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세대 방송 혁명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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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CA-TV, HD-TV, DBS) 90년대에 실용화된다

90년대 우리방송은 라디오, 흑백텔레비전, 컬러텔레비전에 이은 4번째 혁명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생활화되어 있는 유선텔레비전(CA-TV)이 우리나라에서도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이고, ‘인체의 땀구멍까지도 보인다’는 고품위텔레비전(HD-TV)도 94년까지 개발된다고 한다. 화상전화기, 비디오 텍스, 팩시밀리 방송, 텔리텍스, 화상회의용 기업 CA-TV 등의 뉴미디어와 함께 21세기 정보화 산업사회를 열게 될 방송뉴미디어의 출현과 그에 따른 90년대 방송환경의 변화를 짚어본다.

 HD-TV와 CA-TV 그리고 위성방송 등 방송 뉴미디어의 등장은 컴퓨터(통신)와 접목되면서 인간의 생활을 ‘혁명적’으로 뒤바꿀 것으로 보인다. 테크노피아, 휴먼테크, 텔토피아 등으로 표현되는 정보화시대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21세기 방송뉴미디어 시대를 ‘가상시나리오’형식으로 엮어본다.

실물크기의 고선명 화면

회의 시스템으로 아침회의를 마치려는 순간 김씨는 본사 당직으로 출근해 있던 박국장에게서 싫은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在宅 근무지만 회의 때는 정장을 입어야지, 미스터 김 안그래요?” 간밤에 과음을 한탓에 겨우 아침회의 시간에 맞춰 단말기의 키보드를 두드려 카메라앞에 섰던 것이다. 그때서야 김씨는 자신의 옷차림이 무성의했음을 깨달았다.  “출퇴근하던 시절이 좋았지”라고 중얼거리며 김씨는 거실로 나왔다.

 “아니 집안에 웬 짐승들이지?”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는 김씨는 깜짝 놀랐다. 고개를 몇 번 흔들고나서 다시 바라보려는데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던 네살박이 아들이 “아빠, 아프리카 동물들이야”라며 돌아보았다. 며칠전에 거실 한 벽을 모두 텔레비전 화면으로 개조한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실물크기의 화면인데다 화질이 선명해서 간혹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빠가 뉴스를 잠깐 봐야 하는데”라고 말문을 열자마자 아들녀석은 쪼르르 엄마 방으로  달려간다. 화상전화기로 유치원친구들을 불러낼 모양이다. 케이블 선택채널을 돌려 헝가리의 날씨부터 알아보았다.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수출 관계로 요즘은 온통 헝가리 관련 정보에만 신경이 쓰인다. “서울하고 비슷한 날씨군.” 헝가리 국내뉴스 전용회선을 선택했다. 김씨는 그 화면을 자신이 컴퓨터에 입력했다. 폴란드 거래처의 무역과장은 그곳 날씨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무척 기분 좋아했다. 그의 아내가 그곳 기상방송국 직원이라는 사실을 김씨는 최근에야 알았던 것이다.

전문화 · 다양화되는 채널

 “1998년형 중고 자동차를 팝니다.” 오는 주말, 개마고원으로 야외스케치 촬영을 다녀와야 하는 ㅇ대학 영화과 학생 박군은 이번 기호에 싸구려 중고차를 한대 살까 궁리중이다.  21번 채널만 열어놓으면 인구 10만밖에 안되는 이 도시의 잡다한 소식들이 수시로 흘러나온다. 애완견 분양, 1백년전 구식 타이프라이터 구함, 난초회원 모집, 新環境黨 충남지부 당원모집 등 다양하다.

 박군은 한번 시속 1백㎞로 천천히 국토를 종단해보기로 결심하고 단말기를 두드렸다. 중고자동차를 내놓은 주인의 연락처가 나왔다. 박군이 다이얼을 누르자 화상전화기에는 할머니가 나타났다. 마침 할머니는 자신의 어머니 고향이 함경북도라면서 스케치여행에는 적당한 차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자동차 사진과 함께 각종 성능검사 자료를 선뜻 비디오텍스로 전송해주었다. 할머니의 은행컴퓨터 구좌번호와 함께. 카메라장비를 손질하고 있는데 같은 과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20세기 영화축제를 같이 보러가자는  것이었다. 박군은 “미안해. 난 개마고원에 가야 해. 영화는 천상 스케치여행 다녀온 뒤 케이블 텔레비전으로 봐야겠는걸” 하면서 아쉬워했다.


