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없애고 일합시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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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회의문화 개선운동 추진…‘횟수·시간 줄이기’



 “어느 기업 간부회의에서 당면한 안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첫번째 의제인 수십억원 규모의 사업건은 별다른 이의나 토론 없이 5분만에 통과되었다. 여직원 제복의 색깔을 결정하는 두번째 안건에 대해서는 격론이 그칠 줄을 몰랐다.” 쌍용그룹 사보가 벌이고 있는 직장문화 개선 캠페인 ‘인식의 전환’ 시리즈에 실린 어처구니 없는 일화이다.

 회의에서 사소한 일에 금쪽 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중견급 이상 간부가 회사에 있는 시간 가운데 회의나 상담에 쓰는 시간이 50%를 넘는다는 일본의 한 보고서도 있다. 회의시간의 길이에서 한국은 일본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삼성그룹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각 직급별로 회의에 참석하는 시간을 계산해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이 조사를 계기로 삼성그룹은 90년부터 본격화된 ‘관습 개혁 캠페인’의 첫 단계인 ‘회의3·3·7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회의의 효율성을 위해 세가지 사고방식(회의를 그만둔다, 간소화한다, 통합·위양한다)과 세가지 원칙(회의 없는 날 운영, 한시간 이내 끝내기, 회의 자료 간소화), 그리고 일곱가지 규칙을 마련해 추진했다. 일곱가지 규칙이란 △정해진 시간에 참석해서 회의를 시작한다 △끝나는 시간을 미리 발표한다 △참석 대상을 최소화 한다. △회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 △사전에 자료를 배포하고 의제를 검토한다. △전원이 발언하고 서로 의견을 존중한다. △결정이나 지시사항만 기록하고 회의록은 생략한다 등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회의시간이 긴 것은 회의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탓으로 풀이된다. 기업 문화에 대해 자문해온 정보전략연구소 尹恩基 소장은 우리나라 기업의 회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참석자들은 할 말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소신을 밝힐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눈치를 보아가며 발언하게 된다. 회의 진행자의 진행 방식은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참석자 대부분이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힘들다.”

 회의가 잦고 길어지는 이유는 기업인들이 회의를 비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회의를 열기 전에 그 비용을 한번만 생각해 보더라도 횟수와 시간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비용절감 방안인지 알게 된다.

 삼성그룹에 이어 쌍용그룹은 회의를 실속있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쌍용그룹의 모기업인 쌍용양회의 한 소집단이 회의에 드는 비용을 추정해보았다. 이에 따르면 부장한명의 ‘한시간당 업무단가’(한시간에 다른 일로 벌 수 있는 수익)는 1만6천원, 임원은 2만9천원이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임원25명이 참석하는 임원회의가 한번 열리면 한시간에 72만5천원이, 부장 23명이 참여하는 부장회의에는 36만8천원이 각각 소요되는 셈이다. 부장 이상 중견 간부가 모두 참석하는 확대간부회의는 두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여기에 65명이 참석한다고 할 때 그 비용은 자그마치 2백8만원이나 된다.

 회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우선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참석자 수를 줄여야 하겠지만, 우선 쓸데없이 회의를 질질끄는 ‘회의 훼방꾼’을 봉쇄해야 한다.

 

확대간부회의 두시간은 2백만원에 맞먹어

 회의시간 줄이기에 성공한 기업들은 회의진행자가 훼방꾼을 잘 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길게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의식형·무의식적 눌변형·무의식적 웅변형 세가지라고 일본의 월간《매니지먼트》 92년 4월호는 지적했다. 의식형은 어떤 의도를 갖고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남의 발언을 막는 훼방꾼이다. 이런 사람에게 진행자는 “도중에 실례입니다만 간결하게 말씀해주십시오”라고 확실히 지적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이 고의적으로 회의를 끌고 있다는 잠재적인 죄악감을 가지기 때문에 곧 수그러든다. 무의식적 눌변형은 특별한 목적 없이 느리고 수식어가 많은 말투로 빙빙 돌려 말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에겐 칠판에 요점을 적게 하거나 “이러이러한 것이군요”라고 말해줌으로써 자신이 한 말의 결론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회의시간에 자신의 말에 도취해서 예를 불필요하게 많이 들고 발언을 위한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무의식적 웅변형에겐 진행자가 “다른 분이 의견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라고 말을 돌려야 한다. “그 정도에서 끝내 주시지요”라든가 “3분 안에 얘기를 끝내 주십시오”라는 말은 발언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므로 삼가야 한다.

 질질 끄는 회의 분위기에 익숙한 참석자들이 하루아침에 회의시간이나 횟수를 줄일 수는 없다. 나쁜 버릇을 고치려는 사람처럼 기업도 끊임없이 훈련하지 않으면 회의를 줄일 수 없다. 쉴새없이 회의를 하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는 다행히 훈련할 기회가 충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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