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는 이제 끝났다”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1.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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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이제 끝났다. " 지난 14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당선자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러시아 1천년 역사상 처음 치른 대통령선거에서 압승한 옐친, 그는 감격스런 목소리로 "공산주의자들, 정직한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공산주의의 체제가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이를 역전시킬 방안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1년 전까지만 하여도 "정직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가 미지근한 데 불만을 품고 공산당을 떠났으며, 정치적 다원주의와 서방식 시장경제체제라는 선
명한 기치를 들고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것이다.

 러시아공화국은 소련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15개 공화국 중하나. 그러나 영토에 있어 소련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소련 인구의 절반이 넘는, 그리고 정치 · 경제 · 군사 ·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공화국, 말하자면 소련의 사실상 '전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서방 민주주의의 신봉자 옐친이 60%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 그것은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에 버금가는 '새 러시아혁명'이 아닐 수 없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이 소수 볼셰비키들의 폭력 공산혁명이었다면 '새 러시아혁명'은 국민투표에 의한 평화적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선거혁명'으로 보수반동의 '붉은 역풍' 가능성 줄어
 옐친의 당선을 막기 위해 공산당은 별의별 수를 다 썼다. 공산당은 제1차 투표에서 옐친의 과반수 득표를 막기 위해 5명의후보자를 난립시켰으며 (프라우다)둥 관영언론이 옐친의 인격을 암살하는 대대적 흑색선전을 벌였고, 심지어 그를 정신병 환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옐친은 1차 투표에서 60%가 넘는 압도적 다수로 이겼으며 고르바초프가 민공산당 공인후보 리즈코브 전 수상은 16%를 얻었다.

 어디 그뿐인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등 주요 도시에서 옐친을 지지하는 비공산당 개혁파가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레닌그라드라는 도시명에서 소련혁명의 아버지 '레닌'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렸다. '레닌' 대신 러시아 역사의 名君 '페트로' 대제의 이름이 복귀하여 레닌그라드는 페테르스부르크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페테르스부르크는 수백년간 제정러시아의 수도였으나, 볼셰비키혁명이 바로 그곳에서 일어났고 혁명의 상징으로 레닌의 이름을 따 레닌그라드가 되었다. 이렇듯 공산주의에 있어 레닌그라드는 영구불변의 성지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제2차 대전 중 나치스의 침략군에 9백일간이나 포위, 봉쇄되었으나 50만명의 전사자를 내면서도 끝내 사수했던 '영웅의 도시'였다. 그러나 '영웅의 도시'의 후예들은 투표장에서 레닌의 이름을 떼어내고 옛 성군의 이름을 복귀시킨 것이다.

 이번 선거혁명으로 소련에 보수반동의 역풍이 불어 다시 한번 붉은 전체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 일당지배라는 원리를 깨끗이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서방식 시장경제 도입을 기하려는 엉거주춤한 개혁주의자였는데 이제 옐친과 손을 잡고 분명한 탈공산주의 혁명을 앞당겨야겠고 그러한 분명한 방향설정이 있어야만 서방세계의대대적 경제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혁명을 통해서 공산당이 손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민주주의적 혁명의 성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공화국 내에서 각급 공산당 세포조직을 해체하고 복수정당체제를 허용하고 사기업과 토지의 소유를 허용하는 등 일대개혁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옐친은 소련의 대통령은 아니다. 러시아공화국을 포함한 15개 공산국을 묶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어떻게 될 것인지, 바로 이것이 '새 혁명' 성패의 결정적 열쇠가 될 것이다. 지난 4월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각 공화국이 상당한 주권을 누리는 '느슨한 연방'안에 합의하였고9개 공화국이 이에 동의하였다. 이름도 '소비에트 주권공화국연방'으로 바꿔었으며, 소련 영토 및 인민의 5분의 4가 여기에 포함된다. 나머지 6개 공화국은 완전독립을 주장하고 있지만'준회원국' 자격으로 참여할는지 ,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고 새연방조약이 7월 소련연방의회에서 심의된다.

“민주적 러시아는 제국주의적 러시아가 되지 않을 것"
 사실상 중앙에서 공산당이 전체를 계획 · 지시 · 통제하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운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원하는 여러 민족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것이 소비에트 주권공화국 연방안인데, 분명한 것은 소련의 중심세력인 '러시아'가 명실상부하게 민주화될 해만이 민주주의적 ·자발적 연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권위자 지그니브 브레진스키의 말마따나 "제국주의적인 러시아는 민주적 러시아가 될 수 없고, 민주적 러시아는 제국주의적 러시아가 되지 않을 것이다. " 러시아의 운명과 소련의 운명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면, 옐친의 압승은 그의 말대로 민주적 러시아의 탄생을 뜻하고 소련에서   "공산주의는 이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3억 인구의 이질적인 소련 사람들의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단시일내에 뿌리내려 자유와 안정과 번영의 땅이 될 수 있을지. 거기에 대해서는 권위주의에 젖은 정치문화 등 변수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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