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은 ‘풀뿌리’의 씨앗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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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 반란, 중앙당 내정 의장 떨어뜨려

 “차라리 지상발령을 내라.” “아직 투표도 안했는데 당선자 인터뷰가 신문에 실리다니 웬말이냐.”

 광역의회개원일인 지난 8일 오전, 민자당 소속 충북도의회 의원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의장단 선거가 아직 실시도 되기 전인데 지역의 어느 신문에 충북도의회 의장 당선자의 인터뷰 기사가 버젓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흘 전인 4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의원 30명이 도지부 사무실에 모여 의장단 사전 조정을 위한 간담회를 가졌으나 결론을 못내리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날 저녁 신문에 중앙당에서 발표한 의장단 내정자명단이 실려있었던 것이다. 신민당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의원들의 불평은 반발심으로 이어져 여야 가릴 것 없이 중앙당에 대한 반란으로 증폭되어 나타났다. 광주 대전 경기 충북 등 4곳의 시·도의회에서 중앙당이 내정한 의장을 떨어뜨림으로써, 金潤煥 민자당 사무총장의 표현대로 “정당 조직원인 시·도위원들이 당명에 따르지 않은 것”이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항명파동은 민자당을 들쑤셔놓았다. 신민당의 안방격인 광주에서 金吉 의원이 내정자인 鄭潭鎭 의원을 2표차로 제치고 광주시 의회 의장으로 당선된 사태는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지방의원을 거수기쯤으로 아는 중앙당
 의장 당선 이후 김의장은 중앙당으로부터 자진사퇴 압력을 받았다. 광주시지부는 기므이장이 자진사퇴하지 않을 경우 제명시키겠다고 별렀고, 김의장은 자신을 제명시킬 경우 동조 의원들과 집단 탈당하겠다고 버티었으나 결국 사퇴쪽으로 낙착된 것이다. 이로써 신민당의 경우 지구당과 지방의회, 더 나아가 중앙당과 지방의회 사이의 한판 힘겨루기는 마침내 중앙당과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신민당 ‘내란’의 발단은 지난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무소속 3명을 제외한 신민당 소속 광주시의원 20명 전원은 1차 모의투표를 실시, 정담진 의원이 11대8로 김길 의원을 이김으로써 사살상 의장으로 내정되는 절차를 밟았다. 신민당에서는 이때 김의원이 모의투표 결과에 승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때부터 반발의 기미가 엿보였다. 광주시 5개 지구당의 국회의원들이 사전에 정의원을 의장으로 내정한 뒤 경선 형식을 갖추기 위해 사전 투표를 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신민당 광주지구당의 한 당직자는 “모의 투표 결과를 지구당에서 너무 안이하게 분석했다”고 말한다. 그때 이미 중앙당의 의장 내정에 불만을 품은 신민당 의원들의 반발표가 8표나 나왔을 뿐만 아니라 민주연합의 무소속 의원 3명이 가세할 기미까지 보였는데도 지구당에서는 “설마 반란까지야 하겠느냐”면서 정의원이 16표는 득표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민당의 한 당직자는 “차라리 모의투표 없이 곧바로 개원의회에서 투표가 이루어졌더라면 이런 결과까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앙당에서 자유경선을 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내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의원들의 반발을 자초했던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시·도의회 의장 선출과정에서 빚어진 항명파동의 원인은 일단 지구당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 의장단 인선을 일차적으로 시·도지부에 위임했는데 의견수렵 과정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중앙당의 항변이자 변명이다. 의장단을 내정하고 밀어붙이는 등 중앙당의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발상도 원인의 하나다.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시·도으회 의장을 중앙당의 국장 뽑듯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전시의회의 경우는 민자당 지구당 위원장끼리의 세겨루기로 한몫했고, 일부 의회에서는 내정자의 자질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문제점은 지방의회를 보는 중앙당의 시각에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중앙당의 고위 당직자들 입에서는 “지방의회를 장악했다”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오곤 한다. 지방의회 위원을 일종의 거수기쯤으로만 여기는 태도가 역력한 것이다. 특히 민자당의 경우에는 중앙당이 의장단 내정에 직접 개입했다. 신민당은 “광주시의회 의원들한테 맡겼더니 자기네끼리 뒤집어 버린 것”이라고 변명할 만한 건덕지라도 마련했으니 민자당보다는 부담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체면에 먹칠을 하기는 민자당과 마찬가지이며 14대 총선을 대비하는 입장에서 하부조직의 재점검을 서둘러야 할 형편이다.

 지방의회 의원의 4년 임기는 고달파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지역 살림살이 걱정보다는 중앙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 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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