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분할 노린 ‘제3의 조처’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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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당국 부동산 매각·업종전문화정책 이어 ‘그룹중심 경영 탈피’ 원칙 공개

 정부는 재벌의 ‘광적인 팽창’을 막을 비장의 조처를 구상하고 있는가. 부동산매각조처, 업종전문화정책으로 재벌의 숨통을 죈 바 있는 경제당국은 ‘제3의 조처’를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져 재벌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앞의 두 정책의 후속편에 해당될 이조처의 핵심은 그룹 중심의 경영을 개별기업중심의 경영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그룹중심 경영이란 소유주인 그룹회장이 기획조정실이나 회장비서실과 같은 회장 직속기구를 통하여 수십개의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거느리는 것을 뜻하므로 새로운 조처가 이런 기구를 겨냥한 것이 라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물론 정부는 구체적인 대재벌정책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룹중심 경영을 개별기업중심으로 전환토록 하겠다는 원칙만 공개했다. 지난달 21일 산업은행 경영연구원 초청 조찬간담회에 참석한 崔?圭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덧붙여 “그룹차원이 아닌 개별기업의 독자적인 경영체제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5일 대통령에게 하반기경제계획을 보고하면서 금융·세제를 포함한 종합적인 경제력집중 완화대책을 연내에 수립하겠으며, 특히 그룹중심의 자금·인력관리를 개별 기업중심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2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 자금난에 대한 대책을 밝히면서 “기업도 투자조정을 하고 비수익성 자산을 처분하거나 수익성 낮은 계열기업을 정리하는 등 ‘응분의’ 지구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별기업 위 총괄기구 불합리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기획조정실을 해체하고 회장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 19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는 “경제력 집중 완화대책의 당위성은 인정하나 정부의 직접개입이 경제흐름에 충격이 될 수도 있으므로 공정거래 관행, 세제와 제정, 금융관행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실행하도록 환경조성에만 힘쓰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제기획원의 李起浩 경제기획국장도 “재벌은 생명체와 같아서 정부가 직접 메스를 갈 수는 없다. 그동안은 ‘분위기’만 조성한 것이다. 경제력집중 완화대책은 충분한 의견교환과 토론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단기간내에 시행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주무부서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姜?復 독점관리국장도 “그룹중심 경영을 개별기업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은 전혀 검토된 바 없다”고 밝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쪽에서도 재벌들이 피해의식 때문에 억측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경제기획원이 한국개발연구원과의 협의 아래 제7차 5개년계획의 공정거래부문 계획과 ‘경제력 집중 완화와 소유분산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확정했으며, 여기에는 기획조정실과 같은 회장 직속의 경영총괄조직을 해체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은 지난달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국제경영학회의 ‘재벌과 국제경쟁력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姜奉? 경제기획원차관보의 발언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각 개별기업은 독립적인 주체이며 이들 위에 있는 총괄기구들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를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서 공정한 제3자에 해당되는 서울대에 연구용역을 발주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을 비교하는 연구인 것으로 확인됐다.

 재벌들은 아직 구체적인 조처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서 ‘입조심’을 하고 있는 형편이긴 하지만 90년 5월8일 부동산매각조처, 올해초의 업종전문화정책 실시 대 이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具石模 부원장(56)은 “정부내에서 그룹경영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대가족제를 핵가족제로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매각조처, 업종전문화에 이은 이번 제3의 조처도 국내시장의 전면 개방을 앞둔 상황에서 ‘적앞에서의 분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회장. 공식 대화채널로 인정말자 주장도
 그룹중심 경영을 개별기업중심 경영으로 바꾸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분과위의 崔廷杓 교수(39·건국대 경제학과)는 정치적 의도만 배제한다면 정부의 그룹경영 탈피 주장은 좋은 착상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서 기조실 비서실과 같은 회장직속의 그룹경영 총괄기구를 해체하고 회장을 공식적인 대화의 채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외에 계역회사간 사장단 회의, 임원겸임제도, 퇴직 처리 없는 계열사간 인사이동, 계열기업간 지금보증을 인증해주지 않는 방법, 계열사간의 금융내부거래를 엄격히 감독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그룹중심의 경영을 탈피한 다음 상속·증여세율을 올리면 실직적인 ‘재벌분할’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하는 전망도 제시한다. 이 가운데 계열사간 지급보증 불인정은 이달 초부터 주력기업에 한해 이미 실시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외에도 정부가 기업집단 출자한도를 현행 순자산의 40%에서 30%이하로 축소시키고 대주주 지분 축소를 입법화시키는 방안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벌들은 6공화국에 들어서 자신들이 ‘속죄양’역할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호소한다. 이들의 주장에는 기득권 수호라는 측면이 있지만 최교수가 말한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는 일면도 있다. 이런 면만 없다면 한국재벌의 그룹중심 경영관행을 없애는 방법에 관한 논쟁은 가장 흥미롭고 해볼 만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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