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 건감유” 갯마을 휩쓰는 개발害風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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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르포/폐수유입·간척사업으로 ‘바다밭’이 死海로

봄볕이 가득한 남녘 들판은 대지의 껍질을 뚫고 올라온 들풀로 벌써 싱그러운 초록을 띠고 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보면, 서해의 황량한 갯벌은 그 칙칙한 먹물 빛깔의 ‘뻘’만 가지고도 화창한 춘삼월을 무색하게 한다.

충남 태안군 남면 달산리 앞바다. 중국의 칭다오(靑島)를 마주보고 툭 불거져나온 태안반도에 자리잡은 곳이다. 서해의 대부분 해변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썰물이 되면 시커먼 갯벌이 수백리나 펼쳐진다. 그리고 갯벌 한복판에 일렬 종대로 죽 늘어선 수만개의 말목(해태가 늘어붙는 그물을 지탱하는 기다란 나무 장대).

“처음부터 백그물(해태가 붙지 않아서 허연 그물)된 사람이 수천이어유. 포자가 안붙어서 김된 사람이 없슈.”

“바다밑이 새까맣게 변했다”

커다란 비닐 용기의 한구석만을 겨우 채운 해태를 경운기에 싣고 뭍으로 나오던 文官模씨(57·태안군 남면 몽산리)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올해 김 작황이 말이 아니라고 하소연이다. 文씨의 표현으로는 재작년까지도 “보통 10뙈(책·말목 1줄을 일컫는 말로 보통 6m 간격으로 1백개를 늘어 심는다), 20뙈만하면 대학교 갤치고” 대단했다. 그러나 작년은 “김금이 낮아서 소용없슈”이다. 그나마도 올해는 도무지 해태가 붙지 않는단다. 매일 바다로 나가봐도, 시커멓게 해태가 달라붙어 30cm 이상씩 늘어져 있어야 정상일 그물은 희멀겋게 텅 비어 있기만 하다.

“그 이유유? 글씨 당최 모르겄슈. 우리가 알 수 있나유. 날이 더워서 갯병이 번진다는 정도만 알쥬.”

해태 농사는 보통 7월에 시작된다. 거둬들였던 말짱(말목)을 다시 갯벌에 심고 말짱 사이마다 곤짓줄(고정줄)로 그물을 연결하는 데만 족히 두사리(한사리는 보름)는 걸리고 9월부터는 포자를 살포한다. 해태 수확기는 11월부터 3월까지. 추운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수확을 해야 한다. 1~2월의 해태가 가장 질이 좋고 나머지는 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문씨는 올해 20책을 설치했다. 인건비며 그물값 등 설치하는 데만 들어간 비용이 총 78만원. 올해는 잘해야 돈 2백만원쯤 건지겠는데 김 가공공장에 내는 비용(김 한책당 1천원)과 설치비를 제하고 나면 오히려 돈만 바다에 뿌린 셈이다. 그동안 태풍에 떠내려간 말목과 그물을 다시 설치하는 등 반년에 걸쳐 들어간 8식구(2남4녀)의 품삯은 아예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수협에서 4백만원쯤 빚을 얻어 썼는데 “연방 이자만 눌러야지” 별 도리가 없다.

올해 태안군 일대의 김작황은 평소의 2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남면 법인어촌계 賈淳植(37)지도대리는 실제 판매량이 평소의 10%선에도 못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해태 양식이 ‘절딴’나다 보니 김 가공공장의 사정도 여의치 않다. 1천1백만원을 들여 소규모 공장을 세운 張成基씨(40·남면 몽산리)는 “작년에도 돈백이나 했나”하고 반문하면서 “올해는 더 형편없을 것 같다”고 걱정이 태산 같다. 張씨는 40책을 설치했는데 그나마 두섬지기 농사라고 안지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라고 한다.

태안군 남면 일대가 이상 난동으로 인한 갯병으로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반면, 태안반도의 끄트머리인 안면도 일대는 인근 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수로 하루아침에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린 경우이다.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방포포구 앞바다는 세계에서도 드문 청정해역. 해당화가 피어나는 자연 경관도 빼어나지만 각종 해산물이 풍부해 제주도에서 연간 1백여명이 넘는 해녀들이 원정오는 곳이기도 하다. 승언리의 60여 가구는 바다목장에 해삼이며 전복 등 어패류 양식으로 한 가구당 연소득 2천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며 인근에서 제일가는 부촌으로 마을을 살찌워왔다.

