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망령’김대표 엄습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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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계 위기감…“총선 전 대권후보 가시화” 강공펼 듯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밀월’은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을 초조하게 한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친해지면 나머지 한 사람은 따돌림받는다는 등식이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정치 무대의 주역이랄 수 있는 세 지도자의 몸놀림은 정치의 모양과 방향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묘하게 형성된 역학관계 속에서 세 사람 관계의 미세한 변화라도 팽팽한 긴장의 균형을 흔들 분 아니라 정치의 흐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민주계 “DJ가 내각제 원하는 건 아닌가”
지난 16일 노대통령과 김총재의 청와대 회동 이후 김영삼 대표 진영의 표정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개중에는 “여차하면 눈뜨고 당하는 것 아니냐” 하는 위기감마저 느끼고 있는 듯하다. 사실 김대표의 민주계는 당내 소수파임에도 광역선거에서의 압승으로 김대표의 대표성이 확립됐다고 보고, 돌발변수가 없는 한 김대표가 대통령후보로 굳혀지는 것을 대세로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재웠다고 생각한 ‘내각제 망령’이 이번 노 ·김 청와대회동으로 되살아나, 바로 그 돌발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김대표의 대권행보에 차질을 가져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김대표측이 특히 미심쩍어 하는 것은 김총재가 내각제에 대한 완강한 반대 입장을 누그러뜨린 것 같은,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감을 풍기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내각제를 추진할 환경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는 김총재의 말이 바로 대통령의 의중을 빌려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친 것이다라는 신상우 의원의 말은 이같은 민주계의 의구심을 대변한다. 다른 한 의원은 손주환 정무수석이 ”개인적 신뢰관계에 변함이 없다“고 발표한 대목에 신경을 쓰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불길한 예감“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반면 핵심 측근들은 “그런 상황은 가상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는 단호한 반응을 보인다. 김덕룡 의원은 “김총재가 원칙없이 이익을 위해서 대변신을 한다면 야합밖에 안된다. 정치는 명분이다. 그렇게 내각제를 반대하다가 선거에 패배했다고 해서 변신한다면 국민이 용납하겠느냐”고 반문하고 “내각제 개헌은 현실적으로 끝난 얘기다. 개헌을 하려면 국회동의와 국민투표 등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권위주의 체제가 아닌 한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황병태 의원은 “김총재가 내각제로 선회한다면 그는 정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총선을 치르고 나면 곧 대통령선거가 닥친다. 청와대가 눈앞에 보이는 데 김총재가 대통령제를 포기하겠느냐”고 김총재쪽의 사정을 들어 내각제 개헌이 불가능함을 설명한다. 그는 나아가 노대통령도 대통령제 선호로 기울었다고 주장한다. “3당 합당의 목적은 보수진영의 결집으로 안정희구세력의 요구를 수렴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정치는 확실히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그 흐름은 이번 서거를 통해서 입증됐다. 노대통령도 김대표의 국민적 위상을 확인했는데 대세를 거부하는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또 내각제를 당론으로 확정하기까지는 엄청난 진통을 겪을 텐데 노대통령이 그런 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노대통령이 확실한 내각제론자이며 개헌이 가능한 상황이면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있음에 비춰 그의 주장은 노대통령의 의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내각제 불가론은 다분히 민주계의 원칙론일 뿐 김대표의 핵심 측근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된다.

한 정치관측통은 “김대표를 내각제쪽으로 몰기 위한 포위전략이 시작된 것 같다”며 민주계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민정계 중진 의원 8인의 골프회동과 정보기관의 루머를 통한 민주계 모함설 등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각제 돼도 YS 입지 큰 변화 없다”
만약 내각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총재가 내각제로 선회할 경우, 민주계의 대응방안은 무엇일까. 특별한 대응방법이 없다는 데 민주계의 고민이 있다. 그 경우 김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민자당을 깨고 나와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관측통들은 김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민자당을 깨고 나와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관측통들은 김대표가 그 길보다는 내각제와 타협하리라고 보고 있다. 한 정세분석가는 “내각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김대표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원래 대통령 직선제는 YS보다는 DJ가 원했던 것이다. YS는 5공 때 내각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 합당시에는 각서까지 쓰지 않았느냐”며 김대표의 내각제 수용 가능성을 점쳤다. 또 그는 내각제 개헌이 됐을 때 김대표가 비참하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일부의 예측과는 달리 “내각제가 되더라도 YS의 입지에는 별 탈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14대 총선 후에는 상황이 변해 있을 것이며, 확실한 지지 기반을 가진 김대표가 상황 변화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각제 파문과 관련, 김대표는 동요하는 민주계 의원들에게 ‘조용히 있을 것’을 지시하고 노대통령과의 정례회동에서 김총재의 내각제 발언은 여권 내부 교란용임을 분명히 해 내각제 개헌 논란에 쐐기를 박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김대표측은 노대통령에게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노대통령이 김총재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으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김총재가 내각제에 대해 묻더라도 “개헌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득을 보는 쪽은 김총재라는 주장이다.

내각제 논란의 증폭, 그리고 노대통령과 김총재의 ‘동반관계’에 대응, 앞으로 김대표는 여태까지의 느긋한 태도와는 다른 몸짓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9월부터 민주계는 공세를 취할 것”이라는 황낙주 의원의 말이 암시하듯 김대표측은 총선 전 대통령후보의 조기 가시화를 강력하게 들고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연하고 있는 계파간의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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