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御寧 문화부장관
  • 편집국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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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는 곧 상상력”

“문화소비시대 90년대”를 맞아 ‘전국민의 문화향수권’, ‘문화의 대중화’, ‘자율성·다양성·창조성 보장’을 내걸고 “황량한 들에 새집 짓는 기분으로” 문화부 사령탑에 오른 李御寧장관.
취임한 지 보름만에 ‘三不운동’(문턱없이 일하기, 생색내지 않고 일하기, 사심없이 일하기)과 ‘三可운동’(이끼입히기, 두레박 놓기, 부지깽이 되기)을 바탕으로 29가지 사업계획을 발표했는가 하면 임진각에서는 대대적 행사를 펼치면서 통일원과 공동으로 남북문화교류 5대원칙을 천명하기도 했다. 지대한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文筆家장관’이 앞으로 넘어야 할 ‘문화 열고개’가 무엇인가를 직접 들어보았다.

● 문화부가 발족한 지 2개월이 됐습니다. 문인, 교수로 재직하다가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재임하는 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내가 문화부에 와서 했던 첫마디가 상상력입니다. 그런데 2달이 지나는 동안 나의 상상력 앞에는 첫째가 관료주의적 메커니즘, 둘째 예산문제, 셋째 매스컴을 포함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상대방에게 전달이 잘 안되더군요. 예산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봅니다. 관료주의적 메커니즘도 어느 정도 해결해 나가고 있지요. 매년 고급관료를 대상으로 비공개로 1회 실시해오던 신년음악회를 올해는 KBS, 문예진흥원, 예술의 전당과 협력해 공개적으로 1회를 더 개최했습니다. 또 하나는 임진각에서 열렸던 통일민속제입니다. 상상력이 돈과 관료주의를 이긴 첫 번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꿈꾸는 자가, 주판알 튀기는 현실주의자보다 때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산 증거지요. 물론 문화부 직원과 내 상상력의 동조자들의 협력으로 가능했던 거죠. 이대로 가면 내가 약속했던 모든 것이 적어도 금년말 또는 내년 이맘때 쯤이면 현실로 나타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취임하자마자 발표했던(1월15일) 29개항의 정책사업 성과는 어떤지요?

‘까치소리 전화’는 “문화부에 제언하십시오”라고만 말했다면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겁니다. 까치소리가 나는 전화를 설치했으므로 반응이 좋은 겁니다. 우선 그 명칭에서 성공했다고 봅니다. 까치소리를 들을려고 아침에 많이 걸더군요. 그러다보면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얘기하게 되는 거 아녜요? 자동응답기 7대가 1월15일부터 2월14이까지 1달 동안 받았던 2만여통의 시민의 전화 가운데 이미 8백3건이 활용할 만한 제언으로 접수됐습니다. 오해를 많이 받고 있는가 본데 쌈지공원에 장승을 세운다는 것은 하나의 예시일 뿐입니다. 탑이 들어갈 수도 있죠. 조각가들이 참여하고 도시의 소음속에서 달동네 사람들이 차임벨을 울려 음악을 듣게 하자는 거죠. 얼마나 정서가 순화되겠습니까? 그 안에 빨래터를 설치한다니까 고지대 주민들에게 수돗물이나 잘 나오게 하라는 사람도 있더군요. 언덕과 평지 사이에 쌈지공원을 만들 예정이므로 높은 지대에는 수돗물이 안 나오니 평지까지 내려가서 물을 받는 대신 이곳에 와서 물도 받고 아울러 대화의 장도 만들자는 겁니다. 쌈지공원이 들어설 지역은 불량·불법지역이므로 화강암으로 공원을 만들어서 뜯을 수 있도록 서울시에 부탁해서 시 예산으로 세울 예정이지요. 이런 작은 공원에 움직이는 박물관, 미술관을 열어 소외된 주민들에게 문화를 향수하도록 하자는 것이 목표입니다.

● 그동안 제시했던 몇가지 정책에 대해서 벌써부터 재치문답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나도 그 글을 읽었는데 문화부 시책이 너무 홍보가 안됐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 글을 읽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국민운동의 하나로서 ‘5분간 참아주기’, ‘남의 일 내 일로 알기’ 운동을 펼치자는 겁니다. 예수의 제자를 잡으러 다니던 바오로가 예수의 제자가 됐듯이,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아무 관심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죠.

● 앞으로 이와 유사한 비난이 쏟아질텐데 장관직 맡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습니까?

일 안하고 칭찬받기보다는 일하고 욕 먹겠다, 문화에 대한 일이라면 더욱 그러겠다는 것이 제 각오입니다. 나는 칭찬받으려고 장관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국민이 21세기에는 남의 식민 노릇이나 하는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동안 고통이 컸는데 하루만 참으면 되더군요(웃음). 사표 던지고 내일부터는 글이나 쓸까 하는 생각도 숱하게 많이 했지요. “사람 좋다”는 평 듣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입니다. 저 사람 못됐다 하더라도 일하면서 그 소리 들으면 이 사회에 변혁을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 보고 좋은 장관이라고 하면 욕으로 알아듣겠고, 못된 장관이라고 하면 뭔가 내가 하고 있다는 얘기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최상의 장관은 적어도 10년 지나도 기억되는 사람-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이라고 생각됩니다.

