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로운 짐 ‘차모로 정권’
  • 워싱턴 · 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0.03.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니카라과의 대통령당선자 비올레타 차모로(61)의 이 말은 니카라과 정국의 앞날이 밝아지느냐 아니면 짙은 안개에 휩싸여 혼란을 면치 못하느냐가 선거에 진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 지도부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계산해서 한 말일 것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더욱이 미국 의회가 결의하여 ‘민주회복운동자금’이라는 명목으로 할당된 외국의 정치자금까지 받아 힘겹게 승리한 차모로의 국민야당연합(UNO)은 1979년 이후 니카라과를 통치해온, 이념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의 산디니스타혁명세력을 상대로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할 판이다.

산디니스타 정권은 50년 동안 니카라과를 독점지배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족독재를 타도한 1979년 혁명 이후 줄곧 친소련정책을 써옴을써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나빠져 사실상 국교단절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산디니스타정권이 차모로를 ‘매국노’(Vende Patria)라고 매도하고, 차모로에게 제공될 미국의 정치자금 유입을 차단하려 한 것도 외세를 등에 업은 꼭두각시를 용납할 수 없다는 민족적 자존심과 관련있는 것이었다.

‘매국노’를 상대한 선거에서 참패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지도부의 내각격인 9인 국가평의회의 내무장관 토마스 볼헤와 국방장관인 움벨르 오르테가(오르테가 대통령의 친동생)같은 강경파는 그들이 관장하고 있는 15만명의 인민군대와 민병대 그리고 2만명의 경찰이 차모로 정권에 충성을 거부할 것이므로 “차모로 정권은 통치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군을 선동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친미 정권이 들어서게 된 데 대해 환영의 빛이 역연한 부시 행정부가 가장 크게 걱정하는 대목도 다름아닌 군대와 경찰의 새 정권에 대한 도전 가능성이다.

만일 군대와 경찰이 새 정부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되면 미국이 군사원조를 대폭 강화하여 개입할 여지를 배제하기 힘들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차모로 정권이 들어서는 데 대해 반가움에 못지 않게 두려움을 갖고 있는 미국 정부의 또 다른 걱정은 과연 정치 경험이 없는 차모로가 그를 밀어준, 오합지졸이 모인 14개 정파의 엇갈린 이해를 가다듬어 실수 없이 정부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며, 파탄지경에 이른 나라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하는 지도력과 행정능력에 대한 의문이다.

연간 인플레가 3만5천%(88년)나 되고, 콘트라 반군파의 10년 내전에 쓴 돈이 1백50억달러에 달할 뿐만 아니라, 정부예산의 절반이 군사비로 지출되어 경제규모가 지난 10년 동안 절반으로 줄어드는 막다른 지경에 이른 나라사라림을 단시일에 일으켜놓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차모로를 지원한 미국으로서는 니카라과의 경제부흥을 지원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 차모로 쪽에서 벌써 20억달러 원조 요청이 들어와 있지만 국고가 메말라 있는 미국 형편으로 그만한 돈이 과연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여 무력타도를 시도했던 미국으로서는 니카라과 국민의 선택에 의해 출현한 새 정부를 “세계적인 민주화추세가 가져온 또 하나의 승리”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와 의회 일각에서는 콘트라를 지원한 레이건 독트린 같은 강력한 개입이 있으므로 해서 거둔 열매라고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파나마의 노리에가와 니카라과의 오르테가가 실각한 중미에 지금 외로이 홀로 남아 있는 쿠바의 카스트로의 앞날을 손으로 꼽아보는 일부 미국사람들은 “다음은 네가 떠날 차례”라며 미소짓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