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인력 재창출하는 기업 대학원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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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교육과정 통해 碩士 배출… 차원높은 再投資로 각광, 개설 붐 일어

공과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수학 방정식이 흑판 가득히 씌여 있다. 한때 공대에 몸담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휩쓸리다 보면 잊게 마련인 고차원의 수학 문제들이 속속 등장한다. “미분방정식에는 오디너리 디퍼런셜 이퀴에이션과 파셜 디퍼런셜 이퀴에이션이 있죠 이 가운데 파셜 디퍼런셜 이퀴에이션은 수학자들이 만들어낸 수식으로 풀 수는 있지만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거의 풀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얼핏 공과대학의 수학시간을 연상케 되지만 여기가 공대 강의실은 아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이란 다분히 기계 냄새가 나는 회사에서 개설한 기술대학원 과정의 강의 한 토막이다. 말끔한 와이셔츠 차림도 있지만 대부분 청색 점퍼를 입은 회사원들이 앉아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다.

 이 회사 화공사업본부 공정부에 근무하는 林正完(29)씨는 오랜만에 다시 학교에 돌아온 기분이다. 대학 화학공학과를 나와 전공을 살려 직장을 선택하긴 했지만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두툼한 교재를 앞에 놓고 교수의 강의를 들은 지는 꽤 오래된 것이다. 졸업후 4년이란 세월은 금방 지나간 듯 싶지만 그 사이 전공내용은 까마득해진 것이 현실이다. 오늘의 수학 강의는 학부때 들은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처음 듣는 것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귀에 낯설게만 들린다.

 회사에서 기술대학원을 연다고 할 때 林씨는 쾌재를 불렀다. 꽉 짜여진 직장생활에 큰 불만은 없었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열망이 사리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학교의 정규대학원을 가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여서 林씨는 서둘러 지원서를 냈다. “인간에게 있어 학문은 ‘평생’이란 의미가 주어져야 합니다. 특히 저같이 날로 발전돼가는 기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대학원 개설을 환영하고 있죠. 회사에서도 전문인력을 자체 양성한다는 점에 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값진 일이지요. 회사일과 병행할려니 어렵지만 끝까지 한번 해 볼 생각입니다. 내 의지를 시험해보는 작업이기도 하지요.”

 회사내에 자체 운영 대학원을 개설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급변하는 기업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기업의 의지가 이를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대학원 개설 움직임은 직원 개개인에게 주어진 업무 영역에서 좀더 나아가 넓은 세계로의 거시적 안목을 심어주는 등 미래를 대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곧 도래할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가치’가 ‘물질가치’를 앞서가게 되기 때문이다. 또 갈수록 치열해지는 인재확보 전쟁에서 기업들이 외부에서 사람을 끌어들이기보다는 현재 갖고 있는 인력을 자체 교육, 고도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도 보인다.

이수자, 승급ㆍ학술연수시 우선권 부여

 기업의 부설 대학원 과정은 미국의 IBM사나 모토롤라사의 MBA 과정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소속원들의 경영능력 배양과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국에서는 많이 운영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기업들은 이 과정 이수자에게 한해 석사학위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외에도 승급, 학술연수시 우선권 부여 등 인센티브도 주고 있다. 강사진도 국내 유수대학의 상경대학 교수와 공과대학 교수를 초빙, 정규대학원 과정에 비해 질적인 면에서 손색이 없다.

 또 평사원이 관리자가 될 때 경영능력 함양이 필요하게 되는데 현대해상화재보험 자동차사업부의 洪斗植 계약과장은 바로 그와 같은 사례. 대학 전자계산학과를 나와 전산실에서만 7년여 근무하다가 보험 파트로 옮겨 앉은 洪과장은 경영아카데미 수업을 받으면서 경영전반에 대해 적잖이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혜자인 직원들도 다시 공부하는 기쁨과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받게 되는 등 이 움직임은 노사 모두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 1월15일 기술대학원을 열었으며 한국전력기술(한정의 자회사), 삼성전자 등은 이미 졸업생을 배출, 지금은 다음 학기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대우전자, 현대해상화재보험 등은 올 3월에 졸업생을 낼 계획으로 다음 학기생들을 모집하고 있는 상태다.
 회사의 특수성 때문에 비교적 오래전인 지난 83년 9월부터 계속교육제도(CEP)의 일환으로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전력기술(주)는 2기생을 배출하고 현재 3기생을 뽑아 교육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회사 특성에 걸맞게 전기공학, 핵공학, 기계공학, 배관, 계측제어공학, 전자계산학 등 6개 과목을 두고 있다. 교육은 2년과정의 4학기제로 학기당 10주 단위이며 일과후 3시간씩 강의시간을 갖는다. 10개 과목을 6년 이내에 수료, 24학점을 얻으면 석사학위를 가진 사람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

 이렇게 강행군을 하다 보니 현재까지 수료생 1천4백명 가운데 석사대우 과정 수료생은 63명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판 주경야독이란 과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회사는 88년 4월부터 한전ㆍ한전보수ㆍ한국중공업ㆍ한국핵전력 등 9개 한전관계사에도 기술대학원의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데 ‘상아탑 수학의 꿈’을 실현하려는 참여자들의 열기가 날로 뜨겁다고 기술 개발총괄부의 한 관계자는 밝힌다.