● 취임사에서 “문화가 도대체 뭐냐는 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는데, 문화를 어떻게 정의합니까?

아까 말했던 상상력은 문화의 동의어입니다. 물질, 본능, 제도, 법 등은 현실이고, 가변적인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것들이지요. 그러나 문화란 창조적인 것입니다. 배고프다는 것은 비문화이지만 배고픈 것을 참는다는 것은 자기억제의 도덕이 생긴 것이므로 문화도 생겨난 것입니다. 생물학적 현실만이 있는 동물에게 문화는 없습니다. 즉 작든 크든 반복되는 것, 의식이 정지된 것,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은 비문화이고 그 반대가 문화죠. 다시말해 의·식·주행복에 대한 욕망이 바로 문화입니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즉 꿈인데 이 꿈이 없으면 먹는 것은 먹이가, 입는 것은 가죽이, 집은 둥지가 됩니다.

● 그렇다면 생활문화는 어떻게 정의합니까?

생활문화에서 문화가 빠지면 동물적 의·식·주와 같습니다. 먹고 살다 보면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생겨 창작문화 즉 고급문화가 생기는 겁니다.

● 산업사회로 들어선 한국의 문화상태를 어떻게 점검하십니까?

언뜻 보면 문화가 있는 것 같죠? 네온사인이 번득이고, 노래를 하고…. 그러나 이것은 모두 인형과 같은 겁니다. 우리는 문화를 거의 민족 또는 한 나라 전체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족이란 말에서 민족 대신 문화라고 사용합니다. 한 민족, 한 공동체가 공동체이게끔 하는 힘, 이것이 문화입니다.

● 문화인이란 단어는 영어나 불어에는 없지 않습니까? 문화인에는 어떤 사람이 포함된다고 생각하는지요? 문화인의 모델을 가정해본 적이 있습니까?

문화인이란 단어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만큼 문화에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공기를 마시듯 사람들은 다 문화를 영유하는 문화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급문화를 영유하는 사람을 문화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 셋방을 얻으러 갔을 때 집주인이 직업을 묻길래 작가라고 하니까 “방 얻으러 온 사람이 문화인이래” 하더군요. 6·25때는 예술가들에게 주던 문화인 등록증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고급문화를 언급했는데 저급문화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겁니까?

고급문화는 창작문화이고 저급문화는 즉, 생활문화 또는 대중문화죠. 민속문화를 포함한 일상적 생활속에서 숨쉬고 있는 문화죠.

● 창작에 관련된 문화계 인사들이 어떤 원인에서건 여러갈래로 심각하게 대립돼 있는 양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메뉴가 없었습니다. 창작활동에는 다양한 가치가 필요하지만 2분법적 양상은 곤란하죠. 문화부 최대목표 가운데 하나는 사상의 다양화를 추구해서 10년후에는 미국이나 프랑스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겁니다.

● 80년대를 휩쓸었던 민중예술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입니까?

개인적 차원의 예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문화의 영역을 벗어난 때에는 문화부가 개입할 겁니다. 예술에 대해서는 한가지 정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와 다른 점은 예술에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에는 양식이 있습니다. 예술이 비예술로 보이고 정치행위로 보일 때, 정치적 목표가 너무 강하게 표현된 나머지 예술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을 때는 법의 테두리안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겠죠.

● 교수. 문인으로 지낼 때 李장관도 정부의 부당한 문화정책 때문에 피해를 받으신 적이 있는지요?

그야 일일이 지적할 수 없죠. 가정에서도 부자지간에 아버지에 대해 화나는 일이 많듯이 왜 이렇게 안하나, 왜 이렇게 못해주나 하는 생각 많이 했었죠. 그 이유는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과 획일주의에 있죠. 내가 왜 자율성·자립성·다양성을 문화목표로 삼았는지를 뒤집어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 문화계 인사들의 가장 큰 소망이 자율성 보장입니다. 문화활동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문화를 발전시키겠다고 했는데 그 구체적 방법이 대체 뭐냐고 궁금해 하더군요.

