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진주 ‘괌’
  • 괌·김춘옥 국제부장 ()
  • 승인 199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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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보다는 번영을”


전략 가치 커지고 ‘민족운동’은 외면당해


 ‘차모로 네이션’. 2차대전 때 일본군이 이곳을 공격해 이틀 만에 섬 전체를 점령했다는 아가냐만의 지사 사무실 앞 공터에는 10여개의 텐트와 괌국기와 ‘차모로인은 왜 집이 없는가?“라는 플랜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차모로인 20여명이 기자를 보자 텐트에서 기어나왔다. ”미국정부의 식민주의와 괌정부의 압제에 대항해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5천명의 서명을 받을 예정이다.“

 시위를 조직한 ‘차모로 네이션’ 조직의 지도자이자 대변인인 엔젤 산토스(33)가 설명한 내용은 이렇다.

 1975년 괌의 제12대 의회는 공법 12-266을 통과시켰다. 미연방정부가 괌정부에 이전한 땅의 용도에 관한 법안이다(괌은 3분의1은 미군기지가, 3분의 1은 괌정부가, 나머지 3분의 1은 민간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이 괌을 점령한 1898년 이전에 괌에 살았던 주민의 혈동을 4분의 1 이상 받은 18세 이상의 주민은 농업용지는 20에이커 미만, 목초지는 50에이커 미만, 주거용지는 1에이커 미만을 99년 동안 1년에 1달러씩에 임대할 수 있다. 이 토지법안은 하와이와 알래스카에서 원주민을 위해 마련한 법안을 본딴 것이므로 연방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원주민에 조상의 땅을 1달러에 임대하라”

  또한 미군은 필리핀에서처럼 기지 사용료를 연 5억달러씩 내야 하며 경제전용수역 관리권을 괌 정부에 돌려주어 어업권 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91년 10월1일부터 실시된 미연방의 이민개혁법은 다수의 필리핀이 괌으로 이주하기 쉽도록 되어있다. “이민을 통제해 달라.” “차모로인은 95년에 소수 민족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괌 고등법원의 크르즈 판사는 차모로인인 아다지사에게 토지 문제에 대해 ‘의무적’으로 답변할 것을 통고했다. “미의회가 괌정부에 이전한 모든 땅의 혜택은 차모로인만이 아닌 섬 전체 주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라는 것이 지사의 답이었다.

 이 사실을 언론은 아주 작게 보도했다. 일간 <트리뷴>지에는 1주일 후 4면 한 귀퉁이에 게재됐다. 올림픽의 수영 영웅 마크 스피츠의 괌 방문을 매일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이곳의 두군데 유선 텔레비전 뉴스에서 산토스 일행의 고독한 투쟁에 관한 보도는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마젤란이 괌을 발견한 지 34년 후인 1565년, 괌은 태평양지역에서 처음으로 유럽 국가(스페인)에 종속된다. 마젤란은 차모로인을 “동양인과 미국 인디언의 중간 정도 피부색깔에 남자는 크고 건장하고 여자는 순종적이고 온순했다”고 묘사했는데 당시는 그 인구가 10만여명이었다. 그러나 1671년부터 30여년간 계속된 ‘대 스페인 항전’으로 3천3백59명만이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그후 이들은 스페인인, 필리핀인, 아시아인과 혼합되었다. 따라서 차모로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곳에서는 가장 설득력이 있다. 조금이라도 차모로 피가 섞이면 “나도 차모로”라고 하지만 그 숫자를 합쳐도 전체 인구의 과반수를 못 넘는다. 21명의 민선 의원이 산토스가 요구하는 이 법안을 집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파란 하늘, 하얀 산호모래, 끝없이 뻗은 맑고 깨끗한 바다. ‘태평양의 진주’ 괌의 자원은 이것 말고는 없다. 쌀 고기 과일에서부터 휘발유까지 수입하지 않으면 조상이 그랬듯이 섬 곳곳에 널려있는 빵나무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전이나 부쳐먹고 살 수밖에 없다. 미군 주둔은 이들이 지난 30여년간 연 2%식 꾸준히 경제성장을 하는데 큰 구실을 한 괌 경제의 원동력이었다. 미국연방정부의 지원금 1억달러도 미군이 주둔하기 때문이라고 대부분 믿고 있다.

 

 미군 주둔, 지역 경제의 원동력

  미국의 세계전략을 실천하는 앤더슨 공군기지에서는 괌의 '수천년된 전설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기지 안에 있는, 영화 '남태평양'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타라그 해변이나 기이하기 짝이 없는 석회석 동굴도 제복의 위력에 눌려있다. 아기자기한 산길, 험난한 정글, 야자나무와 라데(차모로인의 집 주춧돌)와 차모로인의 미소는 분명 이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이 통치하던 괌과 필리핀을 식민지화했다. 2차대전 때 일본에 의해 군사전략기지로 사용됐던 이 두 지역을 미국은 피나는 전투 끝에 3년 만인 1944년 재탈환했다. 1521년 마젤란이 태평양을 횡단해 괌을 발견하고 나서 필리핀을 발견한 것과 같은 순서로.

