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없는 집, 응석이 심하다
  • 이시형 (신경정신과 전문의·고려병원)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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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같은 아버지’가 문제…가부장의 권위 되찾아야

어른이 없는 집이 된 것이다. 무릎 꿇고 엄한 법도를 배웠던 사랑방도 사라졌고 응석으로 뭉개던 할머니 안방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젠 낯선 응접실에 어른 아이가 따로 없다. 집안에 조부모가 안 계신다는 건 가문의 역사, 가풍을 비롯한 전통의 전수가 단절됐다는 걸 의미한다. 젊은 부부는 당장 친척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된장, 아니 김치라도 옳게 담글 줄 알면 다행이다. 아이들에게 작은 일이 생겨도 덜컹 겁부터 나는 게 젊은 엄마다. 경험도, 의논할 상대도 없으니 매사에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 엄마의 불안은 아이에게 전염된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자신 없어 하고, 때론 작은 일에도 불안에 떠는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결단을 못 내리고 우유부단한가 하면 또 한편 방자하고 무례하다. 으슥한 골목에서 10대 무리를 만나면 겁이 나는 게 요즈음 세태다. 다음 순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불안한 것이다. 급증하는 청소년비행 · 성범죄 · 마약 등이 이들의 자제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때론 자기과시쪽으로 치닫기도 하고 혹은 동물적 잔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얼마전 10대 초반의 세 아이가 술주정하는 아버지를 방망이로 치고, 전신을 난자해서 죽인 사건이 있었다. 하늘 아래 이럴 수가! 물론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이게 모두 핵가족이 안고 있는 취약점이다. 할아버지가 계셨던들 그 아비가 그렇게 술주정을 하고 방탕한 폭군으로 군림하게 두진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런 아비이기로서니, 할머니가 계셨던들 애들의 그런 끔찍한 짓을 어떻게라고 말렸을 것이다. 말릴 사람이 없으니 문제가 생기면 이런 극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집안에 할아버지 · 할머니만 계셔도…

조부모가 집에 계시는 것만으로 집은 평안하고 안정이 된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공경하고 극진히 모심으로써 아이들도 어른을 존경하고 그러면서 친근감을 갖게 될 수 있다. 孝도 이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도 선배나 상사를 존경하게 되고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써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으로 성장해갈 수 있다. 어른 없이 자란 아이는 다르다. 윗사람에게 반항한다. 기성에 대한 반항이다. 뚜렷한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이런 젊은이를 상대나 할 것이며 인정해주랴. ‘호로자식’이란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집에 엄연히 아버지가 있는데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한 마디로 아버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핵가족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도 아버지에게는 객관적 권위가 있어야 하고 기풍당당해야 하는데 불행이 이런 강한 父性原理는 찾아볼 수 없다. 권위와 존경보다 사랑과 인정의 대상이다. 엄마같은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적이다, 민주적이다 하여 요즈음은 이런 아버지를 마치 이상적인 像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건 천만의 오해다. 강한 아버지가 집에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항상 나쁜 유혹에의 충동, 그리고 아직 약한 자제력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이것 때문에 안정이 안되고 있다. 이런 때의 ‘원군’이 강한 아버지다. 생각만 해도 무서워 나쁜 충동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불행히 요즈음 핵가족 아버지는 꾸중 한번 소신껏 못한다. 행여 아이들이 반항이나 하면 어쩌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수험공부에 지장을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거기다 청소년문제만 나오면 매스컴은 아버지의 ‘부패’를 규탄하고 나선다. 회사일에 쫓기는 아버지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꾸중은커녕 아이들 말이면 무조건 복종이다. 용돈도 한푼 달라면 두푼을 준다. 그저 반항만 말고 문제만 일으키지 말아달라는 애원이다. 선물을 사도 푸짐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건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다. 잘봐달라는 애원이요 부탁이다. 아이들이 방자해질 수밖에 없다. 쓰임새가 헤플 수밖에 없다. 눈앞에 평화를 위해 쓴 아버지의 선심이 훗날 비행의 소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핵가족의 문제를 심각하다. 도시에선 이웃과도 단절되어 있으니 문제가 생겨도 구제할 길이 없다. 더구나 집안이야기는 체면 때문에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는 게 우리의 전통이다. 그렇다고 정부기관에서 핵가족의 이런 문제를 상담, 지도할 시설을 마련해준 것도 아니다.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비장한 각오와 현명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핵가족의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부부에게 드리고 싶은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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