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內政혼란’함께 앓는 미국
  • 안재훈 (객원편집위원· 워싱턴)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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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 사이의 미 · 소 외무장관회담은 소련의 요청으로 일정이 하루 연기되었다가 다시 베이커 장관의 요청으로 한번 더 연기된 끝에 2월8일 열리게 되었다.

 사소한 일정변경이 미국신문에 반복 보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소련 국내정치 사정의 심각한 혼란상과 그것에 대해 미국이 보이는 예민성 때문이다. 이번 셰바르드나제-베이커 회담은 오는 6월 워싱턴에서 개최될 부시-고르바초프 사이의 양국 정상회담 예비작업의 일환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당초의 안건은 핵무기 및 재래식 병력 감축, 동유럽 및 인접국가들의 분쟁, 경제협력 가능성 등 크게 세가지였으나 급변하는 소련의 국내사정이 많은 안건을 덧붙이게 만들었다. 아제르바이잔 유혈사태는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소련의 최대위기로서 사전에 생각 못했던 의제이다.

 이번 회담은 장거리 핵미사일의 감축이 주요안건이며 성과가 좋으면 장거리 폭격기, 핵잠수함, 미사일 등을 30~50%까지 줄이기로 합의할 수 있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에서 “소련내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사태, 발트해 국가들의 독립운동은 국내문제”라고 말함으로써 소련의 민족문제에 대해 조심스러운 미국의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몰타회담에서 소련측은 자국내의 공화국들이 내전으로 시끄러울 것을 예측, 무력진압의 경우 미국의 이해를 사전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제르바이잔 분쟁에 대한 무력진압은 국방장관 드미트리야조프가 직접 진두에 나섰었다. 이와 같은 소련의 내전과 경제침체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생존여부는 서방세계뿐 아니라 소련국민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급격한 상황에서 미국은 소련과의 협조관계로 비교적 여유있는 외교정책을 세울 호기를 맞았다고 보는 측도 있다. 부시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최종 성공여부는 아직 모른다고 분명히 밝히지만 “고르바초프의 생존뿐 아니라 그의 위치가 강해지는 것을 희망한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은 우리(미국)의 이익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게끔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88년말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럽으로부터의 소련군 50만명의 일방적 감축, 5천3백대의 탱크 및 전투기 3백대 철수를 발표했었다. 미국 국회의원단이 소련을 방문한 후 그 약속이 이미 절반쯤 완료되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소련은 한걸음 더 나아가 5년내로 유럽대륙에서 외국군을 완전철수하자고 제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유럽 몇나라에서는 1~2년내로 일방적 철군을 단행하겠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이것은 소련 경제사정의 악화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파산직전이라는 여러 보도를 감안하면 짐작이 가는 제의들이다.

 고르바초프를 소방수로 비유한 풍자만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향후 몇년간 국방비를 줄여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려는 그의 노력에 미국이 어느 선까지 적극 지원할 것인가는 오늘날 미국 지식인사회에서 활기찬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미 · 소 외무장관회담에서 소련과 서방의 경제협력 범위가 어느 정도 논의될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은 이미 동유럽에 대해 컴퓨터를 비롯, 기술전수를 허락한다는 무역규정을 발표했다. 오는 6월의 미 · 소 정상회담과 관련, 최근 체코의 바클라브 하벨 대통령은 프라하에서 회담할 것을 제의했으나 부시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2월중순 하벨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동 · 서협력문제는 선전용 사진촬영이 아닌 실속있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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