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도쿄의 날씨는 유난히도 춥다. 예년 같으면 수은주가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문데 요즈음은 최저기온이 보통 영하 3~4도까지 떨어진다. 이러한 이상추위속에서 ‘생존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라는 색다른 사명을 띠고 땅설고 물설은 이곳에 온 한국수미다전기의 여성근로자 4명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욱 낮다. 이 겨울 그들의 가슴속에는 여느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한기가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외국까지 쫓아가 노사협상을 벌일 생각을 했을까? 그래야만 할 절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외국 투자기업이 그 나라에서 수지를 못 맞추면 철수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닐까?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힘없는 4명의 근로자가 타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그들에게 어떤 성과가 기대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그들을 돕고 있다는 東京都 마치다(町田)성당으로 서울에서부터 전화접촉을 시도했으나 “일본에 오면 다시 연락해달라”는 안내인의 말이 고작이었다. 도쿄에 도착,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들은 지금 밖에 나가 있어 언제 돌아올지 모르며, 화요일(1월30일) 오후 2시 수미다 본사와 협상이 있으니, 만나고 싶으면 그때 수미다전기 정문으로 나오라”는 말이 고작이어서 그들과의 접촉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협상 예정일 오후 1시30분 한국수미다전기에서 해고된 鄭賢淑씨(23 · 노조위원장), 金順美씨(24 · 부위원장), 鄭順禮씨(23 · 조직차장), 朴性姬씨(27 · 조사통계부장)가 노동자 차림의 50여명과 함께 나타났다 ‘집단해고철회’라고 쓰인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해고되기전 한국에서 입던 작업복위에 ‘빼앗긴 생존권, 투쟁으로 쟁취하자’는 등의 구호가 적힌 어깨띠를 두른 그들은 동행한 ‘수미다노조와 연대하는 회’의 회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30분간 시위한 후 수미다 본사로 들어갔다. 그들이 통역인 니시나 겐나찌(31)씨와 함께 회사측과 협상하는 동안 남아있던 50여명은 계속 구호를 외치고 노래부르면서 한국에서 온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들어간 지 2시간만에 그들은 9차협상을 끝내고 나왔으나 ‘예상했던 대로’ 회사측으로부터 “앞으로 성의를 가지고 협상에 임하겠다”는 말만들었을 뿐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
“도산했으므로 집단해고를 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떤 경로로, 왜 도산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며 정위원장은 회사측의 무성의에
대해 분노를 표시했다. 김부위원장은 “우리의 요구조건은 집단해고를 철회하고 공장을 다시 가동시키라는 것이다. 그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면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은 지난해 11월15일. 10월 중순 마산 수출자유지역
소재 한국수미다전기의 쿠시노 고이치 대표이사는 노사간의 단체협약 갱신 교섭중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가버렸다. 그 한달후 도산통지서와 근로자
4백50명의 집단해고 통지서를 팩시밀리를 통해 보내오자 4명의 노조대표는 조합비 5백만원을 여비삼아 이곳에 온 것이다.
수미다 노조원 지원단체도 생겨나
처음에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코방귀도 뀌지 않을 정도로 무시하거나 형식적으로만
협상에 임했던 수미다 본사는 노조원 4명이 12월26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자 “노조의 제안에 대해 성의껏 답하겠다”고
자세를 바꿨다. 낮에는 본사앞의 길바닥에서 농성하고 밤에는 봉고차에서 자면서 벌인 50여시간 단식투쟁의 성과였다.
지금까지 협상을 통해 회사측이 제시한 조건은 폐업하기전 미불임금, 퇴직금 외에 퇴직위로금으로 6개월치의 봉급을 지불하겠다는 것 그리고 한국 공장경영권을 근로자들에게 이양하고 기술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또 조건이 서로 맞으면 집단해고는 일단 철회할 수도 있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노조대표들은 이에 반발, 그 제안을 거절했다. 정조직차장은 “퇴직위로금으로 1년치의 봉급을 요구한다는 일부 국내 매스컴의 보도는 틀린 것”이라며 “돈만 가지고 해결하려 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그같은 기업가의 사고방식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박조사통계부장은 “수미다측이 처음부터 솔직하게 근로자들에게 경영상태를 공개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안되었을 것이다. 도산상태는 물론 아니고 경영수지 적자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수미다측에 대해 강한 불신을 보였다. “공장경영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는 근로자들이 경영권을 넘겨받은들 뭐 하겠느냐”라면서 “무조건 수미다가 한국공장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씨 등 4명은 86년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진출기업을 생각하는 회’를 조직한 오쿠라 가즈요시 신부의 주선으로 일본에 왔고 그가 시무하는 마치다 성당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있다. 오쿠라 신부는 그들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그 모임의 이름을 ‘수미다노조에 연대하는 회’로 바꿔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회원은 도쿄에만 1백여명인데 수미다 노조원을 위해 지금까지 2백50만엔을 모금했다고 말한다.
