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교 40년, 陸士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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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 이후 언론에 굳게 닫아온 문, 본지 취재팀에 첫 공개 “국민에게 사랑받고 싶다”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생도 신조

 그것이 반드시 ‘정의의 길'이었는지는 후대의 평가에 맡길 일이나 ‘정도'를 택하지 않은 졸업생들도 있어서 때로는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육군사관학교. 1945년 군사영어학교로 출발, 현재까지 47기생을 배출한 대한민국육군 정예장교의 산실육사가 51년 진해에서 4년제 사관학교로 재개교한지 올해로 40주년을 맞는다.

지난 6월19일, 육사는3공 이후 언론에 대해 굳게 닫아온 문을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처음 공개했다.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일일터인데, 육사로서는 일반의 인식이 당장 바뀌어지길 바라는 몇가지 ‘홍보사항’이 있다. 그 중 첫째는 육사가 군사교육만 시키는 곳이 아니라는 것, 옛날과 달리 어학·인문사회·이학·공학 4개처에 걸쳐 20여개의 다양한 학과와 2백여명의 교수진을 갖추고 있으며 일반대학 못지 않게 공부를 많이 하는 학교라는 사실이다.

올해, 개교이래 고교생 대상 첫 홍보
어학처에는 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의 학과가 개설되어 있고, 인문사회처에는 경제학 전사 법학 사학 철학과 등이 있다. 또 이학처에는 수학 환경학 물리학 화학 등의 학과가, 공학처에는 병기공학 토목공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도학 전산학 등의 학과가 학과가 설치돼 있어서 생도들이 되도록 적성과 진로에 맞게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특히 북한학 비교사회학 등 신조류 학문과 이념에 관한 강의과목도 열어 놓고 있어 종래의 경직된 커리큘럼에서 탈피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80년 이후 갈수록 신입생들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문' 또한 육사졸업생과 재학생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육사평가관리실 통계에 따르면 85년 지원인원이 9천2백96명 (경쟁률 27대1)이던 것이 급속히 감소하여 86년 4천8백8명(14대1), 87년 4천7백97명 (14대1), 88년 3천9백52명 (11대1), 89년 3천10명 (10대1)으로 최저 수준을 기록했으나  90년 3천2백60명(11대1), 91년 3천4백70명(12대1)으로 점차 회복 추세에 있다.

내신 5등급 이내로 지원자격을 제한한 탓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높았던 과거의 경쟁률에 비해서는 지원자가 크게 줄어든 게 사실이다. 입시전문기관에 따르면 육사 합격자 평균성적은 80년대 중반까지 학력고사기준 2백63~2백72점이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2백60~2백68점으로 약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육사측은 그래서 개교이래 처음으로 올해부터 전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할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생도들을 모교에 보내 후배를 모아 학교설명회를 갖도록 하는 한편 몇차례에 걸쳐 육사를 지망하는 전국 우수 고교생 6백여명을 초청, 화랑대 캠퍼스를 견학시키기도 했다 . 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측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육사를 지망하는 동기’는 ‘국가 사회의 봉사자’(51.5%), ‘졸업 후 전망이 좋다'(32.7%)가 많은 반면 ‘경제력 부족'(6.6%)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육사는 학비 기숙사비 등 일체의 비용이 무료일뿐아니라 ‘품위유지' 명목으로 학년에 따f,매월 6만원에서 10만원까지 봉급을 지급하고 있다.
 
혹시 지역적으로 지원 분포가 편차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일반의 예단도 있음직한데 거의 인구비례로 전국에서 골고루 지원해서 합격한다고 육사측은 설명한다. 재학생도 가운데 경남 · 북(대구 포함) 출신이 대강 35%, 광주를 포함한 전남 · 북이 24%수준이다. 육사에 합격한 뒤 서울대 의예과에 응시, 합격했으나 육사를 택한 광주정광고 출신 박복균군(22. 화학과)은 “친지와 선생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와1, 2학년 때에는 후회도 많이 했으나 이제는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체력이 좋아 럭비 선수로 발탁된 1학년 방정환군(20)은 “일반 대학생들이 너무 공부를 않고 규칙적이지 못한 것 같아 육사를 지망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너무 고되고 내무생활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이에 대해 “육사는 정예장교를 ‘적자생존'의 원리로 키워내는 곳, 따라서 3학년 이상이 돼야만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다"고 4학년 김성민군(23. 중국어과)은 말한다.

