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민주주의’
  • 최 성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상임연구원) ()
  • 승인 199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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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총부리 물리칠까



‘개발독재론’ 앞세운 군부통치…다수민중은 빈곤 여전
 방콕의 밤하늘이 ‘민주주의’를 암살하는 군부의 총소리로 굉음을 내는 순간, 필리핀으로부터 급전된 외신은 역시 군부출신 대통령후보인 라모스의 승리를 알려주었다. 필자는 태국에서 민중항쟁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방콕 현지에서 동남아시아 각국의 반정부단체 지도자들과 함께 진통을 거듭하는 동남아시아 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을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오랫동안 군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발전으로 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군부의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개발독재’의 논리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일관된 통치 이데올로기였다.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미명 하에 30여년 군부독재를 유지해오다가 지난 88년 또다시 민중항쟁을 유혈진압한 미얀마의 사웅마웅 군부정권, 25년에 걸친 반공노선 원칙 아래 군부통치를 강화해온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체제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사실 신흥공업국가(NICs)로 불리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경제적 성장 역시 정치적 권위주의를 강화시키면서 외형적 성장을 추구한 결과이다. 이러한 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의 경험은 계급간 불평등구조 등 심각한 구조적 모순을 낳았지만, 동남아시아의 아세안 국가에게는 오히려 모범적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86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경제정책을 본받자는 취지의 동방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교역의 상당 부문에서 한국을 추월하는 눈부신 성과를 얻으면서 새로운 신흥공업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최근 수출신장률이 13.8%(말레이시아)에서 26.2%(태국)에 이르고 있음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을 나타내주는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최근들어 아세안은 회원가입을 희망하고 있는 베트남과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 3국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지역공동체를 추진중이다.

 이같은 국내외적 상황 속에서 방콕 시민 ‘중간충의 정치적 반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신 중산층의 열망은 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같은 열망은 비록 군부통치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권위주의적 강권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에도 복병으로 남아있다. 특히 필리핀의 경우 ‘민주혁명’을 통해 마르코스의 군부통치를 종식시키고 아키노정권을 출범시켰지만, 72년 계엄선포 이래 강화되어온 매판적 지배 엘리트와 군부의 영향력은 전통사회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 결과 민주혁명이 승리한 이후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예외없이 유지되었고, 필리핀의 다수 대중이 염원하던 토지개혁을 비롯한 사회개혁은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필리핀 사회의 구조적 한계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여실히 반영되어 상당수의 후보가 지배권력 내의 다양한 분파의 이해를 대변했다. 72년 마르코스의 계엄령선포에 동조하고 국가경찰군 사령관을 지낸 라모스는 물론이고 ‘마르코스 본당’을 자처하면서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코후앙코, 그리고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필리핀의 정치현실을 필리핀의 민중운동가 데니스씨는 ‘좌절된 민주혁명’이라 규정했다.

 군부통치와 함께 지적되어야 할 또하나의 진통은 제국주의국가와의 전쟁을 통해 민족해방을 달성했던 인도차이나 지역의 공산정권 모두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속한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베트남조차도 1인당 국민소득 2백달러, 3백%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 등 최악의 경제상황에 처해 있다. ‘베트남식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도이모이정책을 통해 일본과 한국자본과의 결합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베트남 사회과학연구소의 손씨는 말했다. 베트남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사이에서 커다란 딜레마에 빠져 있음은 “천안문 광장의 학살과 동유럽의 붕괴 사이에 베트남의 현실이 놓여 있다”는 코트 교수의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렇듯 동남아시아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양대 목표 사이에서 진통하고 있다.

 

지식인의 ‘민중적 민주주의’ 실천이 관건

 그렇다면 동남아시아 국가에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권위주의 정권과 저발전의 뿌리는 무엇일까. 서구 근대화론자들이 주장하듯 아시아사회의 봉건성과 반민주적 정치문화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니면 종속이론가들이 주장하듯 미국과 일본,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세력의 식민통치의 유산인가.

 주지하다시피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는 예외없이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세력의 식민통치를 오랫동안 받아왔다. 동시에 식민지 지배세력은 용이한 통치를 위해 인위적으로 영토분쟁과 민족분규를 촉발시켰다.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세력에 빌붙은 토착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서 민중들에 대한 정치 경제적 억압을 배가했다. 오늘의 동남아시아는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2차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세력의 패배와 함께 중국과 베트남에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지자 강대국들은 동남아시아에 대한 지배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즉 과거와 같은 정치 군사적 지배방식은 아시아 민중의 정치의식 성장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현실인식 하에서 ‘종속적 경제발전’을 추구하게 됐다. 즉 강대국의 새로운 이해를 대변해 줄 수 있는 내부 토착세력을 강화하여 경제성장을 지원해주면서 본질적으로는 경제적 착취와 정치군사적 종속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3백억달러를 넘는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직접 투자하고 있는 일본의 동남아시아정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엔 블록‘으로 실질적인 ’대동아공영권‘을 형성하여 두고 동남아시아를 일본의 경제적 종속하에 두고 군사대국화를 모색하려는 계산이다.

 이처럼 인도차이나 지역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식민통치 기간 동안 주요 국가권력을 장악한 토착지배세력, 특히 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오랫동안 받아야만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 국가는 서방의 엄청난 물량지원에 힘입어 외형적 경제성장은 상당 정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은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특정 독점자본 지원, 군수산업과 공해산업 그리고 퇴폐 관광산업의 육성으로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는 경제적 불평등?환경파괴?에이즈 등 각종 사회병리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가 절대적인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콕의 시민혁명은 물론이고 ‘좌절된 민주혁명’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필리핀 민중의 저항 역시 군부독재 아래 종속적 발전을 거듭해온 구 질서에 대한 시민적 저항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 이면에는 그동안 성장 과정에서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 지식인과 중산층의 민주적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민중들은 여전히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정의라는 당위적 목표에서 소외된 채 실업과 문맹, 그리고 절대적 빈곤생태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동남아시아 민중의 또다른 현실이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짓는 관건은 민주혁명을 시도했던 지식인과 중산층이 얼마만큼 다수 대중의 아픔을 끌어안고 민중적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 점에서 4?19혁명과 광주항쟁, 그리고 두 차례의 군부쿠데타로 점철된 한국의 정치적 격동과 역사적 반전은 동남아시아 국가가 불가피하게 거쳐야만 될 역사의 필연적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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