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계 새 지평연 선진국형 구멍가게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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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연중무휴 24시간 영업…2천?3천종 구비 ‘만물상’

 도시에 어둠이 짙게 깔려도 편의점은 늘 깨어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면유리로 치장되어 있어 현대적 분위기가 풍기는 이곳은 새벽 서너시까지 고객들로 북적댄다. 야근을 마친 직장인이나 배가 출출해진 수험생이 즉석식사(패스트 푸드)로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89년부터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 편의점은 2년 만에 그수가 급격히 늘어나 지금은 서울에만 1백개가 넘는다. 최근에는 성공여세를 몰아 전국적인 가맹점망을 형성하여 연말에는 3백개가 넘는 편의점이 전국에 깔릴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정유사들도 편의점시장에 끼어들 움질임을 보이고 있어가히 편의점 춘추전국시대를 앞두고 있는 느낌이다.

상호는 한결같이 외국말
 ‘선진국형 구멍가게’로 불려지는 편의점(CVS : Convenience Store)은 1924년 미국 댈라스의 한 제빙공장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얼음과 함께 냉동수박을 판매한 것에서 착안한 유통업체 사우드랜드사가 상술을 발휘, 오늘날 편의점 형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는 약 7만개의 점포가 간선도로변에 위치하여 자가운전자를 주요 고객으로 가솔린판매를 겸한 일종의 ‘역마차형’ 영업을 하고 있으며 67년에 처음 선을 뵌 일본에서는 약 3만개의 점포가 주택가에 위치하여 가정주부를 상대로 영업하고 있다.

 우리나라 편의점의 상호는 한결같이 외국어로 되어 있는데 성격상 외국회사와 기술제휴한 것과 국내회사가 운영하는 것 두가지로 나눈 수 있다. ‘세븐 일레븐’ ‘서클 케이’ ‘로손’ ‘훼미리마트’ ‘미니스톱’이 전자에 속하며 ‘엘지25’ ‘러브엠’ ‘바이 더 웨이’가 후자에 속한다(표 참조).

 편의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까닭은 두가지다. 연중무휴로 영업을 한다는 점과 ‘만물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상품가지수가 많다는 점이다. 편의점은 대부분 ‘1품목 1상표’를 상품취급의 원칙으로 삼고 식교품 생필품 잡화 우표 각종 잡지류 그리고 즉석식사에 이르기까지 2천?3천종을 취급한다. 이러한 다품종상품의 운영이 가능한 것은 편의점 판매시점관리체제(POS)와 전산시스템(EOS) 등 ‘물류관리기법’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과 기술제휴했을 때 1%의 로열티를 내고 지원받는 ‘경영기술의 핵심’인 이 방법은 상품이 팔리는 즉시 전산시스템에 의해 본사에 자동 보고된다. 따라서 매출빈도가 높은 상품을 파악하고 판린 물품을 항상 보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구멍가게 특유의 어둡고 초라한 분위기보다 상대적으로 밝고 산뜻한 편의점의 외양도 소비자에게는 큰 매력이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상가 1층에 자리잡은 ‘세븐 일레븐’은 점포를 낸 지 2년이 넘지만 아직도 깨끗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외부는 전면유리와 아크릴에 그려진 줄무늬로 산뜻하게 치장되었고, 38평 매장 내부는 2천5백여가지 상품이 식품류 비식품류로 구분되어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 있다. 또 한쪽에는 즉석식사를 위한 간이 탁자도 마련되어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슬러피’(얼음을 잘게 부숴 만든 음료수로 편의점에서만 판매함)에 매료된 청소년 단골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팀장 鄭純敎씨(28)는 말한다. 가격은 대체로 슈퍼마켓 보다는 비싸고 구멍가게보다는 싸다. 2백원짜리 초콜릿이 1백80원?2백원에 팔리는가 하면, 주먹김밥이 4백50원, 컵라면은 소비자가격보다 10% 싼 4백50원에 팔린다.

 이러한 편의점들은 대체로 외국과 기술제휴를 했거나, 국내 재벌그룹에서 경여하는 경우가 많아 기존 유통시장에 큰 타격을 줄 것이 예상되어 편의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고운 것만은 아니다.

