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心火’다스려야 성인병 막는다
  • 홍문화 (서울대 명예교수)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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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끓이면 위, 간장 등에 큰 손상 인삼 복용도 효과적 진정방법

요새 세상사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적지 않고 그와 같은 울화를 가슴속에 묻어두자니 답답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화(火)라는 것은 몹시 노염을 타거나 못마땅해서, 또는 뜻대로 되지 않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을 뜻한다.

 그래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화를 끓인다’(화를 시원스럽게 풀지 못함), ‘홧김에 화냥질한다’등의 말들도 있다.

 이렇게 화를 내면 건강에 좋을 리가 없으며 심하면 홧병이 생긴다. 한의학에서 심화병이라고 하면 마음속의 울화를 풀지 못해 몸과 마음이 답답하고 몸에 열이 나는 병을 말한다.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원인 중 감정의 흥분 때문에 생기는 것을 ‘七情’의 과부족이라고 한다. 칠정이란, 喜  ?怒 ?憂 ?思 ?悲 ?恐 ?驚의 일곱가지 감정을 말한다. 요새 현대의학에서도 점차 마음과 건강이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어 ‘心身醫學’이라는 새로운 분야도 생겨나고 있다.

 고혈압이니 뇌졸중이니 심장병이니 하는 성인병 발병 원인의 약 70%는 마음이 좌우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까 성인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편해야 한다. 마음이  편치 못해서 생기는 병으로는 소화성궤양도 있다.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의 두가지를 합쳐서 소화성궤양이라고 하는데 사회가 각박하게 되어감에 따라 소화성궤양도 늘어가는 추세이다. 더군다나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고 하여 소화성궤양을 ‘매니저병’이라고도 한다. 중간관리층인 매니저에게 잘 생긴다는 뜻이겠다.

 흥미있는 사실은 중국사람과 멕시코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소화성궤양 발생률이 적다는 사실이다. 이 두 민족은 마음이 느긋하기로 유명하며 중국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식으로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언짢은 일이 생기면‘沒法子’(메이화즈)라고 중얼거린다. ‘메이화즈’란 ‘할 수 없지 않느냐’라는 체념의 말이다.

 자기나라의 정치정세야 어떻든 아랑곳없이 묵묵하게 요식업을 경영하여 지구위의 어디를 가나 중국음식점 없는 곳이 없으며 모두 상권을 확보하고 있는 사실도 그와 같은 대륙성기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 사람이 말끝마다 흔히 쓰는 용어가 있다. “아스타 마냐나”라는 말인데 ‘내일 다시’라는 뜻이란다.

 오늘 안되면 내일하면 되지 않느냐, 뭐 조바심할 게 무어냐 하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약 중에서 위장약이 가장 많이 팔리고 병원을 찾는 환자의 약 60%가 위장병환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 민족은 본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왜 그렇게도 성미가 조급한지 모르겠다. 씨를 뿌렸으면 싹이 틀 때가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여유가 있어야 할텐데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조바심이 일어 몸둘 바를 모른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거슬리면 발끈 화를 낸다. 외국사람들이 들으면 싸움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화하는 언성이 높은 것이 우리네 특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혈압 높은 사람과 뇌졸중 환자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의학실험에서 胃에 구멍을 뚫고 속을 들여다보면 환자가 흥분을 하거나 성을 내면 위점막이 충혈되면서 위액의 분비가 많아지며 불안과 초조한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점막이 짓물러서 출혈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소화성궤양의 발생에 감정이 관계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간장이나 쓸개의 작용도 자율신경을 통해 사람의 감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간경화증이나 간장암이 정신적인 충격을 겪었거나 좌절감으로 고민한 사람에게 잘 생긴다는 사실도 이미 상식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속이 탄다’라는 말은 심화증이 생겼다는 표현이며 ‘간이 마른다’‘애가 탄다’등의 표현도 심화에 의하여 간장에 고장이 생기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감정의 강한 흥분상태가 혈액의 성분에까지 영향을 주며 혈압도 높아진다. 마음의 불이 온 전신을 태워버리는 결과가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속이 지글지글 타는 상태를 ‘心火’라고 형용한 우리의 말 표현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불이 붙으면 불을 꺼야 할텐데 맹물을 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며 禪問答처럼 ‘滅却心頭 火亦?’(마음의 번뇌를 씻어버리면 불도 시원하게 느껴짐)과 같은 경지가 되는 것도 또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심화병을 약으로 고치려 하거나 술이나 담배로 달래려고 하다가는 약물중독자가 되어 버린다. 송나라 때의 시인 ‘蘇東坡’는 ‘安心  是藥 更無方’이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심화병을 고치는 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약이지 그밖에는 약방문이 없다고 갈파한 것이다. 심화병을 술로 달래려고 하면 술이 도리어 마음의 불길을 더욱 타오르게 하는 역효과를 나타낸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또하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인삼이 심화병을 고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농담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어떠한 상황에도 적응시키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徑)》에 나오는 인삼의 약효 가운데 ‘安精神’이라는 표현이 그것을 나타내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인삼의 종주국인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심도 느긋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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