그러나 이들의 풍요는 하루아침에 좌절로 변하고 말았다. 지난해 9월경 이곳에서는 양식패류들과 가두리 양식장에서 기르던 광어, 도미 등 고급 어종까지 떼죽음을 당하는 ‘괴변’이 갑자기 일어났다.

“바다밑이 새까맣게 변했어유. 흡사 석탄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쥬. 군산수산대에서 현지 답사를 나왔는디 한 교수분이 말씀허시길 이것은 바다가 아니라 완전히 죽어 있는 담수라고 말하더구먼유.”

방포포구 어민들이 자비를 들여 수중촬영까지 해본 결과 방포 앞바다는 더 이상 바다일 수 없었다고 羅昌華씨(35·안면읍 승언리)는 말한다. 세계적인 청정해역이 어패류는 물론 해초까지 말라죽을 정도의 사해로 변한 것이다.

승언리 일대 주민들은 바다가 이렇게 오염된 이유는 바로 바다와 접해 있는 한국유리공업(대표이사 최영증)에서 흘러나온 폐수 및 폐기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무방비로 버려진 폐기물이 그동안 바다밑에 침전돼 있다가 작년 8월의 해일로 인해 바다가 뒤집어지면서 순식간에 포구 일대 바다를 오염시켰다는 주장이다.

국립수산진흥원은 지난해 10월 “안면공장(한국유리) 최종 배수장소의 갯벌은 유화물 3.65mg/g에 COD(화학적 산소 요구량) 40.79mg/g의 극히 악화된 상태로서 상당량의 유기물이 배출돼 어장의 악화를 초래했다”는 내용의 분석 결과를 어민들에게 통보한 바 있다.

현재 방포 앞바다의 오염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액은 약 36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날로 오염 직역이 확산되고 있어 간접적인 피해액은 훨씬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주민들은 시설 면허된 피해지역만  26.5ha로, 자연 서식처를 포함해 오염된 면적은 반경 3km에 걸친 수백ha나 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깨끗한 바다

그러나 충남 태안군청과 한국유리측에서는 국립수산진흥원 등 권위있는 조사기관들의 분석 결과에도 불구하고 보상 문제에도 소극적일 뿐 아니라 오염지역의 복구에도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 승언리 주민들은 조속한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羅씨는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돈에 의한 피해보상보다는 대대로 물려받은 바다를 하루빨리 옛날의 상태로 복원시켜 후소에게 깨끗하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群山大 조사팀의 분석에 의하면 이 지역이 다시 옛날 상태로 복원되려면 최소한 10년에서 30년은 걸릴 것이라는 진단으로, 다시 한번 공해산업에 의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워준다.

인위적으로 변화된 자연환경의 피해는 이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서해 바다의 곳곳이 오염으로 신음하고 있고 대단위 간척 사업으로 인한 폐해 역시 간단하지 않다.

충남 서산군 두석면 간월동. 이곳은 현재는 물에 속해 있는 하나의 동네에 불과하지만 몇해전만 해도 육지에서 한참 떨어진 섬이었다. 현대건설에서 벌이고 있는 서산만 간척사업의 B지구에 속한 이 지역은 하루 아침에 바다가 뭍으로 변하는 ‘상전벽해’의 반대 현상을 겪었다. 하마터면 서해의 명품인 간월도 어리굴젓이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그때의 일을 되돌아보자면 천지개벽, 변란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구만유.”

현지 주민인 朴重盛(49)씨는 낯선 기자에게 좀처럼 말을 풀어놓지 않다가 기자가 가져간 《시사저널》의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를 통해 들여다본 간월도 섬사람들의 ‘외지 사람’에 대한 불신은 상당히 뿌리가 깊었다. 창졸간에 벌어진 ‘개벽’에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벌어진 더욱 가혹한 일은 간척지구내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단 한푼의 보상도 못 받은 사실이다. 간월도에서는 82년초부터 물막이공사가 시작됐는데 현대건설은 주민들이 양식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보상을 거부했다. 대대로 내려온 어장에서 해산물을 수확하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사실 양식면허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존재였다.

