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시대’에 교육부는 뒷짐
  • 김 당 기자 ()
  • 승인 199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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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처의 시범학교 운영이 유일…여성·시민단체 의식 못따라



 지난 6월 초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는 환경사진전과 환경도서 전시회가 열렸다.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 기간의 뜻깊은 환경주간을 맞이해 환경처가 공을 들여 주최한 여러 행사 중 특히 환경도서전은 수백종의 국내외 환경관련 도서를 처음으로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전시회의 환경도서 전시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환경정책과 관련, 중요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사실 한 가지를 알 수 있다.

 국민의 환경의식은 높아지고 있는데 환경교육은 여전히 수준미달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우선 외국의 환경도서와 비교해 볼 때 초라하고 볼품 없어 뵈는 외양은 그만두더라도 환경교육도서 수효(48종)가 다른나라 환경관련 도서 수효에 견주어 턱없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딱딱한 자료집이 태반이라 별로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얼마 안되는 교육도서마저 대부분이 환경처나 환경보전협회 그리고 환경처의 지원을 받은 사회단체 등에서 발행한 것일 뿐 교육부나 교육기관에서 발행한 교육용 도서는 한권도 없다. 이같은 현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환경교육 전문가들은 우선 환경교육을 책임지고 전담할 법·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돈형 박사(한국교육개발원 환경교육부연구부장)에 따르면 6공화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라고 환경권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환경교육을 받을 권리와 국가의 그 의무까지를 포함하는 것인데, 정작 그 하위법인 교육법이나 교육법시행령 어디에도 환경교육이라는 말은 안 보인다는 것이다.

 법령에 환경교육 관련 규정이 없으니 담당부서나 직제도 있을 리 없다. 주무부서인 교육부에 환경교육 담당관이나 장학관이 없으니 환경교육 투자예산이 있을 리도 없다. 예산이 없으니 환경 전문교사나 독립된 교과로서의 환경교제 또한 있을 리 없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제도·체계적 환경교육은 아직 없다”고 말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제도적 뒷받침이 없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선 독립적인 환경 교과도, 교과서도 없고 또 전문교사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 교육학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 독립 교과화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전문교사 양성이 전혀 안되고 있는 것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국 사범대학의 경우 전공필수 또는 전공선택과목으로는 지리교육과(1개교)를 제외하고는 환경교육 관련 과목이 개설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물론 교육대학의 경우에도 환경 관련 과목은 필수과목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의 교사 자격증 종류만도 70가지가 넘는데 아직 환경교육 교사 자격증은 없다.

 그나마 학교 환경교육의 명맥을 유지해온 제도로는 환경처가 운영해온 환경보전 시범학교를 들 수 있다. 85년 당시 환경청은 서울 신북국교 등 국민학교 4곳과 부산 엄궁중 등 중학교 4곳을 제1차 시범학교로 지정한 이래 2년마다 8개 학교씩(국교 4·중학교 4)을 지정, 지원해오고 있다. 그동안 시범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모두 24개교이고 현재는 부산 회동국교·강원 현남중 등 8개교(91년 지정)가 시범학교로 운영중이다.

 

시범학교 운영 후 환경 실천도 70%로 증가

 환경처가 시범학교 한곳에 지원해주는 예산은 1년에 3백85만원. 지원부처인 환경처 시범학교 담당 차길환 사무관(홍보지도과)조차도 “실험 실습 장비를 갖춘 현장학습을 하기에는 미흡한 지원”이라고 아쉬워한다. 게다가 시범학교 운영기간 2년이 지나면 준시범학교라는 이름으로 환경처에서 환경교육관련 자료만 제공해줄 뿐 지원 예산이 끊기는 점도 문제이다. 지난 89년에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구일국교(교장 임종협)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별도의 환경학습·전시관을 운영해왔으나 지금은 일반교실로 대체, 교실 복도 모퉁이로 밀려난 형편이다.

