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졌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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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야권 단일후보 신맹순씨의 선거운동 24일 / 결정적 패인은 ‘실제적 단일화’ 실패

 지난 21일 새벽께. 초반에 고전하는 듯 하던 민자당이 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파란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야권이 단일후보 27명을 내놓은 인천지역만은 여권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 지역에서 당선된 야당 후보는 6명. 막판까지 여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다 떨어진 후보들도 대부분 표차가 1천여표 안팎이었다. 야권의 전반적인 참패에 비추면 이변이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인천지역의 결과가 참패한 야권의 앞날에 유일한 희망적 단서를 던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천지역 범야권 단일후보의 한 사랑인 신맹순(49) 후보. 8백26표의 근소한 차로 떨어진 그의 ‘선거일지'를 통해 야권 단일후보가 거둔 성과와 한계, 이번 광역선거의 한 단면을 살펴본다.

5월27일 : 인천 올림푸스 호텔에서 인천지역의 범야권이 27개 지역구의 단일후보공천에 합의한 사실이 공식발표됐다. 이 지역 야당 관계자들과 시민 ·사회운동단체가 2개월여의 산고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이는 전통적인 '야당도시'임에도 지난 13대 총선에서 야권 후보 난립으로 야권이 단 1석도 못 얻은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공통인식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신후보도 재야 몫으로 남동구 제2지구에 공천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열린 '인천지역 범야권 단일후보 조절위'의 후보 심의에서 항상 우선순위로 꼽혔다. 후보조절위는 그가 이 지역의 명문 제물포고등학교 해직교사이자 전교조 인천지부장으로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점을 평가했다. 전교조를 과격운동권으로 바라보는 일반의 인식이 선거전에서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70년대부터 인천지역 전역을 현장답사하며 ‘인천시내 공업지역의 문제점과 새 방향'을 비롯 이 지역의 관광, 토지이용, 교통망 등에 대한 4편의 논문을 내놓은 도시문제 전문가라는 이력이 그 부담을 덜어줄 장점으로 꼽혔다.

6월1~3일 : 신후보는 첫날인 1일 일찌감치 후보등록을 했다. 야권 단일후보였지만 기존 정당소속이 아니어서 선거법상 어디까지나 무소속일 뿐이었다. 게다가 후보등록 마감날, 지구당의 단일후보 합의방침에 반발한 이 지역 민주당 부위원장 출신인 o씨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함으로써 단일후보마저 ‘내용상'으론 깨지고 말았다. 해직교사 2명이 홍보물 제작을 맡았다. 개인홍보물의 주제는 ‘여러분의 이웃사촌'으로 결정됐다. 그의 평소 인사말이었다.

선거 초반전 전략은 ‘홍보물로 초기 기선제압'으로 잡혔다. “선거는 처음 해보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다름없다. 백지상태에서의 인지학습이 효과적이듯이 선거에서도 처음 듣는 후보의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는 신후보의 지론 때문이었다. 비단 ‘인지학습'론이 아니더라도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산출하는 홍보전'은 기간 선거조직과 자금력에서 절대적으로 역부족인 신후보측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거전략이기도 했다.

6월1일부터 신후보와 그의 동료 해직교사, 옛 제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새벽 5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상가와 전철역 등 선거법이 허용하는 공공장소에서 홍보물을 뿌려댔다. 다른 후보들이 미처 홍보물을 준비하지 못한 시기라 처음 받아드는 유권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야권단일후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유권자들이 많았지만, 일단 설명을 듣고 나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전교조 해직교사라는 점은 역시 ‘호감'과 ‘반감'이 뚜렷이 갈라지는 대목이었다.

신후보측이 홍보물 살포전략을 쓸 즈음, 간석동 일대의 미장원 등지에는 여당후보의 넥타이핀이 나돌았다. 이 지역 국회의원인 민자당 ㄱ의원의 이름과 광역의회 후보의 이름, 민자당 마크가 새겨진 것이었다. 이밖에도 여권 후보에게 무엇무엇을 대접받았다는 시민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확인불능'이었다.

신후보 선거사무실에도 1차유세 직전 ㄱ아파트의 한 주부라면서 “10여명이나 모였는데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전교조 후보라는 ‘선입견'때문인지 유권자들의 노골적인 금품·향응요구는 드물었다. 다만 부탁인사를 하는 신후보에게 “맨입으로 되느냐. 막걸리라도 몇 병 사놓고 가라"고 농담을 건네는 경우는 상당수 있었다.

