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재편 ‘逆風’ 新黨 움직임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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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잔류파 · 무소속의원 등 추진모임 만들고 세력규합 부산

여권의 통합신당 태동이라는 정계재편의 개막에 이어 신생야당 결성 움직임이 가시권안에 들어옴으로써 정계재편의 제2막인 ‘야당편’의 막이 올랐다. 거대여당을 탄생시킨 제1막이 일종의 ‘깜짝쇼’였다면, 야권의 제2막은 ‘생존극’이랄 수가 있다. 정치적 생존과 명분,  눈치보기와 소신 등 다양한 갈등요소가 서로 얽혀있는 데다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가 맞물려 있어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신생야당이 의외로 큰 힘을 규합해 정가에 ‘逆風’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통합신당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야당에 남겠다고 선언한 이른바 민주당 잔류파들과 무소속의 전  · 현직 야권통합파 의원들은 잔류파니 통합파니 하는 꼬리표를 떼고 지난 2월2일 ‘新야당추진모임’이라는 깃발을 꽂았다. 민주당내 야권통합파의 돌격대였던 金正吉 · 盧武鉉의원이 3당통합 발표 이틀후인 지난 1월24일 통합불참 선언으로 첫신호탄을 올렸고, 연이어 원내외의 중진 · 소장파들이 가세하고 나섬으로써 힘을 축적해나가다가 2월2일 張石和의원의 동참을 기점으로 추진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추진모임에 가담해 있는 사람은 미주당의 李基澤 · 金相賢 · 金鉉圭부총재와 金正吉 ·  盧武鉉 · 金光一 · 張石和의원, 무소속의 朴燦鍾 · 李哲의원, 張基旭 · 洪思德 · 趙舜衡전의원  등 이른바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후보단일화 서명파, 그리고 20명선의 민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다. 이외에 이미 추진모임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굳혔거나 참가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은 金在光 · 辛相佑 · 文峻植 · 崔二鎬의원 등인데 결심을 한 사람보다는 ‘고민중’인 사람이 많아 본인들의 확고한 의견 표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잔류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崔炯佑 · 朴鍾律 · 金東周 · 柳昇珪 · 鄭貞薰 · 金?桓의원 등은 김영삼총재 노선을 따르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중진급인 黃珞周 · 朴容萬의원과 鄭在文 · 申榮國의원 등도 참가하는 쪽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으나 확고한 태도표명이 없이 엉거주춤한 상태다. 그러나 원내의 李基澤부총재와 원외의 金相賢 · 金鉉圭부총재 등 거물중진급들이 잔류의사를 공식선언하고 전면에 나선 이후, 대세를 관망한 채 뒷짐만 지고 있던 소장파들이 뒤를 따르고 있고, 중진급끼리의 회동도 잦아지는 등 분주한 막후의 움직임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 낙관

 추진모임측은 민주당 잔류파와 무소속 2명외에 범야권통합에 동조하는 평민당의 일부세력이 가세하면 현역이원이 20명선을 돌파, 어렵지 않게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잔류파가 계속 늘어나 세력 결집이 이루어지고, 가칭 민주자유당이 지구당 개편작업이 끝나는 2월말쯤 지구당 위원장 인선 등에 불만을 품은 인사들이 통합신당 참여를 거부하고 뛰쳐나올 경우 대세는 신생야당으로 기울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관측도 있다.

 태도표명 시기 문제로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잔류파 규합에 기폭제 역할을 한 李基澤의원은 신생야당 결성 가능성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결과가 보이지 않느냐”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盧武鉉의원은 “평민당 야권통합파 의원이 얼마나 가세할 것인지가 관건인데, 한두명선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신생야당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를 걸고 있다. 심지어 추진모임측의 한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결국 민주당 현역의원 중 金泳三총재의 측근 20명선만 김총재를 따라가고 나머지 의원은 남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고 있고,  민주당 잔류파인 한 원외지구당 위원장은 “민주당 전체 당원의 75% 가량이 야당을 택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추진모임측의 이런 기대가 액면 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3당통합 발표 이후 추진모임이 발족되기까지 기존의 야권통합파들 대부분이 통합신당 참여냐 야당 잔류냐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거나 아직도 갈피를 못잡고 있으며, 특히  재야출신이나 골수 야당인사 등 평소 野性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사들까지도 개인의  정치적 입지나 이해타산에 따라 아직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하지 못한 실정이다. 민주자유당 참여냐, 잔류냐 하는 선택의 길목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겪고 있는 ‘고민’의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월1일 기자회견을 통해 잔류의사를 밝힌 金光一의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국회 진출전 부산지역 재야권의 代父격이었다는 점에서 野性에 관한 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김의원은 김영삼총재의 노선변경 직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변에서 잔류파로 분류되었었다. 그러나 김의원이 김총재와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즉각적인 태도표명을 하지 않자 지역구의 여론과 자신이 속해 있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주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거세졌고, 마침내 長考끝에 야당 잔류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격적인 통합신당 가동을 앞두고 김영삼총재는 집안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통합신당 지도부의 입장에서도 민주당내 이탈자가 속출할 경우 자칫하다가는 개헌선을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빗장을 단단히 걸어잠글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여권내에서 통합신당 이탈세력들에 대해 강력한 정치적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어 앞으로 잔류파가 얼마나 더 나와 신생야당에 힘을 보탤지 주목된다.

