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허무주의 두렵다
  • 김동선 (편집위원)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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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民正ㆍ民主ㆍ共和 3당의 통합발표를 본 이후 혼란스런 머리가 정돈되지 않는다. 3당이 통합하겠다는 선언도 일반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텔레비전 화면의 ‘右泳三 左鍾泌’ 모양새도 충격적이어서 ‘민주ㆍ번영ㆍ통일’이라는 통합명분이 아무리 그럴싸하더라도 혼란스런 머리가 좀체로 정돈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것은 나 혼자만의 증세일까. 〈3당통합신당선언문〉에도 써 있듯이 내 사고가 ‘지난 시대의 고루한 관념과 거기에서 비롯된 낡은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러나 내 자신을 아무리 샅샅이 해부해보아도 나는 그저 억압보다는 자유, 군사통치보다는 문민정치를 신봉하는 평범한 자유민주주의자일 뿐이다. 이런 사고가 지난 시대의 고루한 관념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데, ‘민주ㆍ번영ㆍ통일’을 내세운 3당합당 명분과 그것을 주도한 1盧2金의 정치행위에 대해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혼란스런 이유를 ‘통합’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80년 5ㆍ17 직후에도 정당통폐합이 있었다. 5ㆍ17주도세력은 3김과 그의 핵심측근들을 배제하고 기존 정치세력을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민주국민당이라는 급조 정당 속에 통폐합시켰다. 이 인위적 통폐합 때문에 민정당은 1중대, 민한당은 2중대, 국민당은 3중대라는 별명을 얻었고, ‘들러리 야당들’은 민의에 의해 끝내는 소멸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정당의 통폐합 인상이 좋을리 없는데, 언론통폐합을 상기하면 통폐합 이미지는 더욱 나빠진다. 5ㆍ17주도세력이 영구집권을 도모하기 위해 소위 언론의 ‘저항체질’을 ‘순응체질’로 전환시키려했던 언론통폐합 때문에 언론과 언론인들이 입었던 상처는 얼마나 컸던가! 그리고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90년대로 넘어왔다.

정치에서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지만…

그러나 통폐합이라는 말의 나쁜 인상 때문에 3당통합에 대해 내가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통합은 비록밀실에서, 각 정파의 민주적 의사 결집과정이 무시된 채 이루어졌지만 세 정파 보스들의 자의에 의해 성사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것이 80년대 정치개막과 90년대 정치개막의 차이점인지 모르겠으나 그 과정의 아리송함은 마찬가지다. 이번 통합이 석연치 않게 받아들여지는 첫째 이유는 아무래도 1노2김의 정치경력 때문인 것 같다. 정치세계에 있어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하지만, 인간사에서 가장 큰 악덕 중의 하나인 ‘배신과 굴복’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기 때문에 합당선언으로 여권에 편입된 두 김씨의 정치행위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김영삼씨라면 천하가 공인하는 야당지도자에 5ㆍ17세력의 피해자이다. 80년 5ㆍ17 직후 가택연금 속에서 강압에 의해 정계은퇴 성명을 냈지만, 억압정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23일간 단식투쟁도 했으며, 정치해금 이전부터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그리고 대통령선거 때는 군정종식 논리로 盧泰愚후보를 궁지에 몰았다. 그래서 이 과정을 조금만이라도 떠올린다면 김영삼씨가 선거에 의하지 않고 자의로 여권에 편입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합당발표 직후 鄭成太, 李哲承, 李敏雨씨 등 원로 야권인사들이 모여 “김영삼총재가 그동안 많은 야당인사들을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사쿠라로 몰아 성처를 입히더니 끝내는 뿌리째 뽑아가버렸다”라고 김영삼씨를 비난한 것은 범야권의 공통된 시각일 수 있으며, 이 시각이 국민 일반에 확산된다면 30년 야당을 지켜온 그의 도덕성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그의 합당행위는 여론으로부터 ‘배신과 굴복’이라는 화살을 맞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색깔론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통합의 산파역을 한 김종필씨의 언행불일치를 살펴보면 정치인 모두를 불신케 만들 정도이다.

2년전에는 ‘항복론’. 최근에는 해괴한 ‘색깔론’

 그는 80년에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까지 몰수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6ㆍ29전까지는 김영삼씨가 민주화투쟁을 같이 하자고 권유했어도 은둔생활로만 일관하다가 대통령선거 때에야 거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옛 공화당 세력을 규합,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이렇게 외쳐댔다. “이 무도한 세력들은 자신들의 정통성 결여를 호도하기 위해 김종필을 뭇매 때리고 김대중씨를 잡아가는 등 온갖 짓을 다 했으며 국민의 입을 막아 지난 7년 동안 버텨왔습니다!” 그라고 노후보가 선거 초반에 6ㆍ29는 국민들에 대한 항복이라고 말하자, 그는 그것을 되받아 “만일 노태우후보를 찍어준다면 국민이 항복받은 자에게 오히려 무릎 꿇고 항복하는 꼴”이라며 유권자들에게 “5ㆍ17세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몰아내자!”고 호소했다. 노후보에게 ‘색깔론’이 아닌 ‘항복론’으로 후보사퇴를 요구하던 그가 2년 세월이 지나자 어느새 ‘좌종필’로 변신했다. 이것은 유권자들에 대한 명확한 기만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정치는 ‘말뚝만 박으면’ 언제나 현실로 인정된다. 그래서 승리자 노대통령옆에 서 있는 ‘우영삼 좌종필’ 모양새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므로 통합신당이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고 ‘민주ㆍ번영ㆍ통일’에 근접해가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통합발표 직후의 한 여론조사 결과 1노3김 모두가 싫다는 사람들이 33.4%로 나타난 이 정치적 허무주의가 향후 우리 정치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정치학 교과서에도 써 있듯이 정치에서의 ‘타협’은 공정하게 보여야 하며, 그 성공 여부는 正義가 중요한 잣대라는 점을 통합주도자들은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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