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ㆍ캄보디아에서도 “동유럽을 본받자”
  • 김현숙 기자 ()
  • 승인 1990.02.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장원리 도입 등 자본주의 실험에 이어 정치개혁도 선언

 폐쇄의 보루로 남아 있던 아시아의 두 공산국에도 개혁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 11년간의 내전으로 깊은 상처만을 안게 된 캄보디아와 그 나라에 군사적 개입을 해온 베트남이 이제는 각기 ‘자본주의 실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지난 1월16일의 파리회담으로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개혁의욕이 한층 고취되고 있는데,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동유럽식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주간 〈캄푸치아〉편집장이자 국회의원인 키우 칸하리드는 “이제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캄보디아와 무관하다”고 선언하며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조항을 폐기할 것을 제의하고 나섰다. “다당제 허용 등 정치적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경제적 자유화를 정치적 변화에 연계시키지 않은 중국의 혼란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같은 그의 주장은 “캄보디아의 지금 상황이 게릴라와 싸워야하는 만큼 공산당 1당 주도하의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공산국가에 대한 지원보다는 서방국가와의 관계개선에 골몰하고 있는 소련과 동유럽의 우방들이 캄보디아 정부군에 대해 크메르 루주와 타협할 것을 강권하고 있어 정치개혁문제는 앞으로 캄보디아에서 관심의 초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캄보디아의 개혁 움직임은 작년 4월초에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지도부가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호된 비판을 받은 후 경제개혁을 선언하고 나서면서부터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훈센 총리를 비롯한 공산당지도부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개방경제’라고 명명하고 집권 후 처음으로 장기적인 경제정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작년 가을 베트남군 철수후에도 크메르 루주 반군과의 내전이 끊이질 않자 개방정책은 계획과 달리 실효를 거두지 못해왔다. 오히려 당간부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부정부패가 활개를 쳐 국민들의 불만만 더욱 높아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자 최근에는 아예 “사회주의와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캄보디아보다 훨씬 이전부터 개혁을 추진, 이미 상당한 결실을 보고 있다. 구엔 반 린 공산당서기장은 지난 18일 호치민시당위원회 회의에서 “베트남공산당은 동유럽사태에서 교훈을 얻어 단호한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혀 정치적 ‘도이 모이(개혁)’를 시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동유럽 사태에 관한 연설에서 “일반대중을 소외시키고, 경제를 국가보조금에 의존하게 하며, 민주적 지배원칙을 위배해 독재를 행한 것이 동유럽 공산주의의 실패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베트남 공산당원들도 ‘관료주의’에 빠져 있음을 시인했다.

 린 서기장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작년 4월 제6차 공산당전체회의 폐막연설에서 다당제 도입 가능성을 일축하고 “공산당 지도부의 권위를 침해하는 어떤 음모도 분쇄할 것”이라던 단호한 태도에서 급선회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 ‘도이 모이’    

현재의 개방화 움직임은 지난 86년 공산당서기장직에 오른 린의 작품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 즉 ‘도이 모이’를 국민들에게 선보임으로써 75년 통일 이후 팽배해온 국민들의 불만을 희망으로 바꾸어놓는 데 일단 성공했다. 시장원리 도입, 사기업 허용, 농지 재분배 등을 실시, 지난해 농공업 생산과 외국인 투자가 급격한 신장세를 보였으며 만성적 인플레도 현저히 진정되었다. 올해 수출목표도 전년에 비해 50%를 증가시켰는가 하면 성장목표도 지난해의 거의 2배 수준인 6%로 잡아놓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내전에 개입한 이래 작년 가을 철군할 때까지 10여년간 쏟아부은 군사비로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베트남경제가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 회생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몇년간의 자본주의 실험으로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린 서기장이 경제개혁에 이어 최근 베트남 정치개혁을 선언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베트남의 개방정책은 그밖에도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1월부터 3개월 동안 베트남의 정치범 5천명을 미국으로 이주시키기로 합의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던 베트남의 입지를 넓혀주는 데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백50달러도 못되는 세계최빈국의 불명예를 씻고 국제사회에 떳떳이 진출하고자 몸부림치는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조용한 페레스트로이카’는 경제개혁에 이어 정치개혁을 모색하면서 일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