숨을 곳이 없어졌다.

 미혼여성인 정양은 며칠동안 텔리텍스의 전원을 뽑아놓고 있었다.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수북이 쌓일 각종 홍보물, 광고물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견디기 어려워 하는 것은 각종 홍보물이 아니었다. 혼자 지내는 것이 외로워 친구들 얼굴이나 자주 보자고 설치한  화상전화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10여년전 행정전산망이 완비된 이후 누구도  ‘숨을 수가’ 없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미혼여성보다 미혼남성이 훨씬 많아서 정양처럼 혼자 사는 여성들은 남성들의 청혼쇄도에 정신이 얼얼해질 지경이었다.

 “7개월전에 만나셨던 남성과 비슷한 스타일의 남성을 소개할까 합니다.” 정양은 친구의  권유에 못이겨 컴퓨터 결혼상담소에 자료를 넣었었다. 남자의 이모저모를 담은 자료는 5백항목이 넘었다. 하지만 화면을 보고, 소개하는 글을 읽는 일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화상전화기에 사전확인장치를 달기전에는 한밤중에도 불쑥 남자들이 얼굴을 내밀곤 했다. 개중에는 성범죄에 가까운 장면도 있었다. 결혼상담소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저희 은행과 거래가 없으신데 불편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라는 은행의 연락, “독신자용 오피스텔이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을 실시합니다”라는 건축회사의 광고???. 그녀가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받은 전문은 수십통에 이르렀다.


통신위성 덕분에 광고전략 성공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면서 스포츠용품 제조회사에 근무하는 허부장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스키용품을 사용한 우리나라 선수가 활강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었다. 허부장은 크로스컨트리 경기중계를 보기 위해 채널을 바꾸었다. 한 경기를 한 채널이 도맡아 중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승점에 설치한 자사 광고물이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고 있었다. 어제 확인했을 땐 골인하는 선수의 바로 뒤에 있어서 골인장면마다 허부장 회사의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경쟁사 광고가 더  잘보이는 것이었다.

 허부장은 노르웨이 현지에 출장가 있는 김대리를 불렀다. 잠시후 김대리가 화면에 나타났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기서 경기장 장면이 채널 28로 수신되는데 우리 광고물이 안보여!” “그래요? 곧 조치하지요. 카메라 위치가 어제와 바뀐 것 같군요.” 김대리의 말이  있은 지 5분뒤에 광고물이 화면의 중앙에 보였다. 허부장은 이번 광고전략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다름아닌 2년전에 우리나라가 쏘아올린 통신위성 3호기라고 중얼거렸다.


“컴퓨터 화형식후 분신기도”

 2040년 한 전자신문과 케이블 뉴스가 공동으로 기획한 ‘뉴미디어시대 증후군’ 시리즈는 10대들의 의식구조와 특징적 언행들을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뉴미디어 세대들은 대개 극도의 개인화에 따르는 노이로제와 만성적인 우울증으로 특징지워진다. 알콜과 약물중독자들도 바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으로 ‘반정보화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청년모임’이 신녹색당과 연계되어 급진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미국의 케이블 뉴스는 전한다. 이들 급진적인 학생들은 컴퓨터바이러스를 새로 개발, 전산망을 마비시키는가 하면 유목민캠프를 중앙아시아지역에  열어 전세계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원시생활을 고집하면서 원시공동체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를 거부하는 대학생, 서울데이타 뱅크앞에서 HD-TV 및 컴퓨터 화형식을 가진  후 분신기도”라는 저녁 7시 뉴스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람들은 바로 며칠전 개인용컴퓨터를 국가전산망에 연결시켜 전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컴퓨터 편집광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그 편집광은 국가전산망을 조작, 강도 9의 대지진이 서울 반경 50㎞에서 일어난다는 A급경보를 전국에 울리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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