4명의 노조대표들은 자신들이 ‘휴지처럼 길바닥에 내팽겨쳐진듯한 느낌’을 갖는다고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호소했다. 지난달 27일에는 가장 큰 명절인 설을 타국에서 보내면서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과 고향생각 때문에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다가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라며 다시금 입술을 깨물었다고 했다.
NHK TV 수미다 사건 45분 특집으로 다뤄
그들은 이곳에 온후 3개월 가까이 수미다측과의 협상 외에도 정당 · 인권단체
· 노동조합연합 · 통산성 · 노동성 · 언론기관 등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빈주먹뿐인 그들에게 있어 최대의 무기는 바로
여론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문제라며 철저하게 불간섭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항거하듯 무모한 일 같기만 하던 그들의 활동이 차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 사회가 ‘수미다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말에는 NHK 텔레비전이 한국 수미다전기 해고근로자 문제를 45분간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기자는 몇번의 시도끝에 가까스로 수미다 경영진과 만날 수 있었다. 사미조 레이지 이사는 “한국공장 재가동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그럴만한 회사의 사정이 있어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못했다”고만 말해 폐업절차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한국수미다의 경영상태가 적자일 수 없다는 근로자측의 주장에 대해 그는 “지금은 근로자들도 회사의 적자상태를 알고 있다고 우리는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인터뷰에 동참한 호리우치 기요시 상무는 “회사측은 폐업통고 1년전부터 노조측에 회사의 적자상태를 설명해왔으며 이는 공인회계사도 인정한 바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여기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수미다측이 인정했듯이 폐업과 관련해서 사용자가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합법적인 절차문제는 그렇다치더라도 수미다 사건에 관련된 양측 당사자의 시각은 한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사용자가 수지 맞지 않는 사업을 정리하려 할 경우 수미다 노조원의 주장처럼 폐업절차를 밟기전에 반드시 종업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근로자들의 동의없이 적법절차를 밟는 것만으로는 회사의 정리가 불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수미다측은 노조원들을 자극시키지 않으려는 듯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으나 아직까지 4명의 근로자들은 그들에겐 폐업이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권 문제”이니만큼 당연히 적법절차를 밟았어아 한다고 주장한다.
게이오 대학의 후쿠시마 요시히사 교수는 수미다사건을 “투자마찰의 일종”으로 규정하며 “팩시밀리 한통으로 공장폐쇄를 결정하는 자본주가 만약 일본에 있었다 해도 똑같이 여론의 지탄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물며 과거 일본의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진 한국에서는 더 신중을 기했어햐 했다”고 말했다.
2월13일 귀국후 다시 渡日
그러면 이 문제의 해결전망은 있는가? 주일 한국대사관 張善植노무관은 “양측의 협상에
의한 문제해결은 이미 물건너갔다”면서 수미다문제는 노사분규의 차원을 떠나 이념투쟁 · 감정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노동자들이 수미다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일본에서는 이런 파격적인 조건이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장노무관은
또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한국근로자들을 조정하는 듯한 배후세력이 떨어져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들과 함께 다니는 통역이 조총련계가 아닌지
의심한다”는 말도 했다.
한편 그들을 보살피고 있는 오쿠라 가즈요시 신부는 협상전망에 대해 보다 낙관적이었다. “직업을 찾기 어려운 한국에서 해고근로자에게 3~4개월분 봉급을 퇴직 위로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너무 미흡하다. 1년 내지 1년반치의 봉급을 각자에게 준다면 아마 노조원들도 받아들이리라고 본다.” 그는 우선 수미다가 한국공장의 폐업을 형식적으로나마 철회하고 흡족한 수준의 위로금을 지급, 근로자들이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쿠라 신부는 또 2월중순 이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며 2월말경에는 노조대표가 회사측이 제시한 조건에 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관측했다.
정씨 등 4명은 2월13일 귀국할 예정이다. 두번 연장한 비자기간이 그때 다 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투쟁하기 위해” 곧 일본에 다시 올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기업가의 그릇된 사고방식과 싸운다”는 그들과 “절대로 공장을 재가동할 수 없다”는 수미다측 사이에 타협은 이루어질 것인가. 이곳에 온 노조대표들의 주장처럼 사용주가 회사의 경영상태를 솔직하게 밝혀 서로 신뢰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회사를 폐업할 경우 사전에 근로자와 상의하는 기업풍토가 자리잡기에는 얼마만한 시간이 걸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