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발전모형’ 탐색 있어야
  • 서병훈 (숭실대교수 · 정치학)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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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보수파에 정권 넘어간 니카라과, 자본주의 복귀로는 경제난국 극복 힘들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정부가 ‘선거’라는 단판승부를 통해 우익보수파에게 간단히 정권을 넘겨주고 만 ‘진천동지’할 사건 때문에 전세계의 좌파 혁명가들이 격분하고 있다. 어차피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통치기법이 필요한 것인데, 오르테가가 선거와 같은 정치적 도박에 경솔하게 승부를 걸었다가 패가망신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르테가로서는 변명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 그는 이번 투표전쟁에서 자신이 지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소모사를 무너뜨리고 반미 투쟁을 과감하게 전개함으로써 획득한 국민적지지, 토지개혁과 같은 일련의 국가발전계획이 거두어들인 적지 않은 성과, 그리고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7만 정예당원과 청년·농민·여성 등 각종 전위조직의 25만 추종세력에 대한 믿음 등은 오르테가로 하여금 승리를 확신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4월로 예정된 자신의 ‘취임식’에 불구대천의 부시 미국대통령을 초청하는 여유을 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치밀한 계산에 농락당한 셈

오르테가를 정치적 현실감각을 결여한 낭만적 혁명가로 간단히 치부한다면 극서은 니카라과의 실정에 대한 무지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오르테가가 이번 선거에 자신과 FSLN의 운명을 걸었던 것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미국과 화해하고 싶었고, 선거에서의 승리가 그 계기가 되기를 학수고대하였던 것이다. 미국이 81년 이래 옥죄어 온 니카라과에 대한 경제봉쇄, 그리고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은 오르테가 정부를 질식할 지경에까지 몰아넣었다.

콘트라 반군이 미국의 공공연한 지원 아래 활동을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5만에서 6만명에 이르는 인명손실과 60억달러의 전쟁 비용, 그리고 1백22억달러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FSLN은 감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니카라과의 경제는 완전히 파탄에 빠졌다. 85년에 2백% 남짓하던 인플레이션이 86년에는 6백81.5%, 87년에는 9백11.9%로 치솟았고 그 다음해에는 급기야 2만6천%(어떤 통계는 3만5천%까지 늘려 잡았다)라는 천문학적인 단계로까지 번져나갔다. 현재 실업률은 25%를 육박하고 있으며 도시민의 실질임금은 80년의 10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 참혹한 실정이다. 비록 소련과 동유럽에서 매년 7억달러 정도의 경제원조를 보내왔지만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열풍은 이제 이것마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오르테가는 가장 미국적인 정치게임인 선거를 통해 그의 정치적 정당성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미국이 더 이상 니카라과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오르테가로서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치밀한 계산에 농락당하고만 셈이다. 미국은 3백만에서 5백만달러에 이르는 정치자금뿐만 아니라, 최일류의 선거홍보전략까지 야당측에 제공함으로써 거친 투쟁에만 익숙해 있던 산디니스타 정부를 두 손 들게 만들었다. 나아가 오르테가는 빈곤과 내전에 시달린 니카라과 국민의 심중을 정확하게 짚지도 못하였다.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라는 뜬구름같은 표어보다는 당장의 민생고에 찌들 대로 찌든 대중들의 맹목에 가까운 현상변경 선호 심리를 파악하는 데 실패하였던 것이다. 수도 마나과의 노동자 거주지역에서조차 오르테가가 승리하지 못하였음은 이를 웅변으로 입증하였다. 야당 후보자 차모로는 내전 종식, 징병에 폐지, 경제재건을 공약하였고, 미국은 차모로 정부에 대한 대대적 경제지원을 호언함으로써 니카라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재건’내세운 차모로 앞길 험난

그러나 차모로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강경 좌파가 장악하고 있는 군부와 경찰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아무리 미국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차모로 정부가 선택해야 할 체제개혁의 방향 또한 그 시계가 분명하지 않다. 비록 산디니스타 정부가 ‘좌파’라는 분류를 받기는 하였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 개혁노선은 민주적 자분주의 혹은 혼합경제모델에 가까웠다. 따라서 차모로가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명분에 집착하여, 전통적 또는 신보수주의적 경제정책으로 회귀할 경우, 니카라과의 경제난을 제대로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차모로의 당선에 미국이 깊숙이 개입한 것을 빗대어, 차모로는 미국민의 세금으로 마치 부시 행정부의 후보자인 것처럼 행동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미 1911년에 수천명의 해병대를 파견하여 니카라과의 정치를 요리한 과거가 있는 미국이다. 미국으로서는 제2의 쿠바인 니카라과를 성공적으로 ‘수복’한 기쁨에 감격스러울지는 몰라도, 골리앗과 같은 초강대국에 맞서 민족해방투쟁을 펼치고자 하는 중남미의 혁명가들로서는 이번의 일로 미국의 실체를 다시 한번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중남미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흥분하는 보수주의자들 또한 제3세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이나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중남미지역이 자본주의적 원형에 복귀함으로써 그들 특유의 구조적 난관이 극복되리라고 속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미 1960년대의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점진적 체제개혁의 시도마저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곳이 바로 중남미이다. 이런 뜻에서, 니카라과 사태는 중남미와 같은 제3세계 지역이 나름대로의 상황에 걸맞는 새로운 체제모형을 찾기 위한 힘들디 힘든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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