이 무렵의 후보수행일지는 ‘아마추어' 후보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악수를 너무 여러 차례 권하시는 것 같다. 강요로 보일 것 같다" “제자를 만났을 때 부자연스러워 한다" “태도가 너무 조급하고 여유가 없다" “후보가 홍보물을 돌리는 건 재고해야 한다. 운동원이 아니니 대화에 주력해야 한다.”

6월9일(1치유세) : 청중 1천5백여명이 모여든 첫 유세는 기초의회 때의 썰렁함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세번째로 진행된 신후보의 유세를 들은 청중은 5백여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나마 신후보쪽이 ‘동원'한 전교조 조합원, 현직교사, 소래포구 개발을 둘러싸고 ’어민생존권을 위협한다'며 몇달째 농성중인 소래포구 아주머니들을 제외하면 ‘순수 유권자'는 3백50명 남짓. 연설순위 1번인 민자당후보의 유세가 끝나자 7백여명 정도가 일제히 빠져나갔다. 두번째 후보의 연설이 시작될 무렵 “빨리 나와라"는 고함이 오갔고 다시 3백여명이 빠져나갔다.

1차유세에 대한 자체 평가가 내려졌다. 유세장 계획이 청중 동원면이나 사전 프로그램 준비면에서 너무 엉성했고, 원고 내용이 교직생활에 치중해 지역문제 제기와 부패 ·타락 선거에 대한 고발이 부족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6월10~14일(선거중반전) : 홍보에 전력을 다했음에도 구멍이 드러났다. 한번도 신후보의 홍보물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유권자들이 속출했다. 선거법이 규정한 ‘공공장소에서의 홍보물 배포’와 선관위의 공보만으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기획위원회는 선거법이 금한 전화홍보와 홍보물 호별 투입(집들이)을 하기로 결정했다.

각종 자료를 통해 이 지역 유권자의 전화번호 3만여개를 확보하고 전화홍보에 돌입했다.   유권자들의 반응은 갖가지였지만 “후보들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선거활동의 각종 규제가 유권자들을 향한 최소한의 정보통로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전화홍보는 선거법에 금지돼 있다. 오히려 후보에게 좋지 않다"고 충고하는 유권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전화홍보는 선거운동 마감일까지 2만여통쯤 진행됐다. 선거법 위반이긴 하지만 ‘금품·향응에 의한 매표행위만은 하지 않는다'는 더 큰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게 기획위원회의 판단이었다.

6월15일(2차유세) : 1차유세 때의 경험을 살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 조직동원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대신 ‘풍선전략'을 세웠다. “2번, 신맹순"이라고 쓰인 풍선 3백여개를 유세장 상공에 띄워놓아 유세장 분위기를 살리기로 한 것이다. 풍선구입비로 든 돈은 21만원.

오후 4시30분. 유세장에는 1천여명의 청중이 모여들었다. 신후보의 연설순서는 여전히 세번째. 풍선이 연출한 축제적인 분위기는 유세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첫 유세에 비해 청중들도 상당수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풍선, 참교육 배지 등 특정 후보의 기호나 상징물이 부착된 선전물은 선거법상 불법이었다. 연설회 도중 선관위측은 계속 이 점을 지적했다. 신후보측 선거사무장은 선관위측으로부터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는 주의를 받았다.

6월16일 :선거운동기간 동안 여당 후보 운동원들이 사락방좌담회를 열어 정원식 총리 폭행사건을 전교조와 연결해 맹비난하며 신후보를 “빨갱이교사" "지리교사경험을 십분 활용한 부동산 투기꾼"이라고 헐뜯는다는 제보가 여러 차례 들어왔다. 신후보 진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오전 간석2동 한 주민의 제보는 신후보를 둘러싼 흑색선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신맹순,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괴유인물의 핵심은 “신선생은 제물포고등학교 재직 때 1년 동안 8명의 학생들을 퇴학시켰고 일요일에도 학생들을 동원, 자율학습을 강요해 그 공로로 주임이 된 자다” “인천시정 자문위원을 지내면서 지리교사로서의 지식을 발휘하여 수원 안산 충남 서산 등에 엄청난 땅을 사들였고 그 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땅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밤 8시 경에도 간석1동 다른 주민으로부터 같은 제목의 괴선전물이 우송됐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거리홍보에 나갔다 돌아온 운동원들도 간석3동 달동네 주민들이 “신선생이 가난하지 않다더라”고  말하는 등 여론이 악화된 듯하다고 전했다.

