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정밀 기술은 탁월 경영은 방만 인력·자금관리 허점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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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확장으로 ‘화’ 불러 韓寶엔 특혜, 아남은 부도처리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괴롭다. 죄송할 따름이다. 회사를 정상화 하기 위해 ‘백의퇴군’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 아남정밀 羅楨煥 부회장은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심경을 털어놓았다. 나부회장은 현재 장기신용은행 1백억원의 일시대를 3개월간 쓰는 것을 협의중에 있으며, 계열사 공장 및 공장부지를 담보로 3백5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밝혔다.

 아남정밀은 어디로 가는가. 부도 딱지를 단 이회사의 앞날은 시계 제로 상태다. 부도 후 아직까지는 금융기관들의 가압류 신청이나 담보재산에 대한 경매처분등이 시작되지 않고 있다. 담보권 행사를 하지 않고 관망세를 보이고 있어 파산이 얘기될 단계는 아니지만 희생의 묘책은 없어 보인다.

 나부회장의 구상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장기신용은행의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른 채권은행에 알리고 이를 고려해 부도를 철회하겠는가를 물어 긍정적 반응이 나오면 장기신용은행이 돈을 빌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장기신용은행이 응낙할지 확실하지 않은 데다가, 대출이 된다고 해도 이를 채권은행들이 받아들일지 현재 상태로는 불투명하다. 회사채 발행도 여의치 않다. 아남정밀은 이달 중 1백억원(차관용 50억원과 신규발행 5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으나 회사채 발행 주 간사회사인 대신증권에서 “부도 발생으로 지급보증기관이 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행 무산을 밝혔다.

 아님정밀의 부도 발생·처리 상황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관심을 끈다. 우선 전격적으로 처리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한 회사의 부도처리는 더 이상이 회사의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종합적으로 판단될 때 내리는 것인데, 과연 아남이 그런 경우였느냐 하는 의문이 있다.

회사측 “빚 상환능력 충분하다” 아남측은 부동산 담보 등 빚 상환능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3일 현재 아남정밀 등 7개 게열사의 금융기관 빚은 1천3백62억원(아남정밀만은 7백90억원)이다. 양건예금을 뺀 경우 순부채는 1천62억원이다. 반면 아남이 추정한 보유 토지의 평가 추정액은 1천69억원이므로 여기다 나부회장 개인 주식과 카메라 재고를 팔면 빚 갚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부도 발생 45일 전 기술개발 공로로 나부회장이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바 있으며 매출액의 9?10%를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모범적인 중소기업이었다는 점에서도 세인들은 “다른 속사정이 있지 않느냐”하는 의혹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재무부의 한 관계자는 “아남정밀의 부도는 은행이 자율 판단한 것이다”라는 다른 속사정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ㅅ은행의 한 관계자도 “카메라의 판매부진 등으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으며, 그동안 무리한 확장을 해 재무구조가 악화일로에 있었다. 아남산업 지급보증이라도 있으면 유예하려고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아 부도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남정밀의 경영실책이 부도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무리한 사업확장에다 자금·인력관리 측면에서 허점이 많은 회사였다는 것이다. 아남정밀의 자금사정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붉은 등이 켜진 상태였다. 서울올림픽 이후 카메라 시장 자체가 위축기에 들어서 내수가 부진했고, 수출마저 여의치 않아 주력제픔인 래믹스타메리와 쌍안경의 재고가 3백억원어치나 쌓이기도 했다. 자금회전이 안돼 단자사 등에서 조건이 좋지 않은 자금을 끌어다 써 부채규모가 급증했다.

 여기다 무리한 확장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87년 대한광학을 인수한 이래 창업투자회사 설립, 일본 현지법인 설립 등 사세확장 노력이 최근까지 계속돼왔다. 종업원 3백50명의 중소기업인 아남정밀은 대한광학 아남광학 등 알려진 회사 외에 심코광학 렌트레이딩 래믹스 창업투자 동경래믹스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제품을 쪼개고 제조업체와 판매회사를 나눠놓음으로써 생긴 회사들이다. 아닐의 속사정에 밝은 재계의 한 관계자는 “두 단계 뛴 경영방법이지만 불행하게도 끌고갈 능력은 없었다”고 평한다.

법정·은행관리 기로에
 임원으로 있다가 지난 5월 퇴직한 ㅇ씨는 “임직원이 몇 달이 멀다 하고 바뀌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입을 연다. ㅇ씨는 나부회장이 허위정보를 거르지 않고 받아들여 임직원을 불신하는 예가 많았으며, 이를 부추긴 사람이 친동생인 나모 상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나부회장은 발명가요, 기술인으로서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이지만 경영인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평했다.

 아남정밀의 앞날은 아남산업의 인수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가 제3자 인수 법정관리등으로 모아진다. 나부회장은 은행관리쪽을 원하고 있으나, 금융계 관계자들은 법정관리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비리의 한 표본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한보그룹은 1백67억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 아남의 처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는 우리가 아직도 정치적 입김에 의해 기업의 생사가 좌우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남정밀은 연말까지 무공해 연탄을 상품화, 월 10만톤을 생산하고 일본 마쓰시타전기와 합작투자해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카드카메라를 월1백만대 생산·보급할 계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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