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위한'농산물경매제'인가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2.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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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시장에도입1년‥‥농민"가격폭락주원인"소비자"나아진것없다"



 지난 5월20일 저녁 7시30분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내 야채경매장은 트럭 가득 상추를 싣고 온 농민과 경매사, 중개상인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중개상인들은 저마다 상추를 들어 보이며 유리한 가격을 따내려고 손을 놀려댔다. 그 틈바구니에 선 농민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경매 장면에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날 경락된 최상품 청상추4㎏들이 한상자 가격은1천9백원. 경기도 하남시 근교에서 상추2백50상자를 싣고 올라온 농민 박병순씨(56)는 경매가 끝난 후 “예상은 했지만 가격이 형편없이 나와 일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가 희망했던 최저 가격은 4천원이었다. 그는 상추값 폭락 원인을 경매제도에 돌렸다. 지난 1월1일 상추에 대한 의무 경매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값이 훨씬 높았다는게 그 근거였다. 이에 대해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관리공사의 한 관계자는 "상추 한상자에 1만원 정도가 적정가격이라고 본다. 폭락의 원인은 과잉생산에 있다"고 말했다.

 올 봄 상추 마늘 양파 등을 재배했다가 가격 폭락을 겪은 농민들이 그 원인으로 상장경매제도를 들고 있는 가운데 이 제도는 시행 1주년을 맞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가락동시장에서 시작된 농산물 상장경매란 농수산부 지정을 받은 여섯 개 도매법인 소속 경매사가 지정중개인(중간상인)을 상대로 상장된 농산물을 경매에 부쳐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바닥시세조차 보장 안돼 작물 밭에 썩혀

 농수산부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농산물 유통단계가 5~7단계에서 3~4단계로 줄어 그 동안 중간상인들이 산지에서부터 소비지까지 유통과정을 장악해 폭리를 취하던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제도 실시 이후 농민과 소비자는 “뭔가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서울 시민의 식탁에 오르는 야채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는 가락동 도매시장에서는 현재 농산물 50개 품목이 의무 경매대상이다. 배추 무 파 미나리 등 포장이 불가능한 몇몇 품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농산물이 경매를 통해 공급되는 셈이다. 그러나 농민의 생산비를 고려한 최저단가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경매가 이뤄진다. 그 때문에 가격 폭락을 겪는 작물 재배농민은 “경매제도가 오히려 과거 중간상인의 위탁판매만 못하지않느냐"하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중간상인이 산지 농산물을 밭떼기로 사버리던 기존의 관행에서는 시장가격이 폭락해도 최소한 바닥시세만은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매제도가 실시된 후에는 가격이 폭락할 경우 당장 운반비도 건질 수 없어서 작물을 밭에다 썩힐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점에서 현지 생산물에 대한 조절과 보상대책없이 소비지의 도매시장 경매제도만으로 농민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농정당국의 발상에 맹점이 있음이 드러난다.

 도시 소비자 또한 유통단계가 줄었는데도 제도를 실시하기 전에 비해 싼값에 농산물을 공급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형편이다. 가락동시장 관리공사 농산과에서는 이에 대해“신선도가 중시되는 농산물의 특성상 선도가 떨어져 폐기될 품목의 손해분까지 각 소매점에서 소비자에게 부담시키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지금까지의 상장경매제도가 도시 소비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측면을 굳이 꼽는다면 경매가격에 비해 소매점에서 얼마나 폭리를 취하고 있는지 알수 있다는 점뿐이다.

 가락동시장을 이용하는 농민과 중개상은 현행대로는 상장경매제도의 본뜻을 살리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매제도의 본질은 경쟁관계인데 서울에서는 가락동 한곳에서만이 제도가 시행되어 사실상 지정도매법인들만 '특혜'를 받고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하루 적정 소화물량이 3천여들인 가락동시장에 매일 6천여들이 홍수출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도매법인들은 우수농산물을 유치하기 위해 농민과 소비자를 상대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경매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하루빨리 서울 각지에 공영 도매시장이 생겨 가락동과 경쟁관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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