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투’줄고 경영참여 요구 늘 듯
  • 김재일 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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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새 양상… 정부의 강경대응으로 횟수 감소한 반면 장기화·대형화 추세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정착돼 가는가? 지난 몇 년간 과격한 분규형태로 치달았던 노동쟁의는 온건해지고 있는가? 최근의 통계와 노동운동의 외면적인 양상만으로 볼 때 이같은 물음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과 2개월전만 해도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5%에서 7%까지 잡는 등 올해 경제전망에 대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그 가장 큰 변수는 노사분규의 불확실성이었다. 그러나 새해 들어 모든 산업에서 발생한 노사분규는 지난달말 현재 38건으로 지난해의 4분의1 이하로 줄었고 분규양상도 극한 투쟁을 지양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비관론이 주류였던 경제전망이 경제계 일부에서부터 차츰 낙관론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와 추세로 볼 때 본격적인 춘투가 시작되더라도 노동쟁의 양상이 작년보다는 훨씬 누그러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인 것이다.

노동운동의 온건화 추세는 딴 데서도 엿보인다. 상대적으로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을 탈퇴하는 단위노조가 늘어나고 있고 노총위원장은 “법 테두리 안에서의 투쟁”을 천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정부는 노사관계가 점차 안정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3,4월을 지나봐야 하나 분규 안정의 조짐임에 틀림없다”고 올봄 임금투쟁 양상을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분규가 줄어든 이유로 국민경제가 어려운 데 따른 노사 양측의 자제 분위기와 그동안의 경험축적,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의 탓으로 돌렸다. 과연 그런가?

최근 몇 년 동안 격렬한 노사분규의 경험을 통해 노사 양측이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는 원만한 노사관계가 필수적임을 공감하는 가운데 노동쟁의가 온건해지고 있다면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최근 노동운동의 온건화 경향이 노사관계의 정상화가 아닌 “정부의 강력한 공권력 집행에 의한 운동권의 위축”으로 보고 있다. 金錦守 노동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88년말 대통령 특별지시를 기점으로 정부·자본측은 노동운동에 적극 개입했고 지난해 4월 공안정국하에서 더욱 통제가 강화됐다. 지난 연말 경제단체협의회(경단협) 발족에 이어 최근 정부의 1백60개 단위노조에 대한 업무조사권 발동과 함께 노조탄압이 노골화된 가운데 노동운동이 일시적으로 위축됐다는 것이다.


집값·물가 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원 역시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노동운동이 위축돼가는 것은 분명하나 다시 터질 수 있는 불안요소를 충분히 안고 있다”고 진단하고 분규 감소에 목적을 둔다 하더라도 정부의 개입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규의 건수는 줄었으나 분규의 양상은 장기화·대형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주장의 질 또한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노협도 탈퇴하는 노조가 꽤 있다는 점을 시인했으나 ‘전술적인 후퇴’라는 입장이다. 이용선 조직부장은 경찰, 시청 직원, 노동부 직원과 회사 간부 등이 함께 나서 노조활동을 탄압할 뿐 아니라 전노협 가입 노조에 대해 업무조사를 강행, 전노협 탈퇴를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전노협 가입노조에 대해 횡령여부와 다른 사업장 쟁의에 대한 재정지원 등 경리사항을 중점적으로 조사, 문제가 있는 노조는 사법조치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조합법에 근거한 합법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전노협을 탈퇴한 노조 숫자 또한 양측의 주장이 다른데 노동부는 6백40여개 노조와 19만2천명의 노조원 중 2월말 현재 남은 노조와 노조원수는 각각 4백28개와 15만6천9백명이라고 주장하나 전노협은 40개의 노조와 노조원 1만명 정도가 탄압에 굴복, 떨어져 나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전노협을 탈퇴하는 단위노조 숫자가 늘어나는 이유로 정부의 불법단체 규정과 업무조사 강행, 또 강경성행에 회의를 느끼는 조합원들의 자진탈퇴 등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전노협은 자진탈퇴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자체 조직강화를 위해 회원노조에 대해 홍보와 교육을 강화하고 타압사례를 수집, 정치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단위사업장별 결의대회와 지역별 규탄대회를 개최할 것이나 과격한 시위를 지양하고 조합원의 의지를 모으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이부장은 말했다.

앞으로 노동운동은 임금투쟁에서 경영참여 쪽으로, 사업장 단위에서 국가정책을 비판하는 쪽으로 나갈 것으로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임금인상을 둘러싼 노사분규는 87년 70%에서 지난해에는 46%로 줄었으나 단체협약에 관한 분규는 같은 기간 5%에서 26%로 늘었다. 한 연구원은 앞으로 노조는 사업장내에서는 임금 이외의 근로조건 즉, 퇴직금, 작업 환경 개선 문제뿐만 아니라 인사위원회, 징계위원회에의 참여 등 경영에의 참여 요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사업장 밖의 문제로는 전세값 문제, 불로소득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노협 또한 주택·물가문제에 올해 활동의 주안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왜곡된 노동현실 올바로 인식할 때

이유야 어떻든 외양적으로 나타난 노동운동은 온건해지는 것처럼 보이고 전노협을 이탈하는 단위노조의 수 또한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부의 주장대로 자진 이탈하는 노조도 있겠지만 강압에 의한 탈퇴가 없겠느냐는 점이며 정부는 공권력 개입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사관계가 한국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을 만에 하나라도 탄압의 명분으로 삼는다면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 싶다. 이는 정부가 노사관계에 있어서 중립의 입장과 자율의 원칙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총에 대해서는 노조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실질적인 개혁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총위원장의 희망대로 전노협을 흡수, 노조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이 가능할는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전노협의 주장을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총의 개혁은 더 높은 차원의 노동운동이라기에 앞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생존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노동운동권은 비폭력이 더 많은 국민적 지지를 얻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여당, 그리고 사용자가 왜곡되어 있는 노동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신뢰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노사관계를 가꾸어 나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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