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직한 여론과 허황된 여론
  • 신중식 조사분석실장 ()
  • 승인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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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기적의 해’로 기록될 것인가? 작년 한해 동안,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거대한 地慤變動이 일어났다. 지난 2세기의 유럽 역사를 통해서 제1, 2차세계대전, 그리고 1848년 이후 일어났던 일련의 혁명에 버금가는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동서를 갈라놓았던 철책과 장벽이 일시에 무너져내린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서구의 한 역사학자는 1989년을 ‘아누스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 즉 ‘기적의 해’라 불렀다.

  해가 바뀐 지 불과 2개월, 이번에는 공산종주국의 심장부에서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또 하나의 대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월 7일, 모스크바의 유서깊은 크렘린□에서 급진개혁파 옐친 한사람을 제외한 중앙위원 2백89명의 찬성으로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위한 새 강령안이 마련된 것이다. 이로써 73년 동안 지속된 공산당의 1당지배가 무너지고 다당제마저 도입될 국면에 이르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인간화혁명’에 관한 새 강령이 찬반투표에 부쳐지기 직전 중앙위의 레오니드 도브로크호토프 대변인은 미국 NBC 의 브라이언 검블과의 위성중계 인터뷰를 통해 “2천만 당원뿐만 아니라 비당원, 각계각층의 소련인민들에 대한 사전 여론조사를 실시한바, 절대다수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안에 찬동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공산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여론조사는 주요정책 입안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소련에서의 공개적인 여론조사는 89년 3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소련 과학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모스크바 시민 1천5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가 사실상 최초였다.

  다당제 도입에 대해 당시 여론조사 결과는 공산당원의 36%가 그 가능성과 필요성을, 비당원인 시민 40%가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점만 보더라도 이번 중앙위에서의 혁명적인 개혁조치는 벌써부터 예견된 사태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프랑스 및 일본에 있어, 역대 대통령 및 총리 선거와 의회선거의 결과에 대한 여론조사의 적중률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미국의 경우 2억4천만명 인구 가운데 적게는 5백여명, 많을 때는 1천8백명 안팎의 유권자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 거의 오차없이 결과를 예측해 주고 있는 것이다.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88년 부시의 당선예측에 이르기까지 여론조사는 실제 투표결과에 대비 평균 1.6%에서 2.6% 정도의 오차만 보였다.

  프랑스에서도 정치여론조사는 치밀하고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Dlt다. 1969년 대통령선거에서 퐁피두가 당선될 때는, 여론조사에서 58%, 실제 개표결과 57.6%로써 단지 0.4%의 오차가 생겼을 뿐이었다. 사회당 미테랑대통령의 소위 ‘코아비타숑’도 당시 프랑스의 유수 여론조사기관에서의 결과가 우파와의 聯政을 가능케 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에 있어서는 지난 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인 정치여론조사가 월 단위로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어 유권자들의 흐름, 다시 말해 민심의 소재가 정확히 파악되고 있다.

  거대보수여당에 몸을 의탁한 金泳三씨는 무슨 근거에서인지 국민의 80% 이상이 3당통합을 지지한다고 수차 말하 바 있다. 또 그는 40여년 정통야당의 맥을 이어온 민주당 간판을 내린 후 기자회견을 통해 민자당에 대한지지 역시 80%가 넘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金大中씨와 평민당은 국민의 80%가 3당통합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요, 국민주권에 대한 모독행위로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국민들의 최종적인 심판은 국민투표와 선거를 통해 판가름나기 때문에 올 상반기에 실시될 지자제선거와 92년의 국회의원선거, 93년 대통령선거과정에서 국민들의 엄정한 평결이 내려질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지축을 뒤흔들며 이곳 한반도에 전해온 ‘고르비의 경천동지’는 전세계가 환희와 갈채 속에서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가 하면 ‘1노2김의 震天動地’는 경제에 파고를 높이고 정치에 대결을 초래하고 있어 그 전도가 밝지만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인듯하다. 震天이 順天되고 動地가 整地될 수 있을지 민자당의 앞날을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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