 수 있겠나. 또 우리 세대만 해도 한옥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후손들로 갈수록 한옥에 대한 체험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후손들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물려준다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원형이 보존돼야 한다. 지금 보존돼야 할 것은 한옥뿐만이 아니다. 선조들의 생활흔적이 있는 곳 모두가 보존돼야 한다.

●한옥보존과 관련, 가회동 지역 일대가 특별히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지역이 갖고 있는 중요성은 주민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조선조 때 내노라하는 양반들이 살던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옥지구다. 지금도 건물의 밑바닥을 파보면 당시의 생활흔적들이 나오고 있다. 불론 이 지역 건물들이 모두 조선조 때 지어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일제 때 지어진 건물이 많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옥이 전근대적이라는 이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우면서 한옥짓는 것 자체를 막았었다. 그런데 당시 지역 주민들이 민족정신의 수호 차원에서 일제의 박해를 무릅쓰고 일부러 한옥양식을 고집해 짓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의 한옥에는 선조들의 민족정신이 담겨 있다. 또 한 가지는 다른 곳의 한옥의 경우에는 일정시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것들인데 이 지역의 경우는 지어진 시기가 넓게 분포돼 있어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한 지역 전체를 묶어두지 말고 보존할 가치가 골라서 할 수도 있었지 않나? 있는 집들만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한옥도 문제지만 골목길이 형성돼 있는 모습 등 전체 마을의 분위기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을 단위를 묶어둠으로써 선조들이 살았던 삶의 모습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 지역이 보존지구로 묶여 있음으로 해서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민들의 입장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것이다.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즉 주민들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주거나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땅을 샀을 때 현재의 지역에서 제한했던 만큼을 보상해주는 방법 등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토지정책이 잘못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즉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 등이 정착이 안돼 있어 토지가 부의 축적수단으로 인식돼 있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본의 경우요즘 한창 옛날의 집들이나 마을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운동이 시민운동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일본은 토지가격이 우리처럼 높아도 토지공개념이 확립돼 있어 우리와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옥구조가 현대적 생활감각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한옥의 외형을 보존하면서도 내부공간을 현대생활의 감각에 맞도록 개조하는 문제는 절대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인 것이다. 예를들어 중앙공급식 방법을 도입해 냉난방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화장실을 실내 수세식 화장실로 개조할 수도 있다. 가구의 경우도 외부에서 들여오지 않고 마을에 제작소를 두어 주거공간에 맞도록 개발하면 된다 . 문제는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경제력만으로는 안되니까 정부 차원의 대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한옥의 문화재적 가치는 무엇인가?
 한옥의 공간구조는 조선시대의 미학적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옥구조에서 보편적인 것이 씹 한가운데가 하늘로 터져 있는 것인데 이는 주자학의 理氣論에 따라 氣가 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공간을 통해 자연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은 보다 발달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어쩌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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