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호가 환경 망친다”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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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회의 맞아 ‘세계은행’ 보고서…“개발과 성장이 환경투자 촉진”



 개발과 환경은 모순관계인가. 흔히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고 있는 ‘지구 정상회담’도 이같은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발간된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이상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무조건적인 개발 억제보다는 ‘개발과 환경과의 조화’가 더 지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해 주목을 끈다. <편집자>

 

 ‘지구 정상회담’이라 불리는 유엔환경개발회의(6월3일~14일)가 열리고 있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이 도시는 짓궂게도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온갖 환경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항구도시 리우는 우선 아름답다. 그러나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다 보면 후진국의 빈곤과 선진국의 산업공해가 공존하는 묘한 도시임을 느끼게 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를 동시에 보여주는 리우데자네이루는 역사적인 세계 환경회담의 최적지”라는 한 브라질 관리의 말은 이 도시를 찾아온 1백85개국 대표들이 풀어야 할 세계 환경문제의 ‘양면성’을 일깨워 준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비유되는 세계 환경문제의 양면성이란 무엇인가. 선진국들이 느끼는 절박한 환경문제가 지구의 온난화나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산업공해라면, 후진국에게는 당장 생존이 위협받는 절대빈곤이다. 아직도 그 피해의 실상에 대한 과학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오존층 파괴와 같은 환경문제를 선진국이 “세계의 문제”로 제기하는 반면, 제3세계에서는 10억 인구가 안심하고 마실 물조차 구할 수 없는 가난에 신음하고 있다. 후진국의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있는 세계은행은 리우데자네이루 회의 개막에 맞추어 발간한 <92년도 세계개발보고서-개발과 환경>에서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식수가 부족한 점을 인류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로 꼽았다.

 건강에 유해하지 않은 물을 구할 수 없어 후진국 어린이 3백만명이 해마다 죽어간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삼림을 파괴해야 하는 후진국 국민에게, 이같은 행위가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엄격히 규제하려는 선진국의 환경주의란 배부른 자의 추악한 이기주의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공동의 유산”이라는 미명아래 그들의 발전에 필수적인 열대우림과 천연자원의 개발을 중지하라는 선진국의 요구를 ‘환경제국주의’라고 비난한다. 말레이시아의 모하메드 마하티르 총리는 “스스로의 자연유산을 파괴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남아있는 자연이 자기들 것이라고 선언하고 싶어한다”고 열대우림의 벌목을 중단시키려는 선진국을 비판했다. “우리는 우리의 숲속에서만 발견되는 수천종의 식물과 동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생활공간이 필요하고, 경지가 필요하며, 우리의 원목을 팔아서 얻는 돈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후진국 개발 억누르면 환경 더 파괴돼

 세계은행은 경제원리에 반하는 환경정책의 폐해를 면밀히 분석해 그 자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지나치게 환경보호에만 치우쳐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을 늦추게 해서는 안된다고 묵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선진국은 환경보호라는 기치를 내걸고 무역제재를 가하는 국제협약을 통해 후발개도국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동안 환경파괴를 대가로 세계 부의 80%를 차지한 선진공업국들이 이제 환경을 구실로 후진국의 개발을 막으려한다. 환경보호만을 내세우는 선진국의 맹목적인 환경주의자들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어떠한 형태의 개발에도 반발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선임경제학자 로렌스 섬머스씨 등 20명이 넘는 세계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환경이 개발과 경제성장에 비례해 계속 파괴될 것이라는 환경주의자들의 일반론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좋은 환경은 동시에 달성된다는 주장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일정 수준으로 성장하면 국민 사이에 환경에 대한 인식이 싹튼다. 즉, 사회가 환경을 보호해야 할 경제적 동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르면 경제성장으로 이룬 경제력과 그를 이용해 개발된 환경기술로 환경오염을 줄여나가려는 투자가 시작돼 개발한 환경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세계은행은 설명한다.

 선진 공업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실제 사례가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한다. 70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국내총생산은 80% 증가했으나. 납과 분진 같은 산업공해물질은 감소해왔다. 선진국의 경우 고도 산업화에도 불고하고 대기오염은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개선됐다. 이러한 환경개선에 선진국들이 투자한 비용은 국내총생산의 1.5%도 안되어 경제력에 비하면 미미한 액수이다.

 세계은행은 한걸음 더 나아가 개발 없이는 환경 개선도 기대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선진국의 환경주의자들이 문제삼는 삼림의 황폐화·생태계 파괴와 같은 후진국형 환경문제는 대부분이 빈곤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2억이 넘는 인구가 열대삼림에 그들의 절박한 생계 문제를 걸고 있다. 필리핀과 나이제리아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삼림 황폐화의 60% 이상은 화전과 같은 농사나 가축 기르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벌목 같은 생계수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삼림 자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후진국에게는 보다 효율적인 벌목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삼림을 보호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경제성장과 함께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를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경제성장과 환경개선은 비례한다”

 세계은행은 환경보호를 위해 시장경제 원리에 기반을 둔 정책을 도입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법률이나 제재조치보다는 공해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동기를 유발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가 성숙해 있지 않은 개발도상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격의 왜곡은 공해를 심화시키는 한 요인이다.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정부의 개입으로 석유 값이 세계시장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에너지 낭비와 이에 따른 대기오염이 악화되었다고 예시한다. 개발도상국 정부가 1년에 지출한 2천3백억 달러의 에너지 보조금 중 1천8백억 달러를 차지했던 옛 소련과 동유럽의 가격 왜곡은 이들 지역의 대기공해를 최악으로 악화시킨 직접적 요인이었다고 세계은행은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서의 대기공해 중 절반 이상이 정부보조금에 따라 싼값으로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된 결과로 발생했다고 한다.

 환경문제 해결에 시장경제 원리와 기회비용을 따지는 경제학적 접근 방법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세계은행과 같은 시각에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리차드 노가드 교수는 “전통적인 경제학은 환경 자원에 대한 소유권이 현세대에게 모두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으나, 사실은 미래 세대도 동등한 권리가 있으므로 기존의 경제학적 접근 방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가드 교수는 현 세대는 미래세대의 환경자원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먼저 내린 후 경제학적 분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섬머스 씨는 최근 영국의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현세대가 미래세대의 복지를 얼마나 생각하는가에 관계없이, 모든 투자는 경제적 원리를 좇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는 현세대보다 나은 삶을 누릴 개연성이 큰 미래세대의 복지를 생각하기보다는, 92년 현재 하루 1달러도 안되는 생계비에 의존하는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역사적’이라고 세계의 언론들이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지구 정상회담’의 시기에 맞추기 위해 세계은행은 관례보다 이른 5월말에 《92년도 세계개발보고서》를 발간했다. 경제 도표와 통계숫자로 가득한 이 세계경제 보고서가 제시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맹목적인 환경보호를 앞세우는 극단적 환경주의의 폐해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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