어패류를 거두던 바다목장이 육지로 둔갑하자 이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마침 투기꾼들이 모여들어 평당 5백~6백원에 불과하던 땅값이 1만~2만원대로 올랐다. 체념에 젖어 있던 간월도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나 둘 땅을 팔기 시작했다. 朴씨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땅 팔아서 겨우 2~3년간 먹고 산 것밖에 없다”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탄을 한다.

“비록 땅뙈기는 하나도 없지만 지금은 먹고 살 만해유. 지난해 어촌계 소득이 1억8천만원이 넘었은께. 허지만 시방처럼 살림살이 형편이 나아진 게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자 양반 똑똑히 적어주쇼.”

살길이 막혀버린 간월도 68세대 주민들은 86년 8월부터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간척지 내의 돌을 맨손으로 들어내 조각배에 싣고 간척지 앞바다에 뿌리기 시작했다. 석화(굴)양식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조그만 배 몇 척에 돌을 가득 싣고 나르는 일은 사실 생명을 거는 거나 마찬가지 였다. 잘못해서 배라도 뒤집히는 날에는 떼죽음을 당할 판이었다. 돌이 모자라면 현대건설이 제방 쌓으려고 가져다놓은 돌을 뿌렸다. 그 과정에서 박씨는 숱하게 경찰서에 불려다녔다. “하늘이 살릴려고 그랬는지 마침 종패(조개의 종자)도 많이 있었고 바지락이며 석화가 잘 굳었다”고 박씨는 술회한다. 이렇게 해서 간월도는 다시 살아났다. 89년에는 어리굴젓만 16톤을 생산했다. 주문량에 비해 공급이 달릴 정도였다.


수자원 보호한다면서 간척사업은 허가

“지금이니께 웃으면서 말허지만 당시는 사람 환장할 일였슈.”

간월도 앞바다인 천수만은 연안 어족의 산란지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수자원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지금 현지 주민들은 수자원보호지역을 풀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바다를 온통 막는 것은 괜찮고 집을 이층으로만 늘려도 군청에서 나와 다 때려부수는 통”에 지역개발이며 관광객 유치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들의 논리는 수자원보호지역이면 간척사업도 허가를 하지 말았어야 된다는 것이다.

전북 옥구군 옥구읍 옥선리. 이곳 줌니들도 바다 하나만 믿고 살아온 어민들이다. 이곳 1천여 가구의 주민들은 해태농사도 ‘숭년’인데다, 간척사업으로 백합, 바지락, 피조개 등의 양식 터전인 바다를 잃어버릴 이중의 문제에 닥쳐 있다.

옥선리 앞바다는 특히 파도가 세기 때문에 옥선 김은 전국 제일가는 상품으로 여겨진다. 지난해는 김 하나만으로 옥선리 어촌계가 1백16억의 소득을 올렸다. 김 말고도 백합 1관(4kg)이 현지에서 6만원씩 하니 이들의 수입도 실팍하니 괜찮은 셈이다. 성수기인 3월부터 6월까지는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3백만원쯤 올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 어촌계장인 姜岩石(48)씨는 “인제 바다하고는 인연이 끊어지는 게뷰”라고 깊은 한심을 쉰다. 이 지역은 면허지인 해태류 양식장 1백5ha, 바지락 10ha, 1종 공동어장 2백67ha 등에 대해 피해보상을 위한 용역 평가가 군산수산전문대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마을의 金一南(55)씨는 “면허지 이외에서도 해산물 채취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피해는 훨씬 심각하다”면서 “이에 대한 보상은 받을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한다.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메워지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쳐유. 그러나 그 이전에 충분한 사후보장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감. 우리도 보장이 제대로 안되면 타협을 못하는 겁니다.”

서해는 오늘도 살아 꿈틀거린다. 그러나 지역 균형개발의 뒷전에는 이토록 삶의 방식을 순식간에 바꾸도록 ‘강요’당하는 어민들의 한숨이 곳곳에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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