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한계 드러낸 북한 미술
  • 글 그림해설 이구열 (미술평론가) ()
  • 승인 199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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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처음 열린 대규모 미술전…창조성 약하고 조선화만 변화 징후



 역사의 필연은 새로운 흐름의 연속이자 귀착으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염원의 개선과 실현으로 이어지는 결실의 진행이기도 하다.

 지난 5월23일 서울의 국가적 문화기구인 예술의 전당에서는 남한에서 처음 종합적인 북한 미술전이 열려, 미술계는 무론 관심있는 일반 시민, 특히 북한에 고향을 둔 연령층의 발길이 붐볐다. 지난해 북한과의 직거래 구상무역 때 들어왔다는 갖가지 미수작품과 공예품 약 2만점 중에서 적절히 고른 1백40여점이었다. 곧 조선화(남한의 전통적 한국화 성격)를 비롯하여 유화 판화 조각 수예(자수) 옥석공예 및 각종 도자기들이다.

 이 전시는 정상적이고 조직적인 남북 미술교류로 실현된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북한 미술전이 서울의 하늘 밑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것은 연전의 전통음악 연주 교류등 남북관계 변화추세와 연관된 또 하나의 단계적 실현이라는 획기적 의미를 지닌다.

 이 북한미술 전시장에서 관람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시각으로 반응했으리라 생각된다. 일반 관람자들은 무엇보다도 북한체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일변도와, 그를 인민들의 미감과 정서에 합치되는 민족적 ‘주체미술’로 강변하고 있는 실태의 일단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전까지의 여러 가지 궁금증과 호기심을 어느 정도 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가와 관계 전문가 및 안목인들은 ‘예상했던 수준’으로 평가절하하거나, 혹은 사회주의 체제의 경직성이 미술에도 그대로 작용하는 실상에 ‘그렇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사실 남한의 자유롭고 다양한 현대미술동향의 가치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시각으로 본다면 오로지 김일성 교시와 당의 문예정책으로 철저히 통제돼있는 이른 바 ‘주체미술’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내용을 고수하는 형태는 참된 예술적 창작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많다. 그러나 남북미술 비교에서 그러한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보다는 북한 체제의 통제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현실을 그것대로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북한 미술전에 가장 많이 전시돼 조선화와 그밖의 유화?판화는 수입상사의 사전 고려가 있었던 듯, 정치적 주제가 사실상 나타나 있지 않은 순수한 현실미의 자연풍경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북한에서 말하는 ‘명승지풍경화’로서 사계절의 변호미가 선명하게 강조된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동해바다, 대동강과 평양 일원의 풍정미가 사실적으로 나타난 작품들이었다.

 특히 조선화의 경우 과거에는 서양화법의 유화. 수채화에서나 볼 수 있던 다채로운 사실적 색채기법과 명확한 묘사력을 효과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말하는 성과의 실상을 충분히 보게 된다. 그러나 몇몇 작품에서는 작가가 매우 자유롭게 구사한 수묵 필치와 담채의 분위기 존중 등 개성적 의도가 드러나 있기도 하여 다소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미 말했듯이 이번 서울에서의 북한미술전에는 회화·조각에서 저쪽의 체제적 본질인 인민성과 혁명성에 충실하게 대대적으로 제작하는, 김일성 수령 形象化(사실은 우상화) 주제‘와 ’항일 무장투쟁 주제‘, 그밖의 ’사회주의 건설의 인민투쟁 형상화‘같은 작품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보기좋게만 그려진 풍경화에 대해서도 북한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가치간으로 색칠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당중앙(김정일)의 현명한 영도 밑에 천지개벽한 조국의 거창한 자연미와 수려한 금수강산을 노래하며, 관중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키워주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이는 북한 《조선예술》(1986)에 게재된 한 미술평론가의 논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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