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원 ‘돈잔치’공포증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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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자금 인플레 자초…총선앞두고 전전긍긍

 14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현역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자신이 과연 공천을 받을 수 있겠느냐가 첫번째 고민이고 두번째는 엄청난 선거비용을 과연 무슨 수로 충당하느냐는 문제이다. 대다수 현역의원들은 6월 광역의회 선거가 선거자금 인플레를 가져왔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의 3분의 1 정도에 불가한 선거구를 대상으로 하는 시·도의원 출마자들이 많게는 26억원에서 보통 3억?5억원대를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만큼 이들의 걱정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산술적으로 단순하게 계산한다면 14대 총선에서 보통 9억?15억원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13대 총선 당시 5억원 정도 썻다”고 밝힌 민자당의 한 3선의원은 “광역선거에 대거 나선 졸부들에 비하면 국회의원은 오히려 거지다. 돈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여당 중진의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형편에 야당의 경우 사정은 더 심각하다. 서울에 지역구를 가지고 있는 신민당의 한 의원도 “광역선거에 내보낸 한 후부가 4억원 이상을썼는데도 떨어졌다. 최소한 배로 잡아도 8억이다. 나는 그후 보보다도 집안의 숟가락 까지 팔아야 할 지경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이들의 걱정은 스스로 불러들인 일이기도 하다. 광역선거 이전부터 민자·신민 양당 지도 부가 ‘공명선거대책위원회’설치에 합의하는 등 부산을 떨었으나, 바로 그들 자신이 금권선거를 부추긴 장본인이 됐기 때문이다. 광역선거에 나타난 금권타락상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14대 총선 역시 사상 최대의 ‘돈 잔치’로 끝날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선거 공포증이 현역 정치인들 사이로 확산되는 가운데 신민당 李?九 의원(50·성남을)이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것은 여야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씨는 지난 8일 朴浚圭 국회의장에게 직접 제출한 사퇴서를 통해 “지금 우리나라는 내각제 개헌을 할 것이냐의 여부보다도 정치자금법부터 현실에 맞게 획기적으로 개혁하는 문제가 더 시급하고 주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13대 국회는 제도적으로 두가지의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정치자금법과 국회의원 선거법의 개정이다. 이중 정치자금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합의돌 가능성이 높아졌고, 국회의원 선거법은 9월 정기국회에 가서야 타결될 전망이다.

국고보조금 배분은 여야 타협단계
 현행 정치자금법의 요체는 △국고보조금 △지정기탁금 △후원회제도의 3가지. 이중 먼저 국고보조금 제도를 살펴보자. 현행법은 국고보조금을 ‘최근 실시한 국회의원 총선거의 선거권자 총수에 4백원을 곱한 금액’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의 배분은 우선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10%씩 배정하고 잔여분의 50%를 의석수에 따라, 그 나머지를 들표율에 따라 나눠주게 돼 있다. 이에 따라 1백4억7천9백28만원 규모의 국고보조금은 민자당 63.5% 신민당 25.5% 민주당 11% 비율로 배분된다.

 민자·신민당의 정치자금법개정 4인실부협상팀(민자:張□宇 金槿注 신민:趙贊衡 曹喜澈)은 지난 12일 협상에서 국고보조금 배분에 대한 부분을 거의 타협을 보았다. 이에 따라 △유권자 1인당 6백원에서 다소 상향 조정(신민당은 종전 1천원에서 8백원으로 후퇴)하고 △원내교섭단체 우선 배분 비율도 10%에서 15%로 조정하되 △원내교섭단체가 아니면서 5석 이상의 정당을 갖는 정당(민주당에 해당)에는 5%를 배정하는 선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협상 결과에 따라 제일 타격을 입는 정당은 민주당. 민주당은 종전 법대로라면 우선 기분비율 10%는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단지 5%밖에 받지 못하고, 나머지 의석수와 득표율에 의한 배정도 민자·신민 양당의 기본배정이 15%로 높아져 더욱 줄게 될 형편이다. 민주당은 11일 이에 대한 성명을 내고 민자·신민 양당의 정치자급법 협상을 “당리당략에 따라 양당구도의 고착화를 통한 부정부패의 나눠먹기식 발상”으로 규정, 맹렬히 비난했다.

 당초 신민당 주장은 같은 야당인 민주당 입장을 아예 배재했었다. 신민당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당은 원내 의석이 있더라도 기본비율을 배정하지 말자는 주장을 내세웠으나, 민주당의 반발을 염두에 둔 민자당이 중재에 나섰다.

 이 협상은 민중당 등 군소진보정당의 입장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민중당은 군소정당을 육성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외국의 예를 들면서 “의석이 없는 정당에도 기본 배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정기탁금제도는 현행법상 가장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부문. 이는 개인 및 법인·단체가 기탁받을 정당 또는 배분비율을 지정해서 중앙선관위에 정치자금을 기탁하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적 특수성으로 인해 여당은 갈수록 살찌는 반면 야당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 82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10년간 중앙선관위에 기탁된 정치자금 1천여역원 중 99%가 집권여당의 몫이었다.

 이에 따라 민자당은 지난 2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제도개선특위’를 당내에 설치하고 기탁금제를 전면 폐지하는 것을 포함한 개정안을 검토해왔다. 민자당이 현재 검토중인 방안은 지정기탁금 중 일정 비율을 야당에 배분하거나, 이를 전면 페지하고  국고보조를 대폭 늘려 정당운영의 공영제를 실시하는 것 등이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무기명 기탁제를 도입하거나, 기탁금 중 50%를 국고보조금 배분비율에 따라 각 당에 지급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비지정기탁제로 바뀔 경우 기탁금이 대폭 감소되고 결국 정치자금의 음성화가 더 심화될 위험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후원회제도. 야당의원에겐 ‘그림의 떡’
 현행 후원회제도는 야당에는 거의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현재 민자당 현역의원 2백17명 중 단지 4명만이 후원회를 구성하지 못했으나, 신민당은 金奉旭 의원 1명만이 후원회를 구성했다. 야당의 후원회 구성이 불가능한 것은 후원자가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1년에 1억원까지 모금이 가능한 후원회제도는 야당의원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번 여야간 정치자금법 협상은 국고보조금과 지정기탁금제를 일부 손질하는 선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 이찬구 의원은 “국고보조금을 약간 올려보았자 야당의 겅우 중앙당 운영비 부족분을 일부 메우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공식적인 정치자금을 거의 독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민자당마저 광역선거를 앞두고 지계에 추가 정치자금을 요청하는 형국이다. 현실 정치에 쓰이는 돈의 대부분이 이들 정치자금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음성적인 방법으로 조달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반적인 제도와 국민의식의 개혁없이 ‘깨끗한’ 정당과 정치적인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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