기획위원회는 아연 긴장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선거 종반전에 이런 유인물이 나돈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각종 흑색선전과 마타도어는 비단 신후보뿐만 아니라, 연합공천 후보들을 끈질지게 괴롭혔다. 북구을 제6선거구에 출마한 인권변호사 문병호(34) 후보는 1차 유세에서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유세가 끝난 12일 밤부터 효성동 일대 주택가에는 1만원권 1장씩이 든 문후보 홍보물이 대량 살포된 것이다.

기획위원회는 단일후보들이 ‘폭력혁명세력’ ‘빨갱이’ ‘파렴치한’으로 매도당하는 터인 만큼 공동대응이 시급하다는 결론만 내렸다. 뾰족한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은 흑색선전 외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밤 12시10분경 사무장은 세차례 정도 “선거운동을 돕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왔던 간석2동 주민 이모씨를 만났다. 그는 여권 후보 동향에 대한 ‘아리송한 정보'를 쏟아냈다. 그런 뒤 “내가 35개통 중 22개통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정보면 2백만원은 받을 수 있다"고 슬며시 흘리면서 “아무 조건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신후보를 돕고싶다"고 제의해왔다.

이 일을 두고 신후보 진영은 갑론을박을 벌이다 끝내는 선거 종반에, 그것도 불리한 지역의 표를 조건없이 몰아준다는 데 대한 일말의 미련 속에서도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이만한 정보면 2백만원"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선거 때면 흔히 경쟁후보 진영을 오가며 표동원 능력을 과시하는 ‘몰이꾼'이 출현하기 마련. 선거 초반 향응을 노골적으로 요구해온 ‘프로유권자' 아주머니건에 이어 두번째로 부딪힌 ‘선거판의 한 현실'이었다.

6월17일 : 흑백선전 대응책은 여전히 막막했다. 밤 8시경 안삼일 선거사무장은 홍보부장 책상 위에 놓인 시선거관리위원회의 ‘공명선거캠페인' 관련 흥보물을 발견하곤 갑자기 “바로 이거다"라고 소리쳤다. 안사무장은 공명선거 캠페인이야말로 흑색선전에 맞서는 대응책이라는 데 착안했다.

그는 그 길로 구 선관위로 달려갔다. 한 관계자를 붙들고 “우리가 공명선거 캠페인을 할테니 남은 홍보물이 있으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지난 15일로 이미 캠페인이 끝났으므로 홍보물을 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공명선거 운동이 왜 나쁜가”라며 밤 12시까지 3시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끝까지 난색을 표하던 선관위 관계자는 남은 홍보물 2백장을 건네주었다.

안사무장은 밤 1시경 인쇄소를 하는 친구를 불러 이 홍보물을 3만2천부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전화홍보, 유세장에서의 풍선과 불법부착물 착용에 이어 세 번째의 선거법 위반을 저지른 셈이다.

6월18일 : 아침 7시께. 신후보는 남동구 제3선거구의 김종욱(34·신민당)후보와 함께 인천시 북구 십정동 경인전철역인 동암역 입구에서 ‘공명선거 및 선거참가 캠페인’을 벌였다. 운동원들도 ‘출근홍보’에 나서 역·상가 등에서 시민들에게 후보자 홍보전단과 공명선거 홍보물을 함께 나누어주었다. 선거사무실에는 출근홍보에 나섰던 운동원들로부터 ‘완전히 성공작’이라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다. 선거종반전이 되자 후보 개인 홍보물은 진력이 난 듯 받기를 꺼렸는데, 이번은 일부러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터졌다. 7시40분께 동암역에 나갔던 신후보와 김후보를 비롯, 양쪽의 선거운동원 29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이다.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곳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후보와 김후보는 오후 2시경에 풀려났지만, 나머지 운동원 27명은 계속 구금됐다. 선거운동 막바지에 운동원들을 장기간 구금하는 것은 선거운동의 밭을 묶어두기 위한 노골적인 관권개입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6월19일 : 인천지역 전체에 걸쳐 여권 후보들의 선거법상 금지된 호별방문과 향응공세가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시민제보가 잇따랐다. 여당 후보들이 골목 어귀 상점마다 음식 과일 맥주 등을 차려놓고 동네 사람들을 대접하며 은근히 “1번 지지"를 호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당지역에 급파된 운동원들은 ‘상황끝'인 현장을 목도하거나 그저 동네사람들끼리 모여 한잔 먹고 있다는 대답만 듣고 돌아왔다.