 그후 50년. 필리핀이 대등한 입장에서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동안 앤더슨 공군기지는 클라크 기지에서 철수한 VRC-50, C-130, S-2, S-3 같은 항공기와 공군 5백여명을 맞아들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37개국, 20억 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반이상 지역을 관할하는 미태평양 사령부, 그주축인 태평양공군 소속 제633 공군 비행단은 앤더슨 기지의 주력부대이다. 홍보실장 로널드 랜드 중령은 괌의 전략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미국의 태평양 국가와의 무역량이 3천억달러나 되므로 이 지역에서의 지위와 역할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곳은 미국 서해안에서 인도양까지 연료소송의 중간 기착지이다. 또 한국과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점차 감소될 것이므로 괌이 당연히 그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이다.”

 괌 주민들은 걸프전 때 앤더슨기지에서 섬중간에 위치한 아프라항까지 이어지는 트럭의 행렬을 매일 보았다고 한다. 탄약 3만2천t과 화물 6백만t이 이곳에서 수송됐다. 항공기 4백대도 이곳에서 발전했다.

 한국전 때는 B-29가 발진했고 월남전 때는 B-52가 발진했던 공군기지는 이제 B-1관 B-2 폭격기의 급유를 준비하고 있다. 연장 25km나 되는 활주로 사이사이에는 ‘우리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기지의 슬로건에 걸맞게 화물기 C-141이 숨죽인 채 엎드려 있다. 또 한편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8천8백만 갤론의 제트연료를 저장한 탱크들이 세계 최대규모인 5천만달러어치의 탄약 창고와 함께 줄지어 서있다.

 괌의 미군은 ‘억지력’이 아닌 지원 역할을 하고 있다. 앤더슨 기지 내의 공군은 작년말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이동한 5백명을 포함해 2천8백여명. 총 1만6백99명(91년 9얼 현재)의 미군이 미국땅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괌에 주둔하고 있다. 가족까지 합하면 2만7천6백14명, 내년말까지 수빅만에서 철수하는 해군 병력의 일부가 이곳으로 오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이들을 위한 예산도 엄청나다. 91회계연도 (90년 10월~91년 9월)만 해도 “5억달러가 넘었다”고 설명하던 랜드 중령은 이 예산 중 “대부분이 괌 경제로 흘러간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제는 관광산업 수입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92년에는 1백만명의 관광객이 10억달러를 괌에 쏟아놓을 것”이라고 괌 경제발전청의 찰스 크리소스토모 청장은 기대한다. 금년초 3개월간 일본인은 23만명이 다녀갔다. 한국인도 7천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 2년간 경제성장률은 6%, 91년 실업률은 1%정도이나 이는 통계 숫자일 뿐이다. 어느 곳에서나 손이 달리는 형편이다.

 

미국의 영토 중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

 게다가 정부는 차모로인 우대정책을 펴고 있다. 다른 부문보다 급료가 높은 공무원을 선발할 때 차모로인은 우선 채용된다. 모든 공무원은 급수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퇴직 후 20년동안 재직한 때와 같은 월급을 받는다.

 주로 투몬만에 건설된 20여개의 고급 호텔(전체 중·고급 호텔 수는 60개이다._연회장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차모로인들의 파티로 매일 성황을 이룬다.

 행정역사가 짧아 주민과 정치집단과 경제집단 간의 의견조정이 잘 안되는 것도 차모로 국가를 건설하자는 사람들에게는 불만이다. “차모로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식인은 모두 섬을 떠난다”고 지프관광회사를 운영하는 미국인 마이클 마자카모씨(31)는 지적한다. 괌대학에는 세계 65개국의 학생을 포함하여 1천3백15명이 재학하고 있다. 괌 인구의 4분의 1인 3만여명이 학생이다. 그러나 의사와 변호사는 항상 부족하다. 대학교수요원은 미본토나 하와이에서 채용한다.

 요컨대 현재 살고 있는 주민 대다수는 괌의 현상황에 큰 불만이 없다. 오랜 식민통치는 유순했던 원주민을 더욱 순화시켰다.

 “우리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에 괌에서 테러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산토스는 경고하지만 그들의 요구사항이 쉽게 관철되지 않을 것 같다.

 미국방부가 91년 3월 펴낸 <91년도 합동군사력 총평가>란 보고서를 보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소연방 견제’에서 탈피해 ‘지역분쟁의 억지와 대응’으로 미국의 군사전략은 바뀌었다. 특히 과거 대량 전력을 상시 주둔시키는 전방전개전략을 긴급전개전략으로 바꾸어나가고 있다. “소연방 붕괴 이후 괌의 전략적 가치가 더 커졌고 앞으로도 더 커질것이다.”라는 랜드 중령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괌이 없었다면 미국이 클라크와 수빅만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곳 주민들은 말한다. 그만큼 괌의 위치는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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