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3당 통합의 딜레마
  • (본지 칼럼니스트ㆍ고려대교수)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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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혁명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일컫는 정계 대개편은 과연 환영할 만한 일인가? 보수와 중도를 표방하는 거대한 新여당이 파편화된 정치권에 안정세력을 구축시켜 경제와 대외관계, 그리고 통일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위론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주장에 설득력이 있었던지 3당통합의 발표가 있던 날 주식가격마저도 잠시 폭등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신당창설을 합의한 후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선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주역 세 사람을 쳐다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과연 大義를 위하여 小我를 버린 것인가? 저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협력을 계속할 것인가? 과연 거대 여당이 창설되고 성공적으로 운영이 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국가와 국민에게 좋은 일인가? ‘중대결단’, ‘극적인 전환’이 너무도 흔한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3당통합이 또한번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 배경과 과정, 내용과 인적구성을 보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신뢰와 안도감보다는 의문과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대내외의 위기극복을 위하여 3당통합이라는 방법밖에 없었던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라고 국민이 뽑아준 야당의원들을 유권자는 물론 의원 당사자들과의 의논도 별로 없이 하루아침에 여당에 귀속시켜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개인 편의로 만든 당은 같은 이유로 쉽게 갈라질 수 있어  

통합을 굳이 나무랄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눈앞의 당리당략과 지도자 개인의 편의에 의해 합쳐지고 만들어진 당이라는 것은 똑같은 이유로 쉽게 갈라지고 헤쳐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거 여러해 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바로 그러한 개인적 필요에 의해 당을 만들기도 하고 부수기도 하고 헌법마저도 뜯어고치는 사례를 너무나 여러번 경험하였다. 이제 새로 만들어진 거대여당은 예의 헌법개정을 계획하고 있다. 자기들이 주장하고 국민이 지지하여 채택한 지 몇해 안된 헌법을 당장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또 대폭으로 뜯어고친다는 것이다. 내각책임제건 2원집정제건 새로운 제도가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불편하면 언제고 또 바꿀려고 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3당통합은 정치와 헌정질서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과 냉소적 태도를 조장할 뿐더러 통합 장본인들이 표방하는 중도노선을 따르는 국민 중 수많은 비판적 온건민주세력의 依身處를 박탈해버렸다. 이념적으로 민주당이 민정당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27%의 국민이 87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후보를 지지했고 24%의 유권자가 88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던 것은 민주당이 과거에 군사독재정권을 반대하여 투쟁한 것을 높게 사고 앞으로 문민적 민주정치를 위해 매진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민정ㆍ공화당과 결합함으로써 그 지지자들에게 유신과 5공의 후예를 抱擁하거나 여타 정치세력에 移籍하라는 곤란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김영삼 민주당총재의 합당 ‘용단’이 그로서 커다란 도박이요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그것이 통합신당의 3자 협조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수 있는 이유도 된다. 단기적으로는 민주당에게 민정ㆍ공화의 결합을 보조해준 응분의 대가가 있을 것이며 또 민주당 세력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日?을 지연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김영삼씨로서는 합당에 합의함으로써 통합신당 유지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반면 그의 정치적 가치와 자산은 절감되었다.

4당체제만 깨뜨리고 4인체제는 지키겠다는 구상

 3당통합이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 결국은 중도적인 민주 야당세력만 구심점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또 통합은 단기적으로 반체제 세력에게 반정부 투쟁의 명분과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87년의 민주화 이후 한때 극성하다 이제 좀 쇠잔해지는 듯하던 과격집단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귀중한 이슈를 제공해준 것이다. 이것은 또 보수집단에게 탄압과 반작용의 구실이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정국은 좌우로 갈라지고 경직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당에 통합된 김영삼씨 휘하의 민주당 파벌은 탄압에 가담하든지 破婚을 결행하든지의 딜레마에 빠질 것이며 이 경우 그들은 부득이 前者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비극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수구적 이념과 私黨的 조직을 갖는 보수여당이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며 안정된 정치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당사자들이나 논평가들이 이번의 3당통합을 1955년 일본의 보수연합에 의한 자민당 창설에 많이 비유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봉건적 전통을 가진 일본사회에서 35년전에 통했던 것이 현재의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리라고 기대하는 데는 무리가 많다. 우리사회의 연령층 구성, 의식의 향방, 이해관계의 상충에 개의치 않고 구시대에도 통했을지 모르는 파벌정치에 안주하려는 것은 현실과 괴리된 사고방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3당통합은 이렇듯 여러가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우리 무력한 국민은 그나마 요행히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 마당에서 일이 잘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기존의 1盧3金체제에 대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당체제만 깨뜨리고 4인체제는 지키겠다는 구상인 것 같으나, 이미 벽이 무너진 이상 지붕도 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정치권의 지도자 교체를 통한 진정한 정계개편과 정당쇄신의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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