 그래도 시범학교 제도는 예산·전문교사 부족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을 평가받고 있다. 환경처의 시범학교 운영결과 분석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들의 환경오염 및 환경보전에 대한 인지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지도교사의 환경관련 지식이나 소양도 상당 부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환경처가 시범학교로 지정한 24개교 4천8백명을 대상으로 시범학교 운영 전후에 설문조사한 실태분석에 따르면 국민학교의 경우 환경학습 흥미도에서 “재미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14%에서 60%로 늘어났다. 또 환경보전 실천도에서도 “스스로 노력한다”고 응답한 학생이 운영 전 7.4%에서 운영 후에는 70%쯤으로 크게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한편 중학교의 경우에도 학교 환경학습 및 언론에서의 환경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관심도는 물론 환경보전활동 참여 및 실천도에서 상당히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시범학교가 거둔 또 다른 성과로는 인근 다른 학교와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 환경의식을 전파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체 학교수에 견주면 극히 적은 수효이지만 시범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학교와 지역주민들에게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시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 최돈형 부장의 주장이다.

 그밖에 학교 환경교육 형태를 띤 것으로는 유네스코에서 오래 전부터 운영해온 협동학교 제도를 들 수 있다. 정식 명칭이 ‘국제이해를 위한 협동학교’(전세계 2천여 학교·한국36개교)인 이 국제 프로그램은 평화·군축·인권 등의 주제에서 짐작되듯이 원래 북유럽에서 활발히 전개돼 왔다. 그러나 “최근 환경이 국제이해의 가장 매력적인 주제로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협동학교에서도 환경문제를 매개로 한 국제 이해 쪽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이승환씨(교육과학문화부장)의 설명이다.

 

여성의 환경실철 운동 성과 크다

 한편 최근에는 학부모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교내에 환경전시관을 운영, 직접 아이들에게 환경의식을 고취시키는 ‘어머니 환경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강동구 대명국교의 경우 어머니회에서 ‘푸르게 사는 모임’(회장 조혜선)이라는 환경모임을 만들어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중고·재생용품 알뜰바자회, 우유팩과 재생화장지 교환 등의 환경실천운동을 펴오고 있는데 인근 주민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이 어머니 모임은 어린이합창단을 후원, 지난 5월말에 강동구민회관에서 가진 상록수합창단 공연에서 입장권 대신 빈 우유팩을 받는 이색적인 환경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같은 자생적인 학부모 환경모임들이 생기고 있는 배경은 환경운동 단체에서 운영해온 환경학교 등을 통해 배출된 여성 환경운동 인력이 꾸준히 늘어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환경과공해연구회(회장 김정욱·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에서는 지난해 3월 제1기 환경학교를 개설한 이래 지속적으로 환경학교를 운영해오고 있는데 수강생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 여성들의 환경운동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에 부응하여 여성단체 및 모임이 자발적으로 개설한 여성 환경지도자교육 같은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여성위와 알뜰가게·주부아카데미·환경을 살리는 여성들 등의 6개 모임이 지난 5월에 함께 개설한 제1회 환경교육 과정은 강의식 이론교육 말고도 난지도 견학 같은 현장답사, 환경을 주제로 한 노래부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천해야 할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 선언’

 그밖에도 YMCA와 YWCA는 시민자구운동의 하나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받는 환경교육’ 및 여름환경캠프 실시와 환경고발센터 운영, 주부를 대상으로 한 가정폐기물 실태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보전 캠페인 및 환경교육을 펴오고 있다. 특히 YWCA는 지난해 환경처의 지원을 받아《지구를 살리자》《숲속의 재판》등 2권의 유아용 환경 학습교재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YMCA는 그림동화 형식으로 만든 국내 최초의 이 유아용 교재를 유아 교육기관에 무료로 배포해 인기를 모은 바 있다.

 교육학에서는 ‘인격의 이중성’이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 이를테면 학교에서는 배운 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는 흔히 일탈행동을 보일 때 그렇게 말한다. 지난 6월5일 세계환경의 날 20주년 기념식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이른바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선언’이라는 것을 선포했다. 이 선언의 13조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환경교육이 필요하다”면서 “환경교육은 학교교육에서는 물론 미래지향적인 평생교육을 통하여 환경보전이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은 단지 선언적 의미만을 가질 뿐 우선 당장은 거의 실현성이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대통령과 교육부를 포함한 국가 인격의 이중성을 드러낸 보기인 셈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95년부터 적용되는 제6차 교육과정에 환경이 독립교과로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20년 전인 지난 72년 스톡홀름에 모인 환경학회 석학들이 내린 결론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환경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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