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집’ 운영하는 朴慶玉씨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0.05.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빈민 위해 ‘이웃사랑’ 실천

예수의 가르침 중 가장 으뜸가는 덕목은 ‘이웃사랑’이다. 그것도 남들이 알지 못하게 베풀라고 가르친다. 서울 신길동 우진아파트 9동411호에서 ‘여성의 집’을 열고 그리스도의 그러한 가르침을 조용하게 실천하고 있는 朴慶玉씨(세례명 모니카). ‘여성의 집’은 서울지역 빈민여성들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파출부 알선, 탁아서 운영, 청소년 미혼모 돌보기 가정문제 상담 등의 뒷바라지를 해오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도시빈민 여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결코 작지 않은 일들이 이곳에서 일구어진다.

 독신으로 살면서 박씨가 이같은 사회복지사업에 나서게 된 것은 25년 전 대학시절에 겪었던 한 뼈저린 체험에서 출발한다.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으로서 노동운동을 하다 정치 · 사회운동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던 여성문제에 새롭게 눈을 떴다. 많은 고민 끝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하느님을 느끼도록 하는 지침이 필요하다”고 절감한 박씨는 여학생으로는 처음으로 가톨릭신학대학에 입학한다. “독일유학을 떠나려 했지만 前歷 때문에 출국금지조치를 당했습니다. 주위 신부님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지요.”

 유학자금으로 79년 서울 신길동 공장지역에 여성 근로자들의 집을 마련하고 10여명의 노동자와 공동생활을 시작했다.그러다 82년에 원풍모방 등 주변의 공장들이 대거 이전하면서 그의 집은 도시빈민 부녀자들의 복지시설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수배됐던 여성 노조지부장을 보살펴주다가 급히 피신시켜야 했을 때, 그가 업고 있던 아기까지 떠나보내자니 무척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런데 마침 사흘 뒤 갈곳 없는 아기엄마가 어느 신부님의 소개로 찾아왔어요.” 생계를 해결해줄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하던 끝에, 일본 갔을 때 보았던 파출부일을 조직적으로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각 성당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청하자 여기저기서 파출부를 쓰겠다는 이들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교회의 소개를 받아 상계동 · 사당동 등 빈민지역에서 일감을 찾아 모여든 부녀자들의 수가 지금은 1천2백여명에 이른다.

 “저도 6개월 동안 직접 파출부일을 했습니다. 당시 ㅅ대학에서 금속공예를 강의하고 있었는데, 강단에서 내려오기로 결단을 내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파출부일을 시작하자 새로운 문제거리가 생겼다. 파출부들의 아이를 돌볼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기방을 차린 것이 83년. 그것이 확대되어 부모 사정 때문에 갈곳 없는 아이들도 받아 키우기 시작했다. 부모가 데려갈 여건이 될 때까지 우유값만 받으며 보살펴주는데, 지금 돌보는 20명 중 6명이 그런 아이들이다. 청소년 미혼모도 교회의 소개를 받아 출산 때까지 1년에 4명 정도 보살피고 있다. ‘여성의 집’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 소속돼 있지만 교회의 재정도움은 전혀 받지 않는다. “개인적 차원의 사회복지사업을 인정하지 않는 데다가 교회가 빈민촌의 여성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지원을 이유로 여러 가지 간섭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박씨는 대학 시간강사, 초청강의 원고기고 등으로 생기는 자신의 소득 모두를 여기에 털어넣고 있으며 더러는 숨은 후원자들의 도움도 받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도시락을 만들어 납품하기도 하고 타고난 손재주로 여러 가지 수공예품도 만들어 파는데 “지금껏 하느님께서 굶기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또 봉사해주던 ‘이모’들이 아예 눌러앉아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조를 짜서 매일 번갈아가며 찾아오는 서강대생 8명도 있어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

 가톨릭의 사회복지사업에 대해 박씨는 냉정하지만 애정어린 비판을 가한다. “건물이 크고 인원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지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그래서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고, 노동의 땀 흘린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요.”

 인간적인 접촉을 쉽게 할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가 우리사회에 많아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박씨의 남은 꿈은 나이가 들어 파출부일마저 못하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보금자리를 꾸며주는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