개인 차원의 상상력과 천재성에 주로 의존하는 고급문화에 대해서는 ‘자유방임’의 정책을 쓰겠다, 즉 자율성에 맡기겠습니다. 내가 천재적인 바이얼리니스트나 화가에게 어떻게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후원회 등을 만들어서 뒷바라지는 할 수 있겠죠. 오로지 뒷바라지만 하는 겁니다. 또 한가지는 이제 나의 개인적인 예술관과 문학관은 공인이 된 지금에는 다 작별했다고 봐야죠. 이제 행정가가 됐으므로, 슬프지만, 나의 기호에 맞는 예술에 대한 요구는 억제하고, 법이 정해주는, 또 행정 메커니즘의 범위 안에서 최대의 자유와 상상력을 발휘할 뿐이죠. 내가 문화가 출신이라고 해서 문학활동만 지원해줄 수도 물론 없죠. 개인적 차원의 예술은 엄격하게 자율에 맡길 예정입니다. ‘문화가족’이나 기타 여러 가지 캠페인 등은 기충문화 또는 생활문화라고 하는 저급문화 차원의 정책으로서 행정력과 정책이 필요한 것은 단지 이 분야입니다. 개인의 창작예술활동에 대해서는 정책을 세운 것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영화정책도 세운 것이 없어요.

● 서열 7위의 국무위원으로서 또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정치가 내지 행정가로서 李장관의 정치관은 어떤 것인지요?

문화주의를 말했을 때 밝혔듯이 정치·경제의 밑뿌리는 인간의 생활과 행동과 사고양식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地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문화의 영향력을 감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제 정치관은 文治, 德治입니다. 원래 문화란 문치교화란 옛말 그대로 힘, 법, 제도, 금전처럼 겉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정신적 가치에 의한 정치입니다. 교화란 즉 따라오게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민주화의 과제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화란 곧 문화주의적 정치법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 분단 40여년 동안 남북문화가 크게 이질화되었는데 통일이 되려면, 또 되고난 후의 남북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지난 2월11일 통일원과 공동으로 남북문화교류 5대원칙을 발표했는데 그것만 갖고는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근본적인 동질성 회복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주창하는 문화주의의 제1의 목표가 바로 문화적 동질성문제입니다. 우선 이 용어는 행정적 차원에서부터 표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남북문화의 동질성을 전체적인 문화의 동질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남한 안에서만도 말만 같은 한국인이지 생각도 버릇도 먹는 것도 다르지 않아요? 요즘 어린애들 음식습성이 달라 부모와 식탁도 별도로 사용합니다. 이같은 현상을 다양성이라고 할 수는 없죠. 문화적 통일을 나는 이 같은 큰 테두리속에 넣고 지난번에 우선 분단 이전의 문화의 교류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던 거죠. 이 말을 잘못 이해한 많은 사람들은 유물로서의 전통문화교류는 의의가 없다, 분단 이후 각각 발전해온 문화교류는 안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하더군요.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 하는 문제였을 뿐입니다. 이 얘기는 꼭 써주십시오. 공자가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죽음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하니 “내가 생의 문제도 모르는데 죽음의 문제를 논할까보냐”라고요. 이 말은 죽음을 논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생의 문제를 모른다는 강조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천년 내려온 문화의 동질화도 이렇게 힘든데 그 이후의 이질화된 것까지 논할까 보냐 하는 심정이라는 겁니다. 우선 급한 것이 양측에서 이념을 떠나 문화재를 보존해야 하고, 발굴해야 하고, 후세에게 남겨줄 국토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방법에는 정치·경제보다 위에 서서 문화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문화부가 할 수 없는 것까지 요구한다면 너무 힘듭니다. 힘도 없는 문화부가 통일원과 안기부 위에 서서 어떻게 합니까?

● 권위주의로 대표되는 우리의 정치풍토 때문인지 아니면 李장관 개인에 대한 이유 때문인지. 수사와 어휘가 풍부한 장관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화란 말이며 수사입니다. 말과 수사에서 의식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하이데거가 말했습니다. “말은 사고의 집”이라고요. 왜 말을 우습게 압니까? 지금 딱딱했던 관청용어가 부드러운 우리의 토박이 말로 바뀌고 있는 사실을 대혁명입니다. 일제 때 쓰던 용어를 우리말로 고친 것을 왜 수사적 표현이라고 합니까? 표현의 자유, 표현의 방법, 표현의 양식이 새로워져야 문화가 새로워집니다. ‘부지깽이’란 사라져가는 단어도 문화부가 돈 한푼 안 들이고 전국민에게 알려줬습니다.

● 취임하면서 주변의 문화계 인사들에게 최소한 3개월은 지켜봐달라고 말씀했다던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우선 3월중으로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을 발표할 겁니다. 그리고 5월에는 기획원에서 내년도 예산을 책정하게 됩니다. 경제기획원의 관료들이 문화라는 것을 알고 문화부의 가치를 인식해서 나의 꿈이 가시화될 수 있도록 돈을 주면 오죽 좋으랴 하는 생각에서 얘기했던 겁니다. 10월에 봐달라는 얘기도 몇사람에게 했습니다. 국회에서 예산 심의할 때 국회의원들께서 문화부를 잘 봐달라는 뜻에서였죠. 나의 상상력을 가시화시켜주는 현실주의자들이 계속해서 동조자로 남아주도록 언론에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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