平民 김총재와의 관계설정이 ‘최대변수’

 신생야당 탄생의 최대변수는 유일야당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평민당 金大中총재와의 관계설정이다. 추진모임측 내부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뚜렷한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 원내의석 70석을 확보하고 있는 평민당의 기득권을 인정해 평민당 중심의 새로운당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김총재의 2선후퇴를 전제로 3당통합거부 인사들이 추진하는 신당과 평민당간의 黨對黨 통합형식을 갖출 것인지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신생야당 참여인사들의 대부분은 김대중총재의 2선후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대중 · 김영삼 양김씨 이후의 야권 지도자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李基澤부총재는 야당복귀 선언을 하면서 김대중총재와의 연대 거부의사를 밝혔다. 李哲의원은 김대중총재와 김영삼총재의 관계를 ‘상호의존적 적대관계’로 파악하면서 “두사람 중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은 같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김영삼총재는 이미 무너졌고, 김대중총재는 버팀목을 잃었기 때문에 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 김대중총재의 2선후퇴는 시간문제”라고 못받았다. 李의원은 또 김대중총재가 집단지도체제를 시사한 것은 정치일선에서 한걸음 물러서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면서 “평민당이 집단지도체제를 갖출  경우 김총재를 정점으로 내세우든지 김총재 집단지도체제의 일각을 차지하든지 두가지 중  하나인데, 두 경우 모두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고 이점은 누구보다도 김총재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부 야권인사들은 3월로 예정되어 있는 평민당 전당대회 이전에 김총재가 결단을 내려 2선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다소 때이른 관측을 하고 있고, 늦어도 지자제선거전에 2선후퇴와  다름없는 자신의 정치적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거대 여당의 비대해진 정치력에  대응할만한 범야권 통합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국민의 여론과 가속도가 붙은 야권 재편성의 흐름을 볼 때 김총재가 ‘밀려나기’보다는 ‘스스로 물러나기’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평민당이 당력을 집중시켜 추진하고 있는 외부인사 영입작업도 기대를 걸만한  것이 못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미 재야의 ‘자원’이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에 겹치기나 과시용 영입이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일부 정치인의 경우 김대중총재가 이끄는 평민당 품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판단이다.

 김대중총재의 2선후퇴 주장에 대해 김총재 측근인사와 핵심당료파들은 “보수야합의 술수에 농간당하지 않고 맞서서 투쟁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대안이 없는 주장은 오히려 야권분열만 조장할 뿐”이라는 논리를펴 김총재 2선후퇴 압력에 대한 방벽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잔류파인 서울지역 지구당의 원외위원장 o 씨는 “ 대안은 없는 것이 아니라 만들지 않고 있을 뿐”이라며 “아버지치고 사후의 자식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식들은 아버지가 없어도 다 제 할일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민주당 잔류파의 적극공세로 평민당내 아권통합파들도 부쩍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趙尹衡부총재는 평민당내 야권통합파들과 자신의 집에서 공식모임을 가진 이후 의원회관 사무실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 당 안팎의 여러 인사와 접촉하고 있는데, 지난달 말에는 高興門씨 등 야권 원로들과도 만나 야권통합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부총재는 또 선친인 趙炳玉박사의 30주기(2월15일)추도식 행사를 위해 각계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하는 등 대대적인 준비작업을 진행시키고 있기도 해 신생야당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쨌든 야권내 정치질서 재편의 최대관심사는 민주당 잔류파가 중심이 된 신야당추진모임과 평민당과의 함수관계에 쏠리게 되었다. 민주당 잔류파가 늘어날수록 범야권통합의 불씨는 커질 것이고, 그럴수록 김대중총재에 대한 퇴진압력은 거세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김대중총재의 2선후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盧武鉉의원은 “평민 · 민주의 합당이 안된 근본적인 이유는 양 김총재의 절대권위와 그 권위밑에 나란히 줄을 서는 의원들의 맹목적 추종 때문이었다. 따라서 양김씨가 합쳐지지 않았던 것이지 양당이 합쳐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 한쪽(민주당)의 1인체제는 무너졌다. 남은 것은 통합이고 신야당의 창당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대중총재가 평민당을 고수하고 신야당이 따로 추진되는 경우 야권은 분열의 원심력에 이끌리게 된다. “혼란의 시기에는 반드시 원심력만 작용한다는 망령에서 정치권이 벗어나야 한다.” 신야당추진모임측 한 의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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