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人間을 위해 존재한다”
  • 장용주 신부 (광주대교구)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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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가톨릭의 사회참여운동/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神學의 자주화’ 추구

“그리스도교는 19세기가 지나도록 오로지 神에 대한 관심밖에 보이지 않았다”라는 어느 신학자의 지적은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초대 그리스도교는 그 혹독했던 박해시대를 카타콤(로마의 지하묘지)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유산을 지키며 살아왔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신앙에 대한 관용령’이 내려지자 교회는 지상으로 올라와 정착하면서 재빨리 당시의 정치 · 사회 · 문화적 구조의 옷을 입고 선교에 나섰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군주제적 틀 속에서 획일적이고 독선적이며 방어적인 교조적 독백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따라서 얼마전까지도 그리스도교는 서구의 수출품처럼 인식되었고, 서구와 제3세계 선교지역과의 관계는 포교 · 문명화 · 자선사업 차원의 성격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서구의 선교사들은―희랍철학으로 채색된―서구신학을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주입시킴으로써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선교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고와 생활규범까지 서양철학과 서구신학의 지배를 받게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이러한 군주제적인 교회관과의 작별을 선언한 역사적 회의였다. 이 회의는 교조적 독백의 자리에 인간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권위를 가진 교회가 아니라 봉사하는 교회의 이념을 강력히 천명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자기 중심적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상실하지 않으면 안되며, 인류에 봉사하고 인류를 사랑하기 위하여 인간을 향해 자기 중심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즉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제7항)라고 선언함으로써 교회선교의 場이 인간 삶의 중심으로 옮겨 온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제4항)라고 선언함으로써 교회의 사회개혁에 대한 능동적 참여를 촉구하였다. 아울러 공의회는 각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적 유산을 존중하여 교회의 토착화를 기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공의회의 이러한 권유에 힘입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민족들은 그들의 신원과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가치들을 교회의 삶과 신학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계속하여 아시아신학, 아프리카신학 그리고 남미의 해방신학 등의 개념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 일방통행적이던 서구신학으로부터 제3세계 신학의 자주적 정립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3세계의 특징은 다수 민중의 가난과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으로 점철된 고난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고난의 심도가 상대적으로 큰 남미에서 해방신학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해방신학은 해방신학자들 자신이 주장하듯 “불의한 사회체계 하에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외된 계층들의 한맺힌 고통이 실체를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보려는 신학적 성찰”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집이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열린 남미 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수용되어 소위 ‘메데인 선언’이 나오게 되었다. 메데인 주교회의는 바로 남미이 ‘시대의 징표’를 진단하고 남미교회의 진로를 제시하였다.

“빈곤 · 不義 추방은 교회의 召命”
 메데인 선언문은 "사회에서 빈곤과 불의를 추방하고 소외계층의 비인간화를 종식시키는 것이 그리스도교인의 결정적 소명이다“라고 천명하였다. 남미 주교회의는 남미의 현실을 ‘불의한 구조’요, ‘제도화된 폭력이 지배하는 상황’이라고 규정하며 ”남미는 어떤 양상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해방을 실현할 것이다“라는 단호한 결의도 표명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의 실천은 교회 안팎에서 기득권자들 및 안정회구세력들의 강한 반발과 탄압에 부딪치게 되었다.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들의 희생도 수반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참여는 남미에서만 일고있는 현상이 아니요, 세계 각지 특히 제3세계에서 널리 펼쳐지고 있는 공통적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남미처럼 해방신학이라는 특정한 기치 아래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교회도 뜻있는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공의회의 요청인 시대의 징표를 탐지하고, 민족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들의 희생적 활동이 커갈수록 그만큼 수구론자들의 비난과 탄압도 커갈 것이다. 요즘 대외적으로 비쳐지고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갈등과 분열상도 이러한 참 그리스도교의 위상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은 그리스도교회가 기존현실에 대해 아무런 물음도 없는 축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또한 이들은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거이 아님을 결코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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