 슈퍼마켓의 경우 타격은 일반 구멍가게만큼 크지 않을지 모른다. 슈퍼마켓자체가 1백50?3백평 규모로 식품중심의 저가판매를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다품종 소량상품위주의 편의점과는 달라 오히려 서로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실제로 올림픽상가 2층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金升圭(서진유통 차장)씨는 “청소년 고객이 줄었을 뿐 찬거리를 사는 주부의 발길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전한다. 여기에 최근 슈펴마켓은 편의점들을 의식, 개점시간을 아침 8시?밤 11시까지 늘려가면서 자생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문제는 ‘재래식 구멍가게’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金鍾澤 사업부장은 “15평 미만의 구멍가게들이 사업자등록을 한 전체 점포의 약 90%에 해당하는 11만개에 이른다”고 밝히면서 “편의점 등장 후 매상이 크게 줄어 폐업·전업한 가게가 상당수 있으면 나머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전한다.

 병원과 대학이 모여 있는 동대문구 경희대 입구는 유동인구가 많아 늘 사람들이 북적댄다. 슈퍼마켓이 7개나 몰려있고 구멍가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 편의점 ‘엘지25시’가 깃발을 꽂은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그 당시엔 구멍가게 망한다고 데모도 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됐어요. 버틸 수 있으면 버티고 힘 없으면 물러나야지요.” 그나마 ‘엘지25’가 한국회사라서 덜 분하다는 金씨(56)는 “매상이 줄어도 비비고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체념 어린 표정을 했다.

슈퍼마켓·구멍가게 타격 입어
 편의점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대운점’ 주인은 “똑같은 고객을 상대로 하는데 매상이 줄어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면서 “슈퍼나 구멍가게 모두가 어려움은 크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편의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통전문가들은 서구식 경영기법을 앞세워 편의점이 대거 확산되는 것은 국내유통업 선진화과정에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상공부 산업정책국 朴甲祿 유통산업과장은 “소규모 업체들은 점차적으로 편의점 형태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구멍가게의 업태전환을 위해 재정자금지원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했다.

 미국 ‘서클 케이사’와 기술제휴한 李相天 사장(39·서클 케이 코리아 대표)은 “장기적으로 보면 편의점의 상권 확대는 유통시장의 고질적 병폐인 ‘무자료시장(덤핑시장)’을 막고 낙후된 국내유통업을 근대화시키는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구멍가게가 편의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회의적 반응을 보인다. 우선 구멍가게의 대부분이 임대매장으로 자본금이 달리기 때문이다. 또 현재 구멍가게들이 대부분 ‘과세특레자’ 혜택을 받고 있는 것도 편의점 전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편의점은 기존 직영점을 모델로 삼아 자영업자를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어 가맹점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가맹점이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는 것은 계약사와의 계약이행을 위해 울며 겨자막기식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 신중한 대처가 요망된다. 기술제휴선인 외국회사들은 기술사용 로열티를 순매출 1%로 묶는 대신 안정된 로열티 확를 위한 장치로 기술제휴 계약 때 3년 이내 70개 점포, 5년 이내 1백40개 점포 개설의 의무조항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부족한 점포수만큼의 예상매출을 계산해 로열티를 물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위약금은 물론 계약 파기까지 할수 ?ㅆ도록 외어 있다.

생활풍속도 달라질 조짐
 우리는 이미 70년대에 동네구멍가게 시대에서 슈퍼마켓 시대로의 변화를 경함한바 있다, 편의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출현으로 소매점의 재편은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인지도 모른다. “간편하게 이것저것 살수 있어 편의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鄭智元씨(24·동덕여대 화학과 3년·휴학중)의 막은 편의점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잘 드러내 준다.

 편의점이 열차표나 고속버스표 예매서비스, 전기요금 대납. 소하물 취급 등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할 날도 멀지 않은 것같다. 증권뉴스를 컴퓨터 단말기로 보급하여 ‘보이지 않는 서비스’시대의 문을 연 ‘바이 더 웨이’는 그런 점에서 미래 편의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편리’라는 이름 아래 총집합하는 편의점 시대는 우리 생활풍속도를 크게 바꿔놓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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