적응 못한 생도 과감히 도태시켜
육사는 암벽 아래로 떨어뜨린 새끼 사자가운데 자기 힘으로 올라온 놈만 골라 키우는 어미 사자의 ‘교육방식'처럼 적응하지 못한 생도는 과감히 도태시키는, ‘불량률0%'의 철저한 ‘품질관리' 제도를 채택하고있다. 학과시험 외에 신체검사 체력검정심리검사 인물시험 등 5단계 관문을 통과한 최종합격자 3백10~3백20명은 1월20일을 전후하여 학교로부터 ‘가입교'의 부름을 받는다.

예비생도들은 이날부터 5주간 ‘장정'에서 ‘군인'으로 탈바꿈하는 지옥훈련(정식 명칭은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3학년 생도들이 실시하는 이 훈련기간은 ‘육사 시절 중 가장 힘든 때'로 통할만큼 논산훈련소의 강도와는 비교가 안되는 혹독한 ‘군인만들기’과정이다. 가입교생의 약 5%가 이때 입학을 포기하고 집으로 간다. 나머지 3백여명이 3월초, ‘명예선서’를 하고 육사생도가 되는데 1학년 1학기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다. 일체 외출 외박없이 빈틈없게 짜여진 일정속에서 공부 체육 그리고 오직 ‘복종’만이 요구되는 내무생활을 견뎌낸 다음 방학기간 군부대에서 8주간의 하기군사훈련을 마쳐야 한다. 1학년 생도 15%가 이 과정에서 또 떨어져 나간다.

‘습성화’ 교육을 끝낸, 즉 ‘체질’로 인정받은 남은 신입생들은 2학기들어 전공학과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전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육사 생도들은 4학년 졸업때까지 거의 모든 과목을 두루 배워야 한다. 졸업에 필요한 총 1백40점 가운데 90%인 1백25학점이 ‘공동과목’이다. 부하를 통솔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장교는 인간 사회현상 자연과학 병기공학 등에 대한광범위한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육사생도들은 일반 대학생보다 공부를 2~3배 열심히할 것"이라고 학교 관계자들은 말한다. 실제로 이들은 하루 일과 계획상 “할 일이 공부밖에 없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과외활동이 있으나 그것도 짜여진 매주 일과의 하나일 뿐 하루중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는데 보낸다. ‘군인정신’으로, 공부건 과외활동이건 목표가 뚜렷한 성취위주로 하기 때문에 일반 대학생들처럼 적당히 하는 법은 없다.

육사규격 1백% ‘사관과 신사’양성
“전문성과 다양성 면에서는 부족한 게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 · 덕 · 체학습을 통해 전인격적인 젊은이가 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라고 3학년 문병상군(22. 화학과)은 일반 대학생과의 차이를 나름대로 풀이한다. 운동권이나 그 주변의 학생들에 대해 2학년 고영남룬(21. 토목공학과)은 “내 생각이 생도 전체 의견으로 비칠까 우려된다”며 예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단편적인 지식으로 너무 급진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진지함과 겸손함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비판한다.

공부 외에 생도들의 내무생활을 유지하는 두가지 핵심제도가 있다. 미국의 육사인 웨스트포인트에서 따와 지금은 자치지휘근무제도이다. “우연히 옆 생도의 답안을 보게 될 경우 그것이 자기가 생각한 정답이더라도 그 답란은 비워놓아야 하는”무감독 명예시험 실시, 무인판매소 운영, 규칙위반 생도의 퇴교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생도 명예위원회 운영 등은 생도들로 하여금 명예를 생명처럼 지키게 하는 것들이다.

자치 지휘 근무제도란 생도들이 서로 병사 하사관 소대장 지휘관의 역할을 맡아 생도대가 하나의 부대와 같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1,2학년 때에는 병·하사관이 돼 ‘복종’과 ‘자율’을 배우고 3,4학년으로 올라가면 소대장 중대장 참모 지휘관 등을 각각 교대하면서 맡아 ‘모범'과 ‘지도'를 몸으로 익히게 된다. 선 ·후배는 물론 동료간에도 엄격한 규율이 지켜지고 있는, 현역 부대보다도 더 완벽한 조직 속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모든 생도들이 돌아가면서 지휘자 역할을 해보게 됨으로써 리더십이 거의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사관'으로서의 지식과 체력, ‘신사'로서의 명예심을 기르는 4년의 교육 속에서 한생도는 이렇게 ‘육사규격' 1백%를 만족시키는 대한민국 육군장교로 탄생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바깥을 날아보지 못한 ‘새장의 새'에 불과하다. 그가 새장 밖으로 나와서도 흔들림없이 자기 길을 날고 혼탁한 세상의 충실한 파수꾼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부정적 인식' 보다는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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