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불청객 ‘술 病’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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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건강 시리즈 우리나라 40대 남자의 사망률이 세계 최고라는 데서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직장인들의 경우 직종에 따라 건강에 대한 위협은 다르며 예방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건강한 직장생활의 길을 알아보는 ‘직장인의 건강’을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姜民石씨(37 · 서울 강서구 등촌동)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14년째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78년 큰 야망을 품고 대기업에 입사했고, 입사한 지 석달만에 결혼해 그런대로 행복한 생활을 꾸려왔다. 그러나 두 아들이 커가면서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대기업에서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한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낀 그는 8년 전 용기를 내어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옷을 만들어 국내 백화점에 납품하고 외국에 수출도 하는 의류업체로 그는 이 회사 무역부 차장이다. 강씨의 주업무는 국내외 정보수집과 바이어 상담이다. 상담을 끝내고 자정이 임박해서 귀가하는 때가 종종 있으나 ‘내일을 위해 오늘 휴식은 보류’라는 그의 신념엔 변함이 없다. 그는 지난해 32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미래를 위해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이 이제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강씨는 보통 아침 7시에 잠자리에 일어난다. 입맛이 없지만 억지로 아침밥 한 두 숟갈을 뜨고 직장에 출근한다. 그의 업무는 내근과 외근이 반반씩이다. 1주일 중 5일 정도는 저녁에 바이어와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게 되는데, 저녁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편은 아니어서 간단하게 국수로 때우거나 안주로 대신하기도 한다.

 강씨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재작년 ‘급성위염’을 앓았을 때이다. 바이어 3명과 업무상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지 못하고 병원으로 실려간 것이다. “언제부턴가 위에 간간이 통증을 느꼈지만 곧 가라앉고 해서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날 강씨 일행 4명이 마신 술은 위스키 작은 것(3백40ml) 2병과 맥주 6병. 맥주 3병이 평소 주량인 그로서는 과한 편이었다. 당시 진료를 맡았던 ㅇ병원에서는 ‘위궤양을 동반한 급성위염’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위산억제제와 제산제를 2개월간 처방했다고 한다.

 술로 인한 질병은 강씨처럼 자신도 모르게 찾아와 잠복해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마각’을 드러낸다. 과음은 소화기질환 간질환 당뇨 급성심근증 중풍 등 급·만성 신체질환 외에도 행동장애 정신장애 대인관계이상 등을 유발한다. 이중 직장인들이 가장 걸리기 쉬운 질병은 위와 간에 관한 것이다. 위질환으로는 알콜성위염 위점막출혈 위궤양이 대표작이다. 알콜농도 30% 이상의 독한 술은 위점막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어 알콜성 위염을 일으키며, 폭음하면 위점막에 출형 증상이 나타난다. 위궤양은 스트레스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세대 의대 李鎬□ 교수(정신과)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티솔’이라는 부신피질 호르몬이 분비되어 음식물주입과 관계없이 위액 분비가 촉진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위액이 음식물이 없는 상태에서 위벽의 어떤 부위를 집중적으로 헐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음주는 간에도 치명적 영향을 끼친다. 서울대 의대 金丁龍 박사(내과)는 “간이 나쁜 사람들에게 술은 독약이지만 건강한 사람도 한계량을 초과하면 반드시 간에 이상이 온다”고 충고한다. 성인의 경우 간이 하루에 분해할 수 있는 알콜 최대량은 순수알콜 1백60g. 이 용량이 초과되면 다음날 낮까지 술이 깨지 않고, 이런 상태가 5년 이상 계속되면 지방이 낀 일부 간조직이 지방으로 변하는 지방간이 되고, 나아가서는 알콜성간염을 일으키며, 20년 이상 마시면 ‘간경변현상’이 나타난다.

“가려서 마시는 지혜 필요”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르핀 코카인과 함께 알콜을 의존성 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직장인 중에는 장기손상 이외에 알콜중독증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우리나라 알콜중독자 숫자는 성인남자의 17~22% 수준에 해당된다는 게 일반적 견해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하루에 2홉들이 소주 3병 정도를 1주일에 4일 이상 마시는 사람일 경우 알콜중독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알콜중독은 각 종합병원 정신과에서 치료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서울위생병원 건강교육원안에 지난해 3월 문을 연 ‘금주학교’(전화 245-2685)가 대표적인 기관이다. 금주학교 □□□ 주임교수는 “지금까지 3백여명이 거쳐갔다”면서 “취중의 일이 생각나지 않는 기억상실, 손이 떨리는 수전증 증세가 나타나면 이미 중증의 알콜중독증환자”라고 한다. 수강생들은 증상에 관계없이 4개월 동안 치료를 받는데 상담치료의 경우 ‘의지강화훈련’에 초점을 두며, 운동요법은 술을 마시고 싶을 때마다 물을 마시도록 하거나 운동을 하게 해서 체내의 혈중농도를 떨어뜨리는 데 역점을 둔다.

 직장인에게 술이란 멀리하기 어려운 ‘업무의 동반자’요, 경우에 따라서는 ‘매혹적인 해결사’이기도 하다. 연세대 의대 尹□□ 교수(가정의학)는 인생이 청년 · 장년 · 황혼기로 넘어감에 맞추어 직장인들의 음주습관에도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나이가 들수록 술에 대한 신체의 적응능력도 점차 고갈됩니다. ‘술 권하는 사회’라고는 해도 가려서 마실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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