신후보측은 ‘금품·향응 현장잡기'보다는 시민호응이 높은 공명선거 캠페인에 주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선관위의 흥보물을 계속 뿌려댔다. 선거운동 마감 2시간 전인 밤 10시경. 2백장밖에 안 준 흥보물이 계속 쏟아져나오는 데서 이 홍보물이 원본이 아닌 ‘불법 인쇄'된 것임을 알아차린 선관위측은 “당장 불법 선거운동으로 고발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해왔다.

어스름이 깔리자 전투경찰이 대학생들의 불법적인 ‘민자당 후보낙선운동'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골목골목을 삼엄하게 경계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는 운동원들의 호소가 잇따랐다. 덩치가 좋은 여당 후보 운동원들이 워키토키를 들고 골목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광경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신후보 진영은 선관위의 경고와 ‘살벌한’ 지역 분위기를 고려해 선거운동 마감 2시간 전인 10시경 모든 선거운동원을 철수시켰다.

6월20일 : 투표의 막이 오른 지2시간 뒤인 오전 9시경, 간석2동 1투표구인 성헌고둥학교에나가 있던 신후보측 투표참관인 최미희 (31)씨는 8~10명의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봉고차를 타고 오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 두어 차례나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다. 신후보측 참관인들은 “여권 후보의 집단수송이 아니냐"고 항의했다. 항의가 있고 난 뒤에는 봉고차가 사라진 대신 자가용이 계속 나타나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오후 3시경. 아침 나절에 목격된 같은 번호의 봉고차가 10여명을 태우고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운전기사가 달랐다. 다음에 온 붕고차는 운전기사는 같은데 차번호가 달랐다. 다른 지역구에서도 꼭같은 광경이 목격됐다.

저녁 6시30분경. 투표감시원으로 나갔던 운동원들이 대부분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한결같이 투표율이 너무 낮다는 점,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투표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점을 걱정했다. 이 지역의 투표율은 53.8%. 야권이 단일후보를 냈음에도 젊은이들이 여전히 정치냉소주의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정치불신이 깊은가" 하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밤11시경. 부재자 투표결과 2배 차로 여당 후보를 앞질렀다는 신후보의 첫 개표소식이 전해졌다. 선거사무실에 함성이 터져나왔다. “요즘 부재자 투표는 젊은 군인들 때문에 야권 후보가 항상 유리했다. 낙관할 일이 못된다"는 선거사무장의 설명에도 아랑곳없이 선거사무실은 순식간에 잔치분위기로 들떠올랐다. 30분쯤 뒤 사무실로 들어닥친 중앙지 <ㅇ신문> <ㅇ통신> 기자들은 지방판 마감에 대야 하니 당선 포즈를 취해달라고 신후보에게 부탁했다. 연합공천 후보들이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상황이므로 신후보의 당선은 ‘따논 당상’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였다.

6월21일 : 선거사무실에서 개표장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운동원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질 무렵인 새벽 5시경. 부재자 투표함 이외의 첫 투표구에서 신후보가 앞질렀다. 17개 투표함 중 9개가 개봉될 때까지 3백여표 차로 이 우세는 지속됐다. 이미 인천지역에서 연합공천 후보 6명의 당선이 확정됐고 남은 투표구가 유리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당선을 낙관하는 의견과 표 차이가 근소해 불안하다는 견해가 엇갈렸다.

아침 6시40분경.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야권표를 기대했던 간석2동 3개 투표구에서 오히려 전세가 역전됐다. 선거사무실의 운동원들은 초조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때 신후보는 문득 생각난 듯 옆자리의 한 자원봉사 대학생(고등학교 제자)에게 다그쳤다. “너, 학교 안 가니" “선생님은 역시 다르셔" 긴장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7시30분이 지나서 당락은 결정됐다. 떨어진 신후보의 득표수는 1만5천8백33표. 당선자인 여당 후보와 8백26표 차였다. 기본적으로 야권지지표로 볼 수 있는 3번(무소속) 후보의 표는 3천3백82표. 최종 결과를 통보 받고 선거사무실에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야당표만 안 갈렸으면 당선인데….” 누군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선거법상 기본적인 불이익이 적용됐던 무소속, 선거기간 동안 끊임없이 나돈 혹색선전, 선거경험의 미숙함, 조직과 돈의 압도적인 열세에도 신후보는 1만5천표나 얻었다. 그러나 낙선했다. 신후보의 선거진영은 善戰의 가장 큰 요인은 야권 단일후보라는 점이고, 동시에 가장 결정적인 패인은 내용상 단일후보가 충실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선거법은 여러 차례 어겼지만 ‘매표행위가 없는 새로운 선거문화'의 원칙만은 철저히 지켰다는 자체 진단도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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