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화산 ‘줄폭발’ 환경에도 ‘불똥’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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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비 기후변화 오존층파괴 초래

아시아의 화산이 줄지어 폭발하고 있다. 일본의 운젠다케, 필리핀의 피나투보 그리고 인도의 캉그라에서 분화구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1백98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지난해 활동을 재개한 일본 규슈지방의 운젠다케화산(1천3백59m)이 지난 6월3일 화산재와 火碎流(고온가스에 뒤섞여 흐르는 화산재와 화산암편)를 내뿜으며 폭발했다. 화산이 폭발하자 섭씨 6백도의 뜨거운 화쇄류가 인근 마을을 덮쳐 불바다를 만들었고 주민 1만5천여명이 긴급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운젠산의 폭발 뒤 일본인들 사이에서 후지산 폭발설마저 나도는 가운데 이번엔 필리핀의 루손섬에서 대규모의 화산폭발이 일어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마닐라북서쪽에서 80㎞ 떨어진 피나투보화산(1천7백45m)이 6백11년 동안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피나투보화산은 폭발 당시 화산 상공에 수십㎞의 버섯구름을 만들며 대규모의 화산재를 멀리 마닐라에까지 날려보냈고 때마침 불어온 태풍과 뒤섞여 필리핀 북부지역을 어둠과 진흙더미 속에 잠기게 했다.

두께 1백㎞ 규모 땅조각 충돌 탓
지난 6월11일에는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州의 한 휴화산이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시아 각지에서 동시에 화산이 폭발하자 화산활동에 대한 인접국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화산이 때를 같이하여 한꺼번에 터졌다는 점과 이번에 폭발한 화산들이 오랫동안 활동을 멈추었던 휴화산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역사에 기록된 화산폭발은 멀리는 폼페이시를 화산재 속에 완전히 묻어버렸던 서기79년의 베스비우스화산 폭발에서부터 가까이는 지난 1985년 2만5천명의 목숨을 대자연의 제물로 바쳤던 콜롬비아 네바도 델 루이스화산 폭발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인류에게 대재앙을 가져다주는 화산활동은 왜 일어나는가. 화산활동이 시작된 지 35억년이 지난 오늘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판구조론'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1950년대에 확립된 판구조론은 독일의 알프레드 베게너가 제창한 ‘대륙이동설'이 퇴조하고 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을 중심으로 대양저에 대한 탐사가 광범위하게 실시되면서 근거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대양저 지각 밑은 두께 1백㎞ 정도의 거대한 땅조각(地板)들이 서로 맞물려있는데 이 지판은 지구 내부의 맨틀(지각밑에서 지하 2천9백㎞ 깊이까지 초염기성 암석으로 이루어진 암석층) 대류의 힘에 의해 해마다 조금씩 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거나 떨어져나간다. 화산활동은 지판의 경계면에서 서로 충돌하거나 떨어져나갈 때 맨틀 대류의 압력에 의해 ‘사이다병 뚜껑이 터지듯'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나오는 현상이다. 마그마란 상부맨틀에 규산염 물질이 녹아 있는 것을 말한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화산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번째 유형은 한 지판이 다른 지판을 파고들어가는 곳(섭입대라고 부름)에 있는 화산이다. 두번째 유형은 지판이 서로 갈라지는 곳에 있는 화산군인데 아이슬랜드를 포함, 대서양에 솟아 있는 화산섬과 하와이의 마우나로아, 킬라우에아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 유형은 맨틀 대류열이 집중된 곳(열점)에 생긴 화산으로 백두산과 한라산이 포함된다.

이번에 폭발한 운젠화산과 피나투보화산은 바로 첫번째 유형에 속하는 화산이다. 태평양과 필리핀 해저의 거대한 땅덩어리가 아시아대륙의 땅덩어리 밑으로 파고드는 곳에서 화산이 폭발한 것이다. “운젠화산의 경우는 태평양지판이 유라시아지판으로, 그리고 피나투보화산의 경우는 핀리핀지판이 역시 유라시아지판으로 섭입하고 있는 형태”라고 강원대 元鍾寬 교수(지질학)는 설명한다. 태평양지판은 남북아메리카 아시아 호주 대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전세계 화산의 80%가 이 지판의 경계선을 따라 분포, ‘불의 고리’라는 화산띠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운젠과 피나투보의 화산폭발이 어떤 필연적 관계를 지닌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86년 운젠산을 현지답사하여 폭발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던 원교수는 “운젠화산과 피나투보화산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양쪽이 모두 같은 성격의 섭입대에서 발생했고 폭발양상도 유사하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화산전문가들은 현재 지구상에서 활동 중인 화산을 약 8백여군데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화산은 활동상태에 따라 각기 활화산 휴화산 사화산으로 나뉜다. 활화산이란 문자 그대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화산'을 말하지만 정작 활화산을 정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해답이 가려지지 않고 있다. ‘역사시대 이후의 현재’라는 기준이 불분명해 논란을 빚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와 맞먹은 긴 역사를 갖기 때문에 화산의 분류를 명쾌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역사에 기록이 있으면 휴화산, 없으면 사화산, 그리고 당대 활동중이면 활화산이라고 한다” 라고 한국 동력 자원연구소의 全明純 연구원은 말한다.

최근에 폭발한 화산들이 모두 호화산이라는 점에서 휴화산은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요즘 운젠화산 폭발을 계기로 ‘화산폭발이 일정한 주기를 갖는다’는 화산폭발 주기설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3단계 주기설을 주장하는 일본 류큐대학의 기무라 교수는 “일본의 화산은 지금 활동기 또는 활동기를 약간 넘어선 상태”라고 발한다. 그러나 대체로 화산 학자들은 “후지기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단지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나오기 위해서는 힘을 저축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2년 동안 지구온도 끌어내릴 것
화산폭발과정은 용암의 성질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용암은 보통 산성의 규산질 용암과 염기성의 현무암질 용암으로 나뉘는데 용암이 산성을 띠게 되면 점성이 커져 화산이 난폭해진다. 이런 화산이 폭발하면 지표면 가까이에서 휘발성 가스가 분리되면서 마치 ‘냄비가 끓듯하는’ 群發性 지진을 동반하며 폭발시에는 섭씨 6백도 이상의 뜨거운 구름(열운)을 뿜어낸다. 일본의 운젠산도 이러한 ‘폭발성 화산’으로 2백년 전 폭발했을 때는 지진과 해일로 마유야마라는 산이 붕괴되어 1만명 이상의 인명을 희생시켰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하와이의 화산처럼 현무암 등 염기성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은 용암이 흘러내리는 속도도 느리고 폭발양상도 비교적 얌전하다.

그러나 아무리 화산이 ‘얌전하게’ 터진다고 해도 그 위력은 엄청나다. 대규모의 인명피해뿐 아니라 지구의 기후변화 등 인간 생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히라바야시 교수(도쿄공대)는 ‘화산발산물과 지구환경’이라는 논문에서 “화산폭발에서 발생한 아황산가스와 탄산가스, 불화수소와 염화수소가 산성비와 기후 변화, 오존층의 파괴까지 초래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6월19일 우리나라 기상청도 “과거의 예로 보아 피나투보화산의 폭발에서 발생해 대기중에 올라간 대규모의 화산재가 앞으로 2년 동안 지구의 평균온도를 다소 끌어내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운젠화산의 불덩어리는 한반도로 날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세계의 화산이 계속 폭발한다면 우리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을 즐기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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