 대우전자도 자체대학원 개설 방면에선 앞서가는 기업으로 빼놓을 수 없다. 국내최초 기업 부설 경영대학원인 대우전자 경영대학원(DMBA)은 88년 7월에 문을 열었으며 1년을 4학기제로 연간 2회 반복 운영된다. 올 3월에는 새로 수강생을 선발할 계획인데, 경영학특강, 마키팅, 회계 및 정보론, 국제경영 등 8개 과목을 수강시키고 있다. 교육내용은 경영대학원 MBA과정 수준으로 하되 토픽중심으로 이론적 배경과 응용부문을 접목시킨 것이 특색이다.
 대우전자는 연구개발(R&D) 능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기술대학원도 지난해 1월부터 열고 있다. 개설과목은 최적설계, 제어공학 등 4개 전문과목을 두어 우선 대우전자연구소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인력관리 프로그램이 잘 돼 있는 삼성전자도 87년 1월 기술대학원(가전부문)의 문을 열었다. 가전부문 대학원은 당초 전자통신ㆍ기계계측ㆍ컴퓨터 등 3개 학과에서 지난해에는 산업공학과를 추가하는 등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현재 2기생 71명과 3기생 52명이 수학중에 있다. 이 회사 1기 졸업생인 삼성전자 종합연구소 연구1담당 오디오그룹(120그룹)의 金學道연구원은 ‘디지탈 파라메트릭 오디오 이퀼라이저의 설계 및 구현’이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지난해 3월에 받았다. “업무와 함께 하다 보니 학문적 깊이를 쌓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지만 현재 진행중인 기술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가전부문 외에도 이미 지난 81년 국내최초로 정보통신부문 기술대학원을 구미공장에 설치했으며 86년에는 이를 기흥 통신연구소에도 확대, 실시하고 있다.

‘일과 공부’ 병행 따른 어려움도

보험업계로선 처음으로 지난해 4월 경영대학원을 개설한 현대해상화재보험도 차근차근 그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회사다. ‘경영아카데미’라 불리는 이 회사 대학원은 현재 수강생이 60명으로 수학연한은 타회사보다 짧은 1년 코스.올해 첫 졸업생을 내는 현대아카데미는 경영학ㆍ경제학원론ㆍ재무관리론 등 정규경영대학원 과목과 보험회사답게 보험관리론ㆍ위험관리론 등 직원들의 실무에 도움을 주는 과목들을 개설하고 있다. 이 회사의 李洛基 교육부장은 “선진기법을 가진 외국보험사들이 대거 밀려들어오고 있는 등 보험업을 엄청난 경쟁시대를 맞고 있는데 여기서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고급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해당실무에는 밝을 수 있으나 시야가 좁아져 미래의 인재로 키우기 위해선 좀더 깊이있는 대학원 과정 등 교육방법이 절실했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기업에서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곧 미래를 약속하는 담보가 된다. 국제화ㆍ정보화시대에선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동안 기업들은 21세기의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다양한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행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내교육은 실무능력을 높이기 위한 직무ㆍ정신교육이 대부분이었다. 실무에 치중한 교육내용이다 보니 거시적 안목과 이론이 부족, 멀리 내다볼 인재를 기르기에는 다소 미흡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이 대학의 정규코스와 같은 대학원 과정을 회사안에 끌여들이려는 움직임은 한 차원 높은 교육 프로그램 도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연륜이 짧고 기업 자체 부설 대학원이라는 점 때문에 그 한계가 드러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업무와 병행해 난이도가 높은 대학원 과정을 밟다 보니 자칫 부실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배움의 장을 찾는 직장인들에게 이 제도는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일과 공부하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하는 수강생이 많다. 논문을 쓴 수강생이 전체의 30%에도 못미치고 있으며 중도하차하는 사례마저 생겨나고 있다.

 또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을 초빙해 강의를 맡기고는 있지만 연속선상에서 흐름을 쫓아야 하는 학문을 하기에는 여건이 안 맞아 자주 맥이 끊기는 등 시행상의 고충도 나타타고 있다.

 기업 부설 대학원은 다소의 문제점을 안고는 있지만 인력관리 프로그램으로선 대단히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동종업계에서도 자료요청을 하는 등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현대엔지니어링 기획실 禹丞憲차장의 말처럼 기업들의 자체 대학원 개설 바람은 금명간 업계에 널리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 중소기업의 경우 대학원을 세우면 금융ㆍ세제상 혜택을 준다는 것이 정부방침인만큼 중소기업에도 이 바람이 불게 되리라고 점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처럼 기업들이 인재양성을 백년대계로 인식, 기업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움직임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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