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구제장치 시급하다
  • 이영자(성심여대 교수·사회학)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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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리 이전 인권보호 차원의 형사법 개정 관건

 성폭력의 근원적 대책의 수립은 세가지 차원에서 모색돼야 한다. 우선 법이 본래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에 관련된 현행법이 개정되고 형사 사법체계가 개선돼야 한다.

 강간에 대한 범적 처벌은 성윤리에 앞서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는 규정이 전제돼야만 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 강간을 성기 삽입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협의의 범해석은 시정해야 하며,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 “법적으로 자기 아내가 아닌 여자”로 강간죄의 대상을 제한하고 있는 것을 아내 및 소위 윤락여성을 포함한 모두가 법적 보호대상이 될 수 있는 규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현재 강간은 친고죄로 되어 있어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더욱 숨기고, 강간범은 이를 역이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를 시정하는 방법으로 비공개재판의 원칙을 도입하거나 피해자 대신 제3자가 고소권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성폭행 해석에 있어서 현행법은 가해자의 위계 및 위력사용 등 가해자의 행위 자체보다도 피해자의 필사적인 저항에 초점을 맞추는 규정을 두어, 피해자를 마지 범죄의 원인제공자로 취급하는 것 같은 불합리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여성 억압의 법규정이 개정돼야만,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주입하는 풍토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정형을 높이는 문제와 아울러 간음죄에 자격정지형을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공식 교육기관 통한 성교육 없다
 한편 성폭력사건을 취급하는 형사사법 실무자들의 태도와 의식의 개선도 시급하다. 경찰과 검찰이 성폭력 범죄에 대처하는 적극성은 여성단체·언론·종교단체·재야단체보다도 뒤떨어지고 있음이 최근의 한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바 있다. 신속한 검거 조처를 소홀히 한다든가, 사건을 끈질기게 규명하는 대신 합의를 종용하거나 불기소처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는 조사 및 재판과정에서 인권을 존중받지 못한 채 이중 삼중의 심적·물적 피해를 받기 때문에,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처럼 좌절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도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이 폐기되도록 실제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의 하나인 여성경 찰과 여성검사제도의 도입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피해자를 위한 다각도의 사회제도적 보호장치가 절대 필요하다. 피해사실을 밝히고 상담할 수 있는 신고센터, 피난소 및 상담소,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위한 전문의료기관의 설치가 시급하다.

 정부·지방의회·사회단체 간의 지원 및 협조체제에 의해, 예컨대 미국의 강간구조센터와 같이 피해자를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보호하고 각종 서비스(정보제공 및 사법처리협조 등 포함)를 제공하며 동시에 성폭력 방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회기관을 설립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좀더 근본적인 예방의 차원에서 체계적인 성교육을 실시하고 왜곡된 성문화를 지양하는 사회문화운동이 전개돼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성교육은 가정과 학교 및 공식적인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종 대중매체(비디오 포르노 외설잡지 만화 등)에 의해 극히 위험하고 유해한 성학습이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 세대에서 성폭력 현상이 늘어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공해에 청소년이 오염되는 환경과 유관하다.

 성교육은 이중적 성윤리와 성규범의 모순을 근절시키는 것에 1차적 목적을 둬야 한다. 여자의 정숙성은 절대 중요하나 남자는 반대로 성본능이 강하여 자제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 딸의 행동거지와 외출은 조심시키면서 아들의 행동의 자유와 이성교제는 염려하지 않거나 방치하는 이율배반적인 가정교육 등은 결국 여성과 남성을 각기 성폭력의 잠재적인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드는 것이므로 이를 지양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특히 여성은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책임감 및 자기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성산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돼야 한다. 성산업은 외국의 그릇된 성개방 풍조를 무분별 하게 도입,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상품화하는 풍조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성문화를 파급시킨다. 성적 자극을 미끼로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각종 성산업을 방치하는 것은 